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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채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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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채연 기자 (mong@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6월 11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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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0c07fa448e3093cabe4e3b231904fd_1591347482_7445.jpg'햐쿠쇼쿠야' 창업자 나카무라 아케미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대다수 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는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매출증대 방안을 찾았더라도 정작 그 프로세스에 ‘사람’을 염두에 두는 경우는 드물다. 최저시급 인상과 고용시간 단축도 골치 아픈 마당에, 언택트(untact) 소비는 더 확산될 테니 ‘매장근무자=잉여인력’이라 여기는 기업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와중에 매장 근무자를 채용하면서 “의욕이 넘치는 사람 따윈 필요 없다“고 하는 기업이 있다. 그럼에도 이 기업의 매장 당 효율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우선 매장 면적이 작고, 높은 회전율로 재고를 남기지 않아 직원의 노동 시간도 최소, 잔업도 제로지만 급여는 대형 백화점 정직원과 차이가 없다. 일본의 외식기업 ‘햐쿠쇼쿠야(佰食屋)’ 이야기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기본적으로 음식 맛이 좋아서였겠지만 소매 판매 목적의 ‘상점’이 가진 보통의 비즈니스 모델과 상식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자타공인 성공 전략이 ‘매출 지상주의와의 결별’이라고 할 정도다. 하세가와 요시유키 KOTRA 도쿄무역관은 “파격적인 화이트 기업”이라고 언급했다. 

 

<햐쿠쇼쿠야 창업자 나카무라 아케미가 지난해 낸 책 ‘매출을 줄이자(売上を、減らそう)’에서 설명한 ‘간신히 실적 지상주의에서 해방된’ 이야기, 그리고 KOTRA 도쿄무역관 자료와 日 소매유통전문매체 DCS의 소개글을 바탕으로 했다.>  

 

‘평범한 생활’이 가능한 만큼의 수익 

햐쿠쇼쿠야는 2012년, 당시 28살이던(1984년생이다) 주부 나카무라 아케미가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과 창업했다. 둘 다 관련업에 종사해 본적이 없지만 남편은 출중한 스테이크 요리 실력을 발휘해 줬고 ‘저녁이 있는 삶’에 동의했다. 

 

이름과 같이 하루에 100명 분량의 점심식사만 판매하는 식당, 신선하고 안전한 재료만 제공한다는 뜻으로 냉동실 없이 딱 100인분의 재료만 준비해 굳이 화학조미료를 쓸 필요가 없는 메뉴를 만들었다. 

 

일본산 소고기를 사용한 스테이크 덮밥과 햄버거, 스키야키, 조금 다양화한 것이 고기 초밥과 카레 정도다. 국내에서도 여행 관련 블로그나 가이드북에 교토, 오사카 지역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코스로 추천돼 입소문이 많이 나있다. 

 

본점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이름의 스키야키 전문점, 고기초밥 전문점에 이어 대리점 모집을 위한 햐쿠쇼쿠야1/2(매일 50인분 점심식사만 판매하는 소도시형 매장)로 포트폴리오가 확대됐다.

 

그렇다고 창업자가 백종원 더본 대표처럼 요식업계 거물이 되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매장은 교토 1호점을 비롯해 4개, 대리점 모집은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다. 매장 당 일평균 매출액은 13만엔, 그중 30%가 인건비로 들어가고, 고급 식재료를 쓰기 때문에 스테이크 덮밥 한 그릇의 원가율만 48%에 이른다.   

 

나카무라 대표는 “100그릇을 완판하면 일하는 사람들이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는 소득을 얻고, 일과 가정생활이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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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쿠쇼쿠엔>

 

매출을 줄인다 = 재고· 비효율 zero

이 회사의 독특한 고용정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매출을 줄인다’는 발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회사인데다가 요식업종이니 한국 패션기업의 현실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이 발상은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하면서 시장점유율에 신경 쓰지 않고 매출목표만 줄여서 매장근무자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본 전제는 철저하게 낭비를 없애고 효율적으로 움직여 재고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세가와 무역관의 조언대로 그럴 수 있어야만 “경영자, 종업원, 고객 중 누구도 억지로 참거나 손해 보지 않는 21세기형 사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무인점포가 아니라면 오프라인 소매점의 본질은 같다. 상품과 판매하는 공간을 갖추고, 친절한 서비스가 더해지고, 그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있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상품이 먹는 것과 입는 것이라는 점만 다른 셈이다. 유니클로式 생산시스템, 자라式 물류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허언에 가까운 포부보다 ‘나만의 길을 찾아서 살아남겠다’는 작은 목표가 현실적이다. 

     

‘즉시 전력’이면 충분하다

우리도 흔히 주고받는, “우수한 인재는 대기업으로 가고 중소기업을 기피한다” “요즘 애들은 금방 그만두고 끈기가 없다”는 이야기를 나카무라 사장 역시 자주 듣는다고 한다. 분명 지금은 젊은 노동력이 부족하고 특히 중소기업은 채용과정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시대다. 모처럼 채용한 사람이 곧 그만둬버리니 그렇게 푸념하게 되는 마음도 알만 하다. 

 

햐쿠쇼쿠야는 기본적으로 헬로워크(일본 후생노동성이 운영하는 공공구인구직센터)에서만 사람을 뽑는다. 우리 패션기업들이 고용보험 수급자들이 이용하는 공공망에서 사람을 뽑는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회사들도 헬로워크 구직자를 ‘스펙 미달’로 쉽게 본다고 한다. 

 

아주 쉽고 친절한 내용으로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만 해도 ‘즉시 전력’을 보강하고 충원할 수 있음에도 우리 패션기업들에게 부족한 것 중 하나가 매뉴얼과 가이드. 패션매장에서 우주선 개발, 아랍어 통역과 같이 장기간 전문교육과 투자가 필요한 일을 하진 않는다. 

나카무라 사장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라고 질문한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더 해보면 매출이 오르지 않을까요? 등등 스스로 기획과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인기를 얻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매스컴의 보도를 보고 한 대학생이 채용문의를 해 온 적이 있는데, 남편이 ‘TV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 수 있는 행동력이라면, 절대적으로 다른 회사가 좋다’라면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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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있는 직원들과 맞는 사람’이 좋다

햐쿠쇼쿠야의 채용기준은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맞는 사람인가’, 그 것 뿐이다. 면접은 한사람 당 1시간 정도를 잡고 어떤 식으로 일하고 싶은지,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들어준다.

 

만약 면접자가 “가능한 많이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 회사는 당신에게 부족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 해준다. 

 

‘100그릇 한정 판매’라고 정해져 있는데, 더 많이 파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현재 근무자들을 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햐쿠쇼쿠야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거나 자기 PR이 서툴러 다른 기업에 채용되기 어려운 사람을 채용하고 있다.

 

10여명의 면접자 가운데 첫 직원으로 선택한 S군은 이력서를 잊고 가져오지 않아 “당신은... 누구세요?”로 면접을 시작했고, 한 달 뒤 채용한 Y는 너무 긴장해 면접을 보면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나직이 대답하는 사람이었지만 후에 점장이 됐다. 햐쿠쇼쿠야는 왜 그런 사람들을 채용했을까.  

 

“우리 매장에는 ‘아이디어’도 ‘경험’도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요 없다.”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르다

나카무라 사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에게는 조금 지루한 회사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먼저 햐쿠쇼쿠야의 메뉴는 연중 동일하기 때문에 더 많이 팔기 위해 계절 메뉴 같은 것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 메뉴도 단 3종류 뿐 이어서 조리나 서빙이나 공부가 필요한 매뉴얼이 없이도 금방 일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동 업계 경력을 따지지 않는다.     

 

햐쿠쇼쿠야에 입사하면 1주일 정도 매장에서 선배 직원과 동일한 일을 하게 된다. 오늘은 주방, 그 다음은 접객, 이런 식으로 담당범위를 바꿔 일을 ‘흉내’ 내게 한다. 그 일을 하루에 100번 반복하게 되기 때문에 하다보면 몸이 자연스럽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낙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들르다보니 메뉴판도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로 만들었는데, 전 매장에서 메뉴 3개를 사진과 함께 A, B, C로 표기한다. 매장근무자는 갑자기 외국인 손님이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손가락만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또 하루 100그릇 이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팔지 않기 때문에 호객 등 용기가 필요한 일도 없다. 

나카무라 사장은 “잘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강조한다. 

 

“직원의 주체성을 끌어내는 방법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 직원들은 말하는 것이 조금 서투르지만 들은 것을 성실하게 제대로 실행하고 매일 같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 특기, 어떤 고객에게도 정중하게 대해 준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최적화된 ‘일 잘하는 사람’이다.”

 

‘목적도 없는 매출 욕심’ 억누른 현명함 

아이템마다 수십 모델 씩 채워진 패션매장과 메뉴 3개짜리 식당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은 지엽말절만 보는 것이다. 햐쿠쇼쿠야의 사례에서 우리 패션기업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제까지 의 사업 모델로 계속 갈 수 있는가?’다. 이제까지 얼마를 벌어들였건 간에 가까운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지 근본부터 다시 보자는 이야기다. 

 

햐쿠쇼쿠야의 경우 2시간씩 대기줄이 늘어서도 더 많이 팔지 않는 방법으로 추정 매출액을 ‘일부러’ 줄여 경영 효율화는 물론, 음식과 서비스 품질을 높였다.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가꾸고 싶다’는 경영철학과 맥을 같이 하는 채용방식과 근무환경은 인건비 부담과 노동생산성 향상이라는 과제도 해소했다.           

하세가와 무역관은 햐쿠쇼쿠야의 사례를 들어 “AI, IoT, 로봇 등으로 인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예상되는 만큼, 경영자들도 목적과 이유도 없이 이익만 계속 쫓을 것이 아니라 21세기적 경영과 일하는 방법을 새롭게 찾고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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