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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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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2년 01월 24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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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진심입니다
 

나는 술을 굉장히 못 마시는 편이었다. 주량이라는 것이 유전적으로 타고 나는 부분이 매우 크기 때문에, 술이 약한 집안 내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나도 요즘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알쓰’나 ‘술찌’였다. 

 

대학교 신입생 때 막걸리 신고식으로 스무 살 인생 최고의 극한 체험을 한 후 이십여 년이 지나도록 막걸리라면 냄새도 못 맡았다. 

 

소주는 정말 쥐약이어서 지금보다 소주의 도수가 한참 높던 시절에는 딱 석 잔이면 인사불성이 되고는 했다. 맥주는 500cc 생맥주 한 잔이 거의 치사량에 가까웠다. 

 

지금보다 술을 훨씬 더 강권하는 시절이어서, 대학생 때도 첫 직장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할 때도 좀 짓궂게 술을 먹이는 선배가 있는 술자리는 그야말로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었다.  

 

그럼에도 술을 더 잘 마시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다. 제일 부러운 것은 점심때 반주를 한잔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아저씨들, 또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으면서 맥주를 한 캔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낮술과 비행 중의 음주는 더 빨리 취하니 그들을 따라 했다간 어떤 추태를 보일지 알 수가 없어서 감히 시도조차 못 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주량을 늘려갔다. 어르신이나 선배들이 술도 마시다 보면 는다고 했는데, 과연 마시다 보니 늘었다.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동료와 업계 사람들과 함께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아무도 술을 강권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다. 즐겁게 술을 마시니 주량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1~2년 정도의 특훈(?)을 거치니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에 반주로 맥주 한 캔 정도를 마셔도 만취하지 않을 정도의 주량이 되었다.

 

얼굴은 불타오를 듯 빨개져서 창피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게 주량이 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은 다들 놀랄 정도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는 했다. 

 

혼자서 와인 한 병 정도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데 아직 큰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너무 무식한 방식으로 주량을 늘린 것이라서 절대로 이 글을 읽고 따라하지는 마시길. 

 

술에 진심입니다
 

와인, 사케, 위스키의 매력에 빠지다

무엇보다 주량이 늘어가면서 즐거운 것은 다양한 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것은 와인이었다. 이태리로 출장을 한참 다니던 시절에는 뭣도 모르고 끼안티 클라시코며 수퍼 투스칸을 이태리 음식과 함께 실컷 마셨다. 

 

와인에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시절이어서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좋은 경험을 했다. 

 

와인을 주제로 한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서 얻은 얕은 지식을 길라잡이 삼아 마셨다.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말하는 ‘마리아주’라는 것을 실제로 알아가는 재미가 무엇보다 최고였다. 

 

와인은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지만 그 깊이와 넓기가 한도 끝도 없어서 정말 어렵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술인 것 같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들어서 약간 힘이 들긴 하지만. 

 

일본에도 사업 때문에 자주 출장을 갔는데, 일본은 그야말로 애주가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도시다.

 

매일 저녁 일본의 샐러리맨 아저씨들처럼 술집에 앉자마자 ‘토리아에즈 비-루(우선 맥주 주세요)’를 외쳤다. 맛있기로 정평이 난 일본 맥주를 매일 저녁 들이켰다. 

 

와인도 위스키도 한국보다 훨씬 싼 가격에 훨씬 많은 종류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일본의 도쿄다.

 

그런데 일본에서 가장 놓칠 수 없는 것은 바로 사케(酒), 또는 니혼슈(日本酒)라고 부르는 일본의 청주다.

 

거래처 대표님이 데리고 간 스시집에서 일생일대의 경험을 한 이후로 사케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지자케(地酒)라고 부르는 일본의 각 지역에서 나는 사케들을 한 잔씩 맛보게 해주었는데, 아니 왜 쌀로 만든 술에서 온갖 과일이며 꽃 냄새 같은 것들이 나는지. 

 

술에 진심입니다
 

스시를 쥐어주는 쉐프가 생선과 사케의 마리아주를 설명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사케에 눈을 떠버린 계기가 됐다. 

 

그리고 사케의 세계를 파고드니 이것도 와인 못지않은 재미난 세계가 펼쳐지더라. 무엇을 만들든 장인 정신을 듬뿍 담아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일본인들의 특징이 술에도 담겨 있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긴다면 내가 즐겨 마시는 사케를 만드는 양조장에 견학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한동안 싱글 몰트 위스키가 한국에 소개되고 유행이 되는 시절에는 청담동의 바에서 위스키를 자주 마셨다. 

 

일본을 드나들면서 싱글 몰트의 유행은 익히 접하고 있었기에, 한국에도 소개된 이 유행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때까지 한국에는 수입 위스키라고 해 보았자 메이저 브랜드의 블렌디드 위스키 밖에 없었는데, 전 세계적인 싱글 몰트 위스키의 유행이 한국에도 상륙한 것이었다. 

 

싱글 몰트 위스키란 보리를 사용해 한 곳의 증류소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를 말하는 것이다. 

 

원래 싱글 몰트 위스키는 일반 소비자를 위한 술이라기보다는 여러 증류소의 위스키를 섞어서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위한 원액이라는 개념이 더 컸다. 

 

그런데 그 특유의 매력이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인 유행이 일어났다.

 

특히 싱글 몰트 중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특유의 소독약 같은 냄새가 특징인 아일라(Islay) 섬에서 만든 위스키들이었다. 

 

싱글 몰트 특유의 이 스모키한 향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일단 빠져들면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증류소가 위치한 스코틀랜드의 지역과 각 증류소들의 특징을 머릿속에 그리며 한동안 여러 가지 싱글 몰트를 탐닉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싱글 몰트보다는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고급 버본 위스키들을 애정하고 있다. 미국 위스키 특유의 달콤함은 참 끊어내기가 힘들다. 

 

일본 위스키는 붐이 일어나기 전에는 가격 대비 뛰어난 맛과 품질 때문에 꽤 많이 마셨지만 요즘에는 입수하기가 너무 힘들고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서 입맛만 다시고 있다. 

 

최근에는 위스키 종주국의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들을 다시 찾아 마시면서 그들이 가진 탄탄한 맛에 과연, 하고 감탄하고 있다. 

 

술에 진심입니다
 

다시 막걸리로

막걸리는 한동안 트라우마 때문에 마시지 못하다가 대학교 입학 후 이십 년 가까이 지나고서야 겨우 시도를 하게 됐다. 

 

그런데 웬걸, 막걸리 붐이 태동하면서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을 마시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맛있는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 억지로 마신 역한 냄새의 술이 아니었다. 

 

와인이나 사케를 맛보는 것과 같은 구도로 접근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술이다. 

 

사용하는 쌀이며 양조장의 스타일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그중 내 입맛에 맞는 양조장의 막걸리를 찾는 여정이 꽤 즐겁다. 

 

최근 몇 년 들어 다시 많은 막걸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참 바람직한 현상이다. 일본의 지자케 못지않다. 

 

다만 사케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데 반해 막걸리는 아직 수출에 어려움이 있어 아쉽다.

 

하지만 곧 그 허들을 뛰어넘는 메이커들이 나올 듯하여 기대된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지방의 작은 양조장을 이어받아 전국구 단위의 막걸리 브랜드로 키워낸 젊은 사장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까.

 

술에 진심입니다 

 

소주는 어렵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술을 맛으로 먹냐, 취하려고 먹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는 했다. 

 

그런데 이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술도 음식인데 안주와 함께 마셔야 더 맛있는 건데 왜 꼭 부어라 마셔라 해야하는 것인지. 

 

‘라떼는’ 안주빨을 세우는 나같은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구박받기 일쑤였다. “새우깡 한 봉지에 소주를 몇 병 마셨네”하는 이야기가 훈장 같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놈의 소주. 초록색 병에 든 희석식 소주. 술을 잘 못 마시던 시절의 나에게 소주는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술이었다. 

 

연거푸 몇 잔을 받아 마시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취하게 되고 다음 날의 숙취는 어찌나 힘든지. 주량이 늘어서 어느 정도 술을 마시게 되고 나서도 먼저 소주를 찾아 마시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역시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소주가 가진 막강한 위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분명 소주가 제일 어울리는 자리는 존재하니까. “언제 소주 한잔 합시다”라는 말은 “우리 좀 더 끈끈하게 친해지는 자리를 가져 봅시다”라는 뜻으로 쓰이지 않는가. 

 

허심탄회하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 또는 슬픔을 위로받는 자리 같은 데 소주만큼 어울리는 술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취하려고만 마시는 소주는 별로다. 제일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삼겹살을 구울 때, 쫀득한 족발을 쌈에 싸서 먹을 때, 매콤한 찌개를 곁들일 때, 얼큰한 해장국을 한 사발 먹을 때, 그리고 혼자서 끓여 먹는 라면에 함께 마시는 소주는 꽤 좋다.

 

술이 좀 늘었더니 요즘은 ‘술꾼’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특히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주변 사람들이 감탄하는 지경이 되었다. 

 

‘알쓰’의 화려한 부활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술이 엄청 세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술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주량은 되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나는 술에 꽤 진심이었나 보다. 주량이 약하면 보통 술 마시는 것을 피하게 마련인데, 억지로 주량을 늘리면서 이 술 저 술을 다 탐닉하고 있으니.

 

내게 술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매개체이기 이전에 나의 호기심 충족과 오감 만족을 위한 쾌락의 재료다. 

 

다만 대부분의 쾌락을 주는 것들이 그러하듯 술도 건강을 생각해서 적당히 즐겨야 할 터이다. 오래오래 이 즐거움을 누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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