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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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수한 기자 (saeva@fpost.co.kr) 작성일 2019년 12월 23일 프린트본문
온라인 비즈니스 확대, 영업 중요성 떨어져
영업부 없애거나 통폐합 검토
한 때 ‘영업은 패션 비즈니스의 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백화점 유통의 영향력은 하늘을 찔렀고, 패션 기업들은 그들을 상대하는 영업부서를 최고로 대우했다. 백화점 바이어들과 친하고, 높은 직급자들과 인맥이 넓은 영업 본부장들의 몸값은, 실력있는 MD 임원보다 갑절 이상 높았다.
가두 비즈니스를 주로 하는 중견기업들의 영업 본부장들 역시 영향력은 뛰어났다.
전국 상권을 꿰고 있으며, 어디에 어떻게 매장을 열어야 하는 지 감각적으로 짚어내는 능력을 가진 영업 임원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잘 나갔던 영업 임원의 한 달 영업비는 급여 외에 500만원에 달했을 정도라고 한다. 유통 관계자들이나 유력 상권 점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접대 비용이었다.
영업 담당자들은 좋은 점포에 입점하기 위해, 좋은 자리로 옮기기 위해 소위 ‘갑’들에게 간이라도 빼줘야 했고, 잘 빼주는 것도 실력이며, 이를 통해 실적을 내는 영업 담당자는 승승장구 했다. 패션 기업 입장에서 영업은 ‘갑’이었다
영업부서의 영향력 갈수록 감소
세월이 많이 흘렀다. 유통 상황도 흐른 시간만큼 많이 바뀌었다. 오프라인 중심의 대형 브랜드들은 호시절과 비교했을 때 현재 매출이 반 토막 수준이다. 온라인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판을 치고 제도권 브랜드들의 자사몰은 트래픽이 바닥이다.
그렇다고 영업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영업 부서는 필요하지만 규모를 최소화하고 운영 방식을 바꿔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업체들도 있다.
국내에서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위해 입점 할 수 있는 유통은 한계가 있다. 백화점은 물론, 쇼핑몰, 아웃렛, 대형마트 등 점포 수는 정해져 있다.
몇 개 대형 유통사를 제외하면 추가 출점도 거의 없다. 정해진 유통 상황에서 더 이상 출점할 수가 없으니 오픈을 위한 영업팀의 필요성도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기존 매장을 관리하고 점주들과 소통해야 하는 업무는 슈퍼바이저 개념의 영업 관리 부서가 맡으면 된다.
기획과 마케팅의 중요성 높아져
영업의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하면 반대적으로 기획과 마케팅의 영향력은 높아졌다. 편집숍이나 수입브랜드의 경우에는 영업이 거의 필요없고 수입MD나 잘 팔릴 만한 브랜드와 상품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있는 머천다이져가 필요하다.
브랜드에 기획 임원은 있어도 영업 임원은 없는 브랜드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최근 한 기업은 영업 임원을 내보내고, 순수 영업 부서를 없앴다. 매장 관리는 기획부서 관할 슈퍼바이져들이 담당하게 했다. 추가 출점은 없으니 기존 매장들만 관리하면 될 것 같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같은 업체들이 비단 한 둘은 아니다. 매출이 줄면 이익이 줄고, 대표들은 인건비를 줄이려 한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정리 대상 1순위 부서가 바로 영업부서가 된 것이다.
백화점 바이어들의 태도나 행동도 많이 달라졌다. 20대, 30대 젊은 바이어들로 대부분 바뀌었다. 팀장급 이상 바이어를 빼고는 담당자들은 모두 젊다. 갑질은 없다. 필요한 브랜드를 바이어들이 찾아간다.
백화점 유통 상황도 달라져
최근 한 업체 임원을 만나는 자리에 한 젊은이가 와서 인사를 했다. 궁금해서 누구냐 물었다. “백화점 담당 바이어입니다. 요즘에는 직접 다니고 저렇게 젊은 친구들이 바이어를 하고 있어요. 예전처럼 갑질도 없고, 합리적으로 일을 합니다. 물론 잘 보일 필요도 없고요. 브랜드가 좋으면 입점시키고, 매출이 안 좋으면 조치하고, 불합리한 일은 거의 없어요”
조금 놀랐다. 저렇게 젊은 바이어가 업체를 직접 찾아다니며 브랜드와 소통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다니,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영업 담당자는 백화점에 찾아가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고, 관리할 필요도 없다. 브랜드가 좋고 매출이 잘나오면 그만이다. 좋은 행사장을 잡기 위해 사정할 필요도 없다. 백화점 행사장은 이미 의류 브랜드들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규 브랜드가 아니고서는 매장 낼 일도 거의 없어졌다. 고로 영업의 중요성은 떨어진다. 기존 점포들은 철수하기 바쁘다. 지금 패션 브랜드를 로드숍에 낸다는 점주들은 거의 없다.
가두 영업도 할 일이 없다
지금 영업 부서들은 문 닫겠다는 점주들 설득하기도 바쁘다. 점포는 이미 낼 만큼 냈고 더 열수도 없으며 줄어들 일만 남았다. 물론 매장 정리하는 담당자는 있어야 겠지만 성장을 위한 영업 부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가두 브랜드 본부장은 과거 영업통 일색이었지만 지금은 상품을 잘 알고, 마케팅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맡는 추세다. 아예 다른 방법을 찾는 업체도 있다.
영업 부서를 없애는 대신 지역 별로 100억원 규모의 매장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영업 대행 외주를 주는 것이다. 정해진 수수료를 주고 담당 지역 매장 점주들과 샵매니져를 관리하게 하는 방식이다. 본사의 인건비는 줄고, 영업 마저 외주를 주는 방식도 나오고 있다.
갈 곳 없는 영업통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생 영업만 해오던 본부장들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 딱히 갈 곳이 없다. 한 창 일해야 할 나이에도 마땅한 브랜드가 없다. 업체들은 영업 전문가보다 상품을 잘 보고 마케팅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을 사업본부장으로 뽑고 싶어한다.
한 패션 전문 헤드헌터는 “본부장급 인력을 구하면서 이력서를 받기도 전에 ‘상품은 볼 줄 아나요? 영업만 했나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영업 출신이라고 하면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슬픈 현실이다.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쓸쓸한 뒷모습만 남았다. 영업 부서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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