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쓸 이유가 없다’가 마법의 주문이 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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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병은 파인드어스 이사 (bepark@find-us.co.kr) 작성일 2020년 11월 16일 URL 복사본문
‘안 쓸 이유가 없다’는 말은 스타트업, 중소기업, 대기업을 막론하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 중 하나다. 주로 새로운 서비스나 프로덕트를 론칭하는 기업 관계자나 투자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투자담당자들이 마법의 표현처럼 즐겨 쓰는 것 같다.
‘안 쓸 이유가 없다’는 주로 아래와 같은 이유들이 설명된 뒤에 표현된다.
- 이 서비스는 경쟁 서비스에 비해 기능이 탁월하기 때문에
- 이 서비스는 충분한 기능을 제공하면서도 경쟁 서비스에 비해 다소 가격이 낮으므로
- 이 서비스는 고객층이 쓰고 있는 다양한 타 서비스들을 하나로 통합해주므로
- 이 제품은 어떤 불편함을 해소해주는데 경쟁제품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 이 서비스가 진입하려는 영역에는 아직 혁신이 없었으므로 등
‘안 쓸 이유가 없다’는 주로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쓰이곤 한다.
- 기업 대표자가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사 서비스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 VC, PE 등의 투자담당자들이 새로 투자검토 중인 기업의 프로덕트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 기업을 자문하는 컨설턴트들이, 새로 론칭된 서비스나 기업의 보도자료를 보면서
- 기업 대표자들간의 네트워킹 모임에서 서로의 서비스를 응원하고 칭찬하면서 등
‘안 쓸 이유가 없는 제품’을 왜 구매하지 않을까?
이렇게 훌륭한 서비스들을 고객들이 진짜로 쓰게 될까? 안타깝게도 ‘아니오’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우리는 체감적으로 알고 있다. 왜 그럴까? 왜 고객들은 답답하고 비이성적이게도 ‘안 쓸 이유가 없는’ 서비스를 외면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안 쓸 이유가 없다’와 ‘쓸 이유가 된다’는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근거를 프로덕트의 기능적 분석보다는, 행동경제학과 심리학 원리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하지 않게 살고 있다
기업들이 야심차게 출시하는 신규 서비스나 브랜드는 대부분 경쟁 서비스가 존재하거나, 뚜렷한 경쟁 서비스가 없더라도 대체제가 이미 존재한다.
‘가볍고 내구성도 좋으며 디자인도 잘 나온 클러치백’의 타깃 고객은 3년 전 선물 받은 클러치백을 딱히 불만족 없이 쓰고 있을 것이고, ‘줌(Zoom)보다 안정적이면서 더 저렴한 화상회의 툴’의 타깃 고객은 줌과 팀즈(Teams)로 회의를 하고 있다.
‘유저 성향에 맞는 영상 추천 서비스’의 타깃 고객은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고, ‘가격도 더 저렴한 세무기장 반자동화 SaaS’의 타깃 고객은 근처 세무기장 사무소 대행 서비스를, ‘가족 구성원별 영양 상태에 맞는 반찬 큐레이션 정기배송’의 타깃 고객은 동네 단골 반찬가게를 쓰고 있다.
즉, 당신이 상상하는 페르소나 고객은 다른 제품을 사용하거나 서비스들을 쓰면서, 불편하지 않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무신경하게 매일 들고나가는 가방이든, 글로벌 기업의 소프트웨어든, 전통적으로 인력이 해결하는 방식이든.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객의 뇌는 이미 결정한 무엇인가를 번복하거나 바꾸는 것을 것에 적합하지 않은 특성과 환경에 놓여있고, 동시에 조직 내에서의 책임소재 등 다양한 사회적 장애물도 존재한다.
1) 후회 회피 편향(regret aversion)
이미 익숙하게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결정을 내려서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을 뇌는 싫어한다. 또한 과거 결정 사항을 바꾸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과거 자신의 판단이 틀렸거나 적어도 지금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상당히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아니라면, 고객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카테고리의 제품이나 처음 보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을 회피하게 된다.
2) 새로운 정보처리 스트레스
인간은 하루에도 크고 작은 정보들을 처리하는 등 수 만 개의 의사결정을 한다. 인식조차 못하는 작은 것들(화장실 슬리퍼를 왼발부터 신을까, 오른발부터 신을까)부터, 인식은 하지만 엄청나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들(줄무늬 양말을 신을까 말까), 일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들(B사의 투자제안서의 7-1항은 우리에게 불리한가)까지. 그만큼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매우 귀찮아하거나 가급적 미루려는 성향이 있다.
수 만 개의 의사결정 가운데 우리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정보를 취합하고 신중히 검토할 만한 사항이 될 수 있을까?
3) 보유효과(endowment effect)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을 때보다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내놓는 것을 손실로 여기는 심리현상이다(진화학적으로는 이미 가진 것을 사기당해서 빼앗기는 것보단 그냥 가지고 있는 게 낫다는 심리적 기재의 반영이라고 해석한다).
홈쇼핑에서 무료반품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내 것 혹은 우리 회사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면, 다소 불편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처분하거나 교환하지 않게 된다. 즉, 경쟁 브랜드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고객은 기본적으로 처음 보는 기업 제품보다 원래 써오던 제품을 높게 평가하는 심리를 갖고 있다.
4) 손실회피(loss aversion)
의사결정 시,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해를 보지 않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결정하는 성향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잃을 때 느끼는 감정의 정도가, 무언가를 새로 얻을 때 느끼는 감정의 정도보다 훨씬 크다.
즉, 새로운 선택을 했을 때 발생할지 모를 손해(오히려 지출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닐까, 원래 쓰던 서비스보다 더 비효율적이면 어떡하지)에 대해 우려하고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5) 현상유지 편향
바꾸려고 하는 행동이 현재보다 특별하게 이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1)~4)의 심리적 현상들이 반영된 결과로서, 기본적으로 인간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편안하게 느낀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 매우 쉽게 관찰 가능한 현상이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습관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고 귀찮다(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홈트레이닝 앱을 켜지 않고, 매일 짜증을 내면서도 핸드폰 액정을 수리하지 않고, 혁신적인 스타트업 서비스 론칭 기사를 보더라도 굳이 사내 도입을 검토하지 않는다).
6) 사회, 조직에서의 책임
1)~5)가 각 개인에게서 관찰되는 일반적인 성향이라면, 그러한 개인들이 모인 회사나 조직 등도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특히 기업의 구매담당부서가 B2B 서비스를 새로 도입하는 경우에는, 현재 쓰는 서비스의 단점이나 비효율을 인정해야 하고, 상세한 리서치를 통한 비교분석도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의사결정자에게 암묵적 혹은 명시적 책임을 묻는 일이 발생한다.
가령, 어마어마하게 불편하고 성능이 떨어지는 자체 구축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는 회사일지라도, 그 ERP 구축을 주도한 사람이 아직 현직 임원으로 있다면, 그 대안이 오라클(Oracle)이든 요즘 다들 도입한다는 스타트업 업무협업툴이든 도입 결정을 만들기 쉽지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인사, 재무 등의 SaaS 도입은 현직 직원 누군가의 역할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결정이라서, 고용문제와도 이어진다.
따라서 ‘안 쓸 이유가 없는’ 우수한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낼 지라도, 그 자체가 충분히 ‘쓸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기업가, 투자자, 컨설턴트들이 ‘안 쓸 이유가 없는’ 서비스들에 다소 급하고 과한 확신을 가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신규 서비스나 제품은 ‘이미 무언가를 쓰고 있는’ 고객들을 우리 고객으로 데려와야 하는 미션을 가지고 출발하기 때문에, 실제로 탁월하고 우수한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위의 심리적 장벽들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마케팅과 영업도 매우 중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탁월한 제품을 만든다+고객 심리 분석을 통한 마케팅을 한다’는 매우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이 원리가 왜 잘 작동하지 않을까?
재미있게도 위에서 언급한 1)~5)까지의 행동 경제 및 심리적 현상이, 기업의 대표자나 직원, 투자자 등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회사의 서비스와 제품을 전 직원이 힘을 모아 열심히 개발했고, 이미 나와 일심동체 같고, 개선하려면 많은 정보를 다시 수집해야 하고, 혹시 사업 방향전환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많은 의사결정 실책을 인정해야 하고, 기존 제품도 크게 개선했다가 고객 이탈 등 손실이 발생할까 많이 두렵고, 그보다는 기존 제품을 작게 개선하며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따라서 자사의 생각보다 실제로는 그다지 탁월한 제품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또한 마케팅과 영업에서도 ‘우리 서비스와 제품이 이렇게나 좋은데’라고 설명하는 성격의 콘텐츠, 즉 ‘안 쓸 이유가 없어요’라는 메시지만을 타깃고객에게 전달한다면 효율이 나오기 어렵다.
물론, 마케팅 툴이나 그로스해킹 기법 등은 기본적으로 고객의 심리현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마케팅 방식과 이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따라서 핵심 메시지를 무엇으로 도출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이냐가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톺아보기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해 객관적 시각과 디테일에 대한 고민과 질문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1) 객관적 시각으로 서비스 분석하기
우리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사업소개서나 내부 결재문서에 나와 있는 SWOT 분석이나 경쟁사 비교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실제로 그렇게 탁월할까? CEO 자신이나 우리 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최선을 다했으니까 최선의 제품이 나왔을 것이라 자만하고, 그것을 고객에게 강요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2) 탁월한 서비스와 제품 만들기
고객이 그 많은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서 우리 브랜드를 선택하게 하려면 얼마나 더 명확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까? 탁월함이란 뭘까? 객관적 혹은 절대적으로 우수한 서비스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와 경쟁사의 장단점을 디테일하게 이해하고 개선에 반영하고 있을까? 실제로 매우 탁월한 제품이라면, 타깃 고객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우리는 그저 경쟁사보다 조금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타깃 고객의 불편함, 문제, 불만, 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연구했는가?
3) 고객을 디테일하게 이해하기
우리가 생각했던 타깃 고객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고객은 진짜 불편해할까? 경쟁사라고 생각했던 기업이 아니라, 아예 다른 방식을 통해서 고객이 불편을 해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꾸준히 내보내는 멋있는 브랜드 이미지와 여러 광고 메시지는, 고객이 새로운 선택을 결심할 만큼 잘 설계되어 있을까? 혹시 우리 회사의 마케팅 메시지는, 소개팅에 나와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한 시간째 자기 자랑만 늘어놓던 그 사람의 행동과 같지는 않은가?
이처럼 기업은 브랜드와 제품, 고객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필자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꼭 학술적 분석이 아니더라도 경험적으로 이 차이를 잘 아는 기업과 제품은 높은 확률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안 쓸 이유가 없는 것이, 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경력사항
- 현) 파인드어스 CSO
- 현) WeWork Labs global mentor
- 현) Platum 스타트업 칼럼니스트
- 전) NP Equity Partners 투자이사
- 전) D.CAMP 투자매니저
- 전) 카카오벤처스 관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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