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컬러에 대해 잘 알고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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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현 에프씨엘코리아 대표 (fclkorea01@gmail.com) 작성일 2021년 04월 26일 URL 복사본문
某(모)브랜드에서 차기 시즌 상품기획을 준비할 때였다. 브랜드는 변화가 필요했고 상품 또한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하지만 브랜드의 방향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상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애를 많이 먹었다.
브랜드 론칭 때부터 근무했던 직원들은 브랜드 초창기 모습에 향수가 있었다. 론칭 당시의 상품과 컬러는 너무 좋았으며 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어려움은 본래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이며 당시의 상품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지금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판매도 잘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중에서도 컬러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이 믿음은 비단 직원들뿐 아니라 오랫동안 브랜드와 함께 해온 매장 매니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브랜드의 본 모습, 그 중에서도 특히 컬러를 복원시켜주길 고대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 상품의 컬러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론칭 당시부터 근무했던 이들에게 물어보면 컬러에 대한 이미지와 느낌은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컬러였는지 집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이 말하는 컬러도 서로 달랐다. 그 컬러를 표현한 단어는 대략 일치했는데 ‘고급스럽다’ ‘세련되다’ ‘품위 있다’ 정도였다.
이 정보만으로는 어떤 컬러였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결국 론칭 당시의 작업지시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창고를 뒤져 어렵사리 직업지시서를 찾아냈고 론칭 당시의 상품 디자인과 컬러 스와치를 확인했다.
컬러를 확인한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 컬러는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았다. 현재 고객들이 좋아할만한 컬러는 더더욱 아니었다. 론칭 당시의 상품과 컬러는 좋았던 느낌만 남긴 채 왜곡되어 직원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많은 논의 끝에 브랜드 콘셉트는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쪽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그 콘셉트를 표현하는 컬러가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했다.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컬러를 제안했고 그 컬러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의문이 계속 들었다. 모두가 동의하는 그런 컬러가 과연 있기는 할까? 사람들은 컬러를 잘모른다. 색의 이름을 모르거나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색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컬러’를 잘 모른다
스포츠 브랜드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컬러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컬러 전문가 교수님을 강사로 모셨다. 교수님은 교육생들에게 컬러 칩을 나누어 주며 ‘파랑’색을 찾아보라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교육받던 모든 디자이너 중 아무도 정확한 ‘파랑’색을 골라내지 못했다. 그들이 파랑색이라고 생각했던 컬러는 남보라색을 띄는 ‘감청(먼셀 색상표 기준 pB)’색이었다. 실제 파랑은 좀 더 초록색을 띄는 ‘파랑(B)’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한국 사람들은 빨강과 파랑으로 이루어져 있는 태극기에 익숙해져 있다. 태극문양의 파랑은 감청이지만 통상 파랑으로 불리다 보니 감청을 파랑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photo pixabay>
브랜드는 상품을 기획할 때 MD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컬러 회의를 진행한다. 이 회의를 통해 시즌에 어떤 컬러들을 사용할지, 대표 컬러는 무엇으로 할지, 어떻게 코디할 지를 결정한다. 이들 중 컬러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초중고 미술 시간에 컬러 수업에는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던 사람이 상품컬러를 기획하고 있지는 않을까? 색의 기본원리도 모르고 자신의 옷조차도 제대로 코디하지 못하는 사람이 컬러를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자인이나 미술 관련 전공자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미술수업 시간에 20색상환을 만들어 보는 정도에서 색에 대한 공부를 마친다. 색채의 기본교육인 색상, 색조, 배색 방법뿐 아니라 더 나아가 조색의 원리 등은 거의 배우지 않거나 배워도 초보적인 수준이다.
색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상품을 기획하는 것은 브랜드의 완성도와 경쟁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브랜드에 맞춰 변주하라
앞서 얘기한 某브랜드에서도 컬러를 결정하는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누구도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컬러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모두가 모호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만을 내놓았다. 그마저도 이 의견들은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이 컬러가 정말로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가?”란 말 한 마디로 간단히 기각됐다.
‘고급스럽다’ ‘품위 있다’ ‘우아하다’라는 표현에 걸맞는 객관적인 컬러는 있을까? ‘I.R.I 이미지 스케일’에서 그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I.R.I 이미지 스케일’은 IRI색채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색채 이미지 공간으로 단색, 배색, 형용사 이미지 공간을 통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적인 색채로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것은 지식경제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형용사적 이미지의 컬러들을 설문을 통해 정량적 수치로 측정해서 정리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한국인들이 각 형용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컬러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형용사적 이미지에 맞는 컬러는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I.R.I 이미지 스케일’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某브랜드에서 컬러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 뻔했다. 고급스러운 컬러가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 사람들이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컬러를 가져와 기준을 세우고 브랜드에 맞게 변주해서 접목하면 될 일이었다.
브랜드 구성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렸음에도 컬러가 산으로 갔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모든 것은 컬러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컬러에 무지한 탓이었다.
우리는 컬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각 색이 가진 사회적인 의미와 상징까지는 아니더라도 색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역량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사람이 사물을 볼 때 제일 먼저 인식하는 것은 컬러다. 이렇게 중요한 컬러에 대해 무지한 채로 패션상품을 기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력사항
- 現) ㈜FCL KOREA 대표
- 現) 호서대/동서울대 패션디자인학과 강의
- 現) 유통/패션기업/정부기관 교육기획 및 강의
- 前) 글로컬 대구침장 특화산업 육성사업 자문위원
- 前) ㈜보그인터내셔날 보그너 CDO
- 前)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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