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의 길을 걷는 유통공룡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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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형욱 前 하나투어SM면세점 온라인기… (fpost@fpost.co.kr) 작성일 2024년 07월 03일 URL 복사본문
빅3, 유통공룡은 옛말
전략 없이 환경에 묻어가려는 유통사
자구책 마련 되어야
흔히들 공룡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말들을 한다. 그 말을 그 시절 공룡이 미리 들었다면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선배 공룡이 사라진지 몇 백 만년 후 대한민국에는 환경에 너무 잘 적응하던 신생 공룡이 죽어나가는 과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전 2000년 이전, 롯데와 신세계, 현대를 ‘빅3’라며 ‘유통 공룡’이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다. 유통시장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지방 중소백화점과 상권을 장악해 나갔던 유통 공룡들은 브랜드들에게 있어 입사한지 몇 해 안되는 백화점의 어시스턴트 MD마저도 감히 고개를 들어 올려보기 어려운 ‘갑중의 갑’이었다.
브랜드들은 어떻게든 그들에게 잘 보여서 소위 ‘노른자’라고 칭해지던 좋은 위치에 매대라도 하나 깔기 위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접대를 했었던 그 시절. 이제 그 시절 어깨에 힘깨나 주던 잘나가던 양반들은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여 효자손으로 등이나 긁으며 드러누워 추억 속에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듯하다.
그 유통 공룡은 정권의 비호 속에 서울 사대문 안에 사치시설 추가설치 금지조치 라는 명목 하에 경쟁 없이 백화점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면서 기틀을 이루었다. 대기업이 잘되어야 나라가 잘된다는 그 시절의 캐치프레이즈 아래 전 국민의 희생으로 덩치를 키웠으며, 온 나라가 힘들게 허리띠를 졸라매던 IMF 시절에도 현금이 없어 헐값으로 나온 부동산을 주워 모아 손쉽게 부를 만들어 갔다.
백화점으로 출발했으나 할인점, 편의점, 슈퍼까지 세력을 넓혀 나가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점빵’처럼 운영하던 동네 슈퍼에 가격할인 저가공세 핵 펀치를 날리며 그 위세를 드높여 갔었다. 그때만 해도 그들 유통 공룡의 세상은 영원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때이다.
온라인으로 불리던 소규모 쇼핑몰들이 하나둘 생겨날 때, 유통 공룡은 온라인 시장도 유통채널이니 자기들이 충분히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롯데닷컴, 신세계몰, H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오프라인에 쩐 마인드로 무장한 ‘청바지 입은 꼰대’를 앞세워 보무도 당당하게 온라인 시장으로 먹어도먹어도 배고픈 아귀처럼 유통 공룡의 촉수를 뻗쳤다.
‘이놈들~’ 큰소리 한 번치면 ‘엄마야’ 소리 지르며 와르르 무너질 것 같던 온라인 쇼핑몰들을 때려잡으며, 몇 해만 투자하면 온라인에서 설치는 경쟁자들은 다 무너지고, 공룡들의 독식이 시작될 것이라는 푸른 청사진을 사업계획서랍시고 오너 앞에서 박수치며 나누었다. 그랬건만 시장장악은커녕, 그날 이후 꼴아 박은 셀 수 없는 돈 보따리는 밑 빠진 항아리에 쏟아 부어도 쏟아 부어도 물이 차오르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삼십년 가까이를 이놈 저놈이 내가 전문가네 하면서 기세등등하게 들어와 적자놀이를 잘도 유지해 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라인만 죽을 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나가던 오프라인 사업마저 주저앉고 있었으나, 여전히 3년짜리 CEO는 3년 후 대박이라는 꿀 같은 언약을 뒤로 한 채 봉급만 두둑하게 챙겨 달아나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리고 있다. 그동안 자칭 온라인 전문가라고 회사를 말아먹은 인간만 모아놓아도 조금 과장을 보태면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 한 바퀴는 충분히 돌릴 수 있을 만큼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유통 공룡 중 최강자로 올라서는 게 선대의 이루지 못한 꿈인 양 덩치를 키우려 한 신세계는 허울뿐인 G마켓을 인수, e-bay에게 3조 4천억 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을 공물로 내바쳤고, 결국 롯데를 제치고 유통 1위라고 즐거워했었다. 그들은 이제 그 시절 막대한 투자로 인해 되돌아온 엄청난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온라인은 물류’라며 투자해왔던 막대한 물류기지를 CJ대한통운에 슬쩍 넘기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SSG닷컴은 2019년 영업적자 819억 원, 2020년 영업적자 469억 원, 2021년 영업적자 1천79억 원 2022년 영업적자 1천112억 원, 2023년 영업적자 1천30억 원 등 여전히 적자를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은 대표 경질로 이어져, 대표가 된지 6개월만인 이번 달에 이인영 SSG닷컴 대표가 집에 가고, 최훈학 영업본부장이 대표 자리에 앉았다.
롯데나 신세계 모두 이제 막대한 자금난에 휩싸이고 있다. 과감하게 베팅한 온라인 사업은 무늬만 전문가였던 봉이 김선달 같은 양반들이 임기 동안 한상 잘 차려먹고 나간 후, 이제더 이상 내세울 산소호흡기 같은 단기 전략마저 바닥이 난지 오래다.
2024년 1분기 SSG닷컴 매출은 4천134억 원으로 2023년 매출마저 동기대비 1.9% 줄었고, 지마켓 매출은 2천552억 원으로 마찬가지로 15.8% 감소했다. 1분기 SSG닷컴은 영업적자 139억 원, 지마켓 영업적자 85억 원으로 전년보다 적자 폭은 줄였으나 여전히 앞으로도 흑자 전환은 묘연하다.
롯데그룹의 온라인 허브를 자청했던 롯데온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7% 늘어난 298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22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는 매년 1,000억 원 안팎이다. 롯데온은 지난 6일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롯데온은 최근 권고사직도 추진한 바 있어, 실적 부진의 여파로 자구책으로 임직원을 내보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몇 백만 년 전 환경에 적응 하지 못했던 선배 공룡이나, 딱히 내세울 전략도 없이 요리저리 환경에만 묻어가려던 대한민국의 신생 공룡이나, 모두 화석의 길을 가야하는 것은 공룡의 운명인 듯하다.
경력사항
- 前) 하나투어 SM면세점 이사 (온라인기획부서장)
- 前) 갤러리아면세점 인터넷점장
- 前) 갤러리아백화점 전략실 e-커머스팀장
- 前) 신세계몰 EC사업부 EC기획총괄
- 前) 롯데백화점 유통정보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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