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덕 본 '파페치' ··· 온라인 시장 패권 거머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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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량 기자 (lkr@fpost.co.kr) 작성일 2021년 01월 27일 프린트본문
1년 사이 글로벌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올해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다소 둔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파페치(Farfech)’에 대한 해석은 조금 다르다.
지난 20년간의 온라인 채널 내 럭셔리 편집 플랫폼은 차별화를 앞세운 선점 경쟁이 이어지면서 말 그대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시장에서 ‘파페치’가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의 구매 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글로벌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 업계는 때 아닌 특수를 누렸다. 이 가운데 무수히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파페치’가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의 ‘네타포르테’를 턱 밑까지 추격했다.
서구권 리서치 전문 기업들은 ‘파페치’의 성장은 지속 가능하고 수익성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글로벌 럭셔리 그룹이 온라인 D2C 판매를 강화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인수하는 등 시대 변화에 따른 새 시도에 나섰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베느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은 지난해 초 자사 멀티 브랜드 온라인 플랫폼 ‘24S’가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며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수록 더 많은 돈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아르노 회장의 발언은 파페치를 겨냥한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었다.
실제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때 글로벌 력셔리 시장에서 ‘파페치’의 선전은 가희 군계일학이었다.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고 오프라인 럭셔리 브랜드를 취급하는 부티크가 하나둘씩 문 닫으면서 상당수의 고객들이 ‘파페치’를 선택하고 이용했다.
파페치, 시가총액 475% 증가
지난해 ‘파페치’의 시가총액은 무려 475% 증가하는 등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투자자들 사이에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럭셔리와 온라인’의 조합이다. 여기에 재고도 없다. 실제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지난 3분기 기준 90만 명의 신규 고객을 유치했고 앱 다운로드는 전년대비 2배 증가했다.
경쟁사인 ‘네타포르테’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고수하기 위해 창고를 폐쇄하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구매 주문을 중단했지만 파페치는 각 국가별 부티크와 창고를 분산 운영하면서 판매를 이어갔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말 기준 전년대비 판매량은 48% 상승했고 온라인 사이트 트래픽은 60% 증가했다. 더 주목되는 점은 코로나 대유행을 겪은 글로벌 럭셔리 업계가 이제 기꺼이 ‘파페치’와 제휴하며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에서 블록버스터급 계약도 체결했다. 중국의 거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와 스위스 럭셔리그룹 리치몬트와 맺은 제휴로 11억 달러(약 1조 2,150억 원)를 투자 받았다. 자금은 ‘파페치 차이나’ 설립에 사용키로 했다.
구찌와 생로랑, 알렉산더 맥퀸을 보유한 케어링그룹도 ‘파페치’ 투자금을 5천만 달러까지 늘리며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코로나19로부터 빠르게 회복하고 전 세계 럭셔리 브랜드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국을 공략하기 위한 공동 사업이다. 글로벌 패션 업계는 이번 투자를 놓고 ‘럭셔리계의 아마존’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홀세일 대신 연결에 집중한 ‘파페치’
‘파페치’는 포르투갈 출신 호세 베네스가 2007년 영국 런던에서 론칭한 온라인 럭셔리 플랫폼이다. 1세대 럭셔리 온라인 편집숍 비즈니스가 홀세일 모델 취하고 있는데, 이를 보완하는 모델 구축전략을 취하면서 시작됐다.
즉 상품 매입 후, 재고 보유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오프라인 럭셔리 부티크와 제휴에 집중했다.
전 세계 오프라인 럭셔리 부티크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을 디지털 카탈로그화해 소비자들에게 제공, 온라인 판매를 연결해 수수료를 취하는 방식으로 시작한 셈이다.
현재 국내 럭셔리 온라인 편집숍 기업 대부분이 ‘파페치’를 흉내내고 있기도 하다.
‘파페치’는 온라인에서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 이미지와 정확한 상품 소개를 전달함으로써 오프라인 럭셔리 부티크의 판로를 확장시키는 등 협력 모델을 갖춘 부티크 수를 점차 넓혀나갔다.
동시에 물류 역량 강화 및 제품 정보 등록 DB시스템 개선, 오프라인 부티크의 실시간 재고 파악, 신속한 통관과 글로벌 주문과 반품 서비스 개선에 주력했다.
경쟁사인 ‘네타포르테’가 제품 바잉과 스토리텔링 같은 서비스에 집중할 때 ‘파페치’는 인프라 부문 개선에 집중했다. 때문에 ‘파페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모델로 급부상했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파페치’를 무시한 럭셔리 브랜드는 자사 제품을 취급하는 오프라인 부티크가 ‘파페치’와 제휴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럭셔리 업계가 온라인 D2C 판매에 나서면서 증강 현실(샤넬), 90분 배송(구찌) 등 다양한 서비스에 많은 비용을 들여 마케팅에 집중했고 온라인 럭셔리 플랫폼과 거래를 줄여 나가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사실 ‘파페치’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구찌, 프라다, 버버리 같은 브랜드들이 ‘파페치’와 거래하고 있는 오프라인 부티크와 거래를 종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종종 들려오고 있다.
럭셔리 기업이 온라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했다. 결국 ‘파페치’는 럭셔리 업계의 예상치 못한 구세주가 된 셈이다.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럭셔리 시장 규모는 23% 감소했지만 온라인 매출은 50%나 급증했다.
또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쇼핑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럭셔리 온라인 시장은 전체 수요 곡선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분산형 네트워크 주효
‘파페치’가 코로나팬데믹 기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50개 이상 국가, 2,200개의 부티크에서 상품을 공급받을 수 있어서다.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소수의 창고에 의존하지 않았다.
분산형 인프라가 감염병 발병 시 유효했던 셈이다. 실제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오프라인 상점이 폐쇄된 특정 유럽 지역 부티크에 의존한 많은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도 주문과 배송을 전면 중단했다. 다시 온라인 사이트를 재개했을 때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는 예전 수준으로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대조적으로 ‘파페치’는 글로벌 소싱 모델이 한 지역의 봉쇄로 타격을 받아도 다른 지역으로부터 주문 상품을 발송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1년간 ‘파페치’가 판매한 럭셔리 제품은 23억 달러(약 2조 5,341억 원)에 달했고 육스네타포르테는 26억 달러(약 2조 8,646억 원)를 기록했다. 여기에 ‘파페치’가 인수한 스트리트 패션기업 뉴가드그룹을 포함하면 육스네타포르테 사업 규모를 앞선다.
白旗 꺼낸 럭셔리 브랜드
무엇보다 코로나팬데믹은 ‘파페치’에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파페치’의 비즈니스 모델에 냉소적인 입장을 취했던 럭셔리 브랜드가 코로나로 고전을 면치 못할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곳도 ‘파페치’다. 럭셔리 브랜드의 재고 상품을 온라인에서 꾸준히 팔아치운 덕분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기준 550여개 브랜드가 ‘파페치’에서 거래됐다. 지난 2018년 400개 미만에 그쳤던 브랜드 수가 크게 증가한 셈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오프라인 부티크와 ‘파페치’간 협력을 넘어 직접 거래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프라다는 ‘파페치’에게 70여개 직영 매장에서 취급하는 상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파페치’를 통해 프라다를 구매한 고객 가운데 20개 도시는 당일 배송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오프라인 부티크를 상대로 홀세일 실적 의존도가 컸던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파페치’와 직접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홀세일 판매 실적보다 판매 수수료를 지불하더라도 ‘파페치’를 통한 소매 방식이 수익적으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홀세일 판매 가격이 최종 소비자 판매가격의 40~50% 수준이라면 ‘파페치’를 통한 제품 판매는 소비자 가격에서 수수료 15~20%를 제외하면 된다.
럭셔리 백화점과의 제휴도 코로나팬데믹을 계기로 마련했다. 영국의 해로드 백화점은 자사 점포내 판매되는 럭셔리 브랜드의 재고 DB를 ‘파페치’에게 공유해 판매 대행을 맡겼다. 쉽게 말해 소비자가 해로드 백화점에서 취급하는 상품을 ‘파페치’에서 구매하면 통관 및 배송, 결제까지 도맡아서 한다.
마케팅 화력 집중…독과점 확보 强드라이브
‘파페치’는 팬데믹 기간 인쇄물, SNS, 옥외광고 및 TV 등 多채널에서 인지도를 쌓기 위한 마케팅에 집중했다.
센스, 매치스패션, 마이테레사 등 경쟁사들이 강력한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품 큐레이션에 집중하고 특정 고객층의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한 활동의 반대 전략이다.
지난해 9월에는 처음으로 글로벌 광고 캠페인도 시작했다. 캠페인은 세계적인 사진작가와 배우 등을 기용해 보다 대중적인 이미지를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동시에 계열사 뉴가드그룹 산하 라이선스 브랜드 ‘오프화이트’와 나이키의 협업 상품을 가격을 낮춰 독점 판매하는 등 스트리트 무드의 럭셔리 제품군을 취급하며 저변을 넓혀나가기도 했다.
그 결과 ‘파페치’의 본사 소재지인 영국 내 브랜드 인지도는 크게 상승했다. 또 지난 2분기 고객 확보를 위해 쏟아 부은 마케팅 비용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8% 증가하고 판매 실적은 48% 늘었으나, 3분기 마케팅 비용은 35%에 그친 반면 판매 실적은 60%로 상승했다.
기회의 땅 중국에 깃발 꽂은 ‘파페치’
중국의 럭셔리 소비 시장의 성장 역시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파페치’는 베이징, 상하이, 홍콩 3개 지사에만 45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지난 5년 전 이미 텐센트와 징동닷컴 등과 파트너십을 체결, 현지 시장을 경험했고 최근 알리바바와 함께 ‘파페치 차이나’를 구축했다. 올해 알리바바의 ‘티몰’은 럭셔리 파빌리온, 럭셔리 아웃렛 플랫폼 ‘럭셔리 소호’, 직구 사이트 ‘티몰 글로벌’ 등을 오픈할 예정이다.
7억5천만 명의 티몰 멤버십 회원들이 ‘파페치’를 통해 럭셔리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파페치’가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도 경험하게 된다. 중국 내수 명품 시장 규모만 700억 달러(약 77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미 ‘파페치’는 중국 내 주요 도시 소비자의 주문 배송 기간을 평균 3~4일로 단축하기 위한 시스템도 마련했다.
LVMH, 케어링그룹과 같은 글로벌 대형 럭셔리 기업들은 독자 기술을 개발해 직접 중국 온라인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백여 개 달하는 크고 작은 럭셔리 브랜드는 디지털 전환이 최우선 과제로 꼽힐 정도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역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 ‘파페치’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때문에 ‘파페치’와 알리바바는 중국 소비자들이 온라인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에 익숙해지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이 종식되더라도 럭셔리 상품을 사기 위한 해외 원정 쇼핑은 크게 줄고 자사를 선택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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