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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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수한 기자 (saeva@fpost.co.kr) 작성일 2019년 10월 14일 프린트본문
어느 술자리에 함께한 임원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회의 시간에 바른말 하고 싶어도 못해요. 오너는 왜 매출이 안 나오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라. 임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못 견디고 입바른 소리라도 잘못 했다간 경쟁 브랜드 임원들 구설수에 오르기 ‘일쑤’고, 함께 자리한 오너2세는 ‘저 냥반 아버지한테 아부 떠는구만’하고 생각했는지 나중에 따로 불러 싫은 소리 하는 경우도 있고요. 브랜드 방향이나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우고 싶어도 눈치보느라 말도 못해요. 일을 하는 건지 정치를 하는 건지 모를 때가 많아요. 직원들한테는 싫은 소리도 못해요. 그들은 아쉬울 것도 없는지 ‘그만두면 되지’라고 생각하더라구요. 직원들 없으면 불편한 것은 책임자고, 직원들이 잘못이라도 하면 결국 임원이 책임지고 나가야 하니까요”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임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직접 들었을 때 뒷맛이 씁쓸했다. 과거 임원들이 이런 똑같은 주제로 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 슬픈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지금 몇몇 임원들과 사장들, 직원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이내 서글퍼진다. 그들의 현실이, 지금의 모습이, 왜 그런가 생각해 보고 고민해봤다. 그들이 장악한 지금의 세대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어떻게 격리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본 기사 중 이런 제목이 문득 스친다. “밀레니얼 세대, 신입 사원으로 뽑으려면 전망 좋은 위치의 임원 방부터 빼라”
회사의 가장 좋은 자리는 임원 방으로 쓰지 말고 직원들의 휴게 공간으로 사용하고 복지에 최대한 힘쓰라는 말이었다.
‘임원들의 권력 과시 용으로 좋은 자리 줄 필요없다’ 뭐 그런 의도 였지 싶다. 젊은 시절 고생해가며 회사를 일구고, 한 자리 꿰차고, 이제 좀 편해졌나 생각할 시간도 없는 마당에 방이나 빼라니. 지난 달 새로 영입된 임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글을 임원들이 봤다면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으리.
임원은 직원들에게 채찍질하고 감시해 더 좋은 성과를 내도록 하는 위치가 아닌, 직원들을 받들고 섬겨야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가장 좋은 시절을 누리고 좋은 세상에 살았던 세대는 바로 386세대다. 386세대는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2세들이다.
호시절 누린 386세대
386세대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다. 한국 학생운동의 제1세대로 불리는 4·19세대와 6·3세대가 대학에 다니던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 세대가 정치적 사회적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에 생긴 개념으로, ‘386’이란 용어는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386컴퓨터에서 딴 것이다.
그러나 ‘386’ 세 숫자에는 각각의 뜻이 들어 있어, ‘3’은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즉,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이다. <386세대 [三八六世代] (두산백과)>
지금으로 따지면 50대에 해당된다. 오너 아니면, 임원 아니면, 임원을 바라보는 직급자분들 일 것이다. 386세대는 조직에서도 가장 좋은 코스를 밟아왔다. 빠르게 승진했고 빨리 임원을 달았다. 전공과는 상관 없이 임원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 남들보다 더 좋은 시절을 오랫동안 구가(謳歌)했다. 지금 386세대는 586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그들이 이제는 50대가 되어 사회 전반적인 장악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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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시절은 누려왔기 때문일까. 지금은 가장 불쌍하고 안타까운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꼰대’라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런 586세대들은 대기업 부장 아니면 임원들과 오버랩 된다. 이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Chapter Ⅰ <오너 눈치 보는 중견기업 임원>
“내일부터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너 눈치 보는 사람이 임원 뿐이겠냐마는 조직에서 가장 오너의 눈치를 봐야하는 사람은 당연히 임원이다. 임원은 계약직이다. 1년 뒤 아니면 당장이라도 ‘내일부터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순전히 오너의 결정에 갈 길이 달라진다.
그래서 인지 더더욱 오너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이나 언행은 삼가야 한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회사일에 매진하던 임원이 하루아침에 짐을 싸는 일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니 책상이 사라졌다’는 우스갯소리를 웃으면서 할 수 없는 시절인 것이다.
임원들의 ‘오너 눈치보기’는 도를 넘어섰다. 최근 들었던 임원의 하소연 내용을 인용해 보려 한다. 이 사례는 어떤 일부 오너의 이야기지만 방법과 방식만 다를 뿐 대부분의 오너 기업 분위기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할 것으로 보여 진다.
한 중견 기업 임원들은 토요일에도 회사에 출근한다고 한다. 이유는 오너가 언제 출근해 자신을 부를지 모르기 때문. 해당 오너는 기약도 없이 갑자기 토요일에 출근해 누가 일하고 있는지를 체크한다고 한다.
임원들은 할일이 없는데도 회사에 나와 멍하니 모니터를 보거나 인터넷 서치를 하며 시간을 죽인다. 가정에 충실해야할 시간에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오너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토요일에 일이 있어 회사에 나오지 못했는데 오너가 해당 임원을 찾았다면, 출근한 임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갔다면, 대화의 소재는 나오지 못한 임원이 된다는 것이다. 술까지 먹었다면 안주거리가 될 것이고,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다음 주 월요일 회사에 쫙 퍼진다고 한다. 당사자는 다른 이들을 통해 소식을 접한다고 한다. 이 처럼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다른 기업의 오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토요일 밤 한 오너는 임원들과의 단톡방에 갑자기 회의 지시를 내린다. “내일(일요일) 아침 7시 비상 회의를 할 것이니 모두 출근할 것” 이런 지시에도 임원들은 군소리도 못하고 출근을 한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지시하고 일요일 오전 11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은 오너는 12시 언저리 쯤 다시 카톡을 남긴다. “오늘 급한일이 있어 회의는 취소한다” 바쁜 일정도 취소하고 일요일 아침부터 회사에 나와 대기했던 임원들은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일일까 싶을 것이다. 매 번 당하는 임원들은 또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외부에서 영입된 임원이 이런 일을 겪었을 때는 한 달만에 회사를 때려치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오너는 임원들과의 마라톤 회의를 하면서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시킨다고 한다. 회의실에 앉아 도시락을 함께 먹으면서 하는 얘기의 주제는 항상 같다. “나 때는 말이야”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에이 설마 아직도 그런 업체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일부 독자들은 ‘앗! 어떻게 알았지?’라는 분들도 계시리라. 특히 이런 일을 직접 겪어 본 분들이 계시다면 모른 척 해주시길...
이런 상황을 겪는 임원들은 너무 힘들다. 이 같은 행태가 너무 힘들어 오랫동안 몸담았던, 정든, 내가 잘 이끌고 싶었던 브랜드 사업부를 떠난 임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내가 이런 취급이나 받으려고 피땀흘려가며 일해 이 자리까지 올라왔나’ 싶기도 하고 허무하고 자괴감마저 든다는 한 임원의 푸념도 있었다. 능력 있는 임원들은 브랜드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었음에도 오너와의 원활한 관계를 가져가지 못해 중도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있다. 한 기업체를 놓고만 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오너 왕국의 대신들과 신하들은 오너의 말과 악법, 억지에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현실 속에 가장 슬픈 삶은 살고 있지는 않을까. 월급주고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는 사람은 원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으면 좋으련만 권한도 주지않고 책임만 묻는 오너들에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브랜드가 어떻게 가야하고 어떤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해야할 시간에 오너에게 어떻게 잘 보일까 고민해야하는 386 임원들의 삶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Chapter Ⅱ <인사철에 떨고 있는 대기업 임원>
대기업 임원이라도 다를 바는 없다. 오너를 섬기지 않아도 되는 대신 자신의 성과로 평가받고 냉정하게 정리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연말 인사철만 되면 어김없이 대기업 임원들에게 이런 말을 듣곤 한다.
“제가 올 해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빨간색 숫자가 빼곡히 프린트 된 종이를 보고 있자니 임원들의 입에선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데이터가 바로 나의 거취(去就)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실적이 역신장 했다면 연말 인사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회의 시간에는 할 말도 없고, 어떻게 잘해야 할지 답변을 준비해야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너의 육두문자는 그칠 줄 모르고 회의석상에서 임원들의 눈치게임은 스타크래프트를 방불케한다. 한 임원은 눈에 띄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실력을 인정받으려 했지만 오히려 실패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내 인사고과에는 독이 될 뿐이다. 매년 임원들의 겜블은 계속되고 있다.
대기업 임원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다. 임원이 되면 ‘별을 달았다’(전과가 생겼다는 말이 아님)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한 사업부의 장군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자리지만 올라가자마자 내려갈 일을 걱정해야 한다. 한 임원은 상무가 된지 반 년 만에 보직 해임이 된 일도 있었다. 그 만큼 연말연시 칼바람은 대기업 임원들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이제 곧 인사철이다. 여기저기서 불안한 기운이 맴돈다. 벌써부터 구조조정의 바람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임원들은 자신의 입지를 확인하고 다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임원은 인사철이 되면 아침 일찍 출근해 1층 로비 앞에 있다가 오너나 CEO가 출근하면 뛰어가 차문을 열어주면서 경영진에게 얼굴 도장을 찍는다고 한다. 항간에는 “연말에 살아남고 싶으면 일찍 로비 앞에 나와 있으면 된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대기업 임원들이 부하직원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대기업은 인사철이나 승진을 앞두고 해당자의 인성을 확인하기 위해 부하직원이나 경쟁 부서의 담당자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평소에 부하직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리더십은 어떤지,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다. 만일 인사팀 직원이 승진 예정자에 대해 그의 부하직원에게 “김 부장이 승진할 만큼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부하직원의 대답이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인터뷰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했을 때 직급자들은 하급자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런 인터뷰가 없다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임원은 어떻게든 자신이 맡은 사업부가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고 모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브랜드의 실적에 따라 그만두고 새로 들어오고 이런 상황은 매년 반복되고 그 속에서 임원들은 연말만 되면 자리 보존에 위협을 받으며 떨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슬픈 현실 중 하나이다.
Chapter Ⅲ <직원들 눈치보는 임원>
임원들은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을’이 된지 오래다.
조직 안에서는 의견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다른 의견이 나오고 더 나은 방향으로 결론을 도출해 나가면서 조직은 발전한다.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누구의 의견은 채택되고 누구의 의견은 버려지는 상황이 존재하게 된다. 윗사람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직원들의 불만은 있기 마련이고 이 같은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며 상하관계에 금이 가는 일을 누구나 한번은 겪어봤으리.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어도 미운 직원이 있고, 일을 잘하는 상사도 꼴보기 싫을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인성과 평소 태도, 옷차림, 말투 등 여러 가지 업무와 관계없는 개인적인 취향만으로도 사람이 싫고 좋음은 사람이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자, 이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과거에는 어땠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고, 부모가 싫으면 아들이 집을 나가면된다. 절이 떠날 수 없고, 부모가 집을 나갈 수는 없다. 물론 부모가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배제하자.
지금은 임원이 나가야하는 시절이다.
직원들은 임원이나 직급자, 자신이 속한 사업부의 책임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일을 하지 않아 버린다. 일을 하지 않아도, 회사는 4대 보험에 들어있는 종업원을 맘대로 해고시키지 못한다.
이런 법을 악용하는 젊은 세대는 바로 386세대의 자녀 세대인 20대 밀레니얼 세대들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겠지만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하겠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단지 월급을 받고 내가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는 분들이다.
윗사람이 꼰대처럼 불합리하게 나를 대한다는 생각이 들면 일도 하지 않고, 대들고, 조직 분위기를 흐려버린다. 한 마리 미꾸라지는 강물을 흐린다. 옛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조직에 이런 사람 한 둘은 꼭 있다.
한 업체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 남자 직원이 임원과 트러블이 일자 보복차원에서 육아휴직을 냈다고 한다. 1년 정도 육아휴직을 내게 되면 한 팀에 고용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휴직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충원하지 못한다. 결국 남아 있는 사람은 물론 직급자의 경우 인력이 부족해 더 힘들어지게 된다.
남성의 경우 맞벌이 상황에서 처음 3개월은 급여를 100% 지급하고 나머지 9개월 동안 급여의 50%, 복직 후 6개월 동안 적립된 25%를 한 번에 지급하기 때문에 아내가 일을 할 경우 남편은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예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요즘 분위기는 직원들이 일을 안 해 사업부 실적이 떨어지면, 책임지고 나가야하는 사람은 직원이 아니라 임원이라는 것이 팩트이다.
일을 못하는 직원에게 ‘너 나가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잘 리드하지 못한 ‘임원분 나가세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임원들은 오너에게도 잘해야 하고 직원에게도 잘해야 하고 중간에서 할일이 너무 많다.
Chapter Ⅳ <브랜드가 아닌 정치판>
“일하지 않는 분위기, 일하는 사람만 바보”
조직 내 암투(暗鬪)는 더욱더 극심하다. 직원들 간, 직원과 임원 간, 임원과 임원 사이에 일어나는 경쟁은 정치판을 연상케 한다.
브랜드 사업을 하는 건지 정치를 하는 건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고, 내가 올라서기 위해 직원들이 만들어 놓은 성과를 가로챈다던지 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쌓여 온 업계의 나쁜 습관과도 같다. 몇몇 기업들은 정치의 끝판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해 자신의 사업부 실적을 높인 뒤 사업부장을 더 좋은 곳으로 올려놓고 내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게 순서고 순리라고 생각하는 조직원들이 많았다. 지금은 자신이 직접 오너에게 더 잘 보여 임원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오르려는, 단박에 밟고 올라서려는 야심찬 멤버들이 많다.
누군가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디자이너는 작지를 그리기보다 사업부장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고 임원들은 오너와 언제 한 번 골프 치러 필드에 나갈까 고민하고 있다. 비즈니스 중심에서 관계 중심의 조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패션 업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직원들의 일하지 않는 분위기,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때려치우는 분위기라고 한다.
한 여성복 업체 임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직원이 하나도 없어요. 다들 위에서 시키는 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만 할 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 하거나 하는 능동적인 직원이 없죠. 회사가 발전하기보다 도태되고, 임원들은 직원들 독려하랴, 윗사람들 눈치보랴 일도 못해요. 출근했다가 퇴근 시간 땡 하면 집에 가고 월급날만 기다리는 직원들 보고 있자면 속이 타죠. 그래도 그중 일 좀 하려고 하는 직원들도 이런 분위기가 만연해 지면 나만 일하는 것 같고, 나만 바보 같아 보인다며 일을 대충하려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
아이러니하게도 386세대와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는 그들의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 이다. 20대 밀레니얼 세대는 기업의 새로운 인력으로 계속 들어오고 이들은 기득권인 386세대를 위협하는 최대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386세대는 이들을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로만 봐서는 답이 없다. 그들과 공생하고 공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할 것이다. 지금의 임원들은 외롭고 슬픈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동안 누려왔던 호시절과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이 처럼 자신들이 겪어 온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잣대만으로 새로운 세대를 판단하고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민이 무엇인지,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엉뚱한 의견이라도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무엇인가가 오너에게 인정받는 수단이 될 수 있고, 그들을 이끄는 임원의 능력이 발휘되는 부분일 것이다. 내 의견만을 고수하다 조직원들로 부터 따돌림 받고 도태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 왔다. 변화는 천천히 스며들고 있고, 그 변화를 거부한다고 자신의 존재 가치가 보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의 시대는 가고 사고의 시대가 왔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야하는 시대인 것이다. 신세 한탄 할 수 있다. 한탄도 할 수 있고 남 얘기도 할 수 있지만 이 세대 간의 격차를 무너뜨리고 앞으로 나가야할 방법을 찾아야한다. 임원도 오너도. 직원도 브랜드도. 한 번 생각해보는 것과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나 386, 제가 특권층이라구요?
50대, 남, 現 사업본부장, 패션 업체 25년 근무
386세대 임원을 꼰대로 보는 청년(팀원)들에게
단칸 셋방에서 시작한 청년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생활수준과 매우 큰 차이가 난다. 열심히 벌고 노력한 결과다. 386, 50대가 다 가진 세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80년대, 연봉이 500~800만 원 수준일 때에도 서울시내 아파트 매매가격은 2억 원 정도 했다.
당연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산을 곧 부동산 보유액이라고 치환해 지금의 50대를 ‘가진자’라고 하려면 수입 대비 부동산 가격을 따져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엔 청년을 위한 국가의 지원과 복지 등 제도적 혜택이 많다. 왜 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가는 삶을 생각하지 않나? 왜 그런 지렛대를 활용하지 않고 선배들의 성과를 배척하나? 복지, 인프라 등 사회 전반의 환경은 지금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청년세대가 가정을 이룰 때 주거 안정을 위해 1%대 은행 대출이 나온다. 그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든다 해도, 내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복지와 분배 정책을 논하고 사회적 타협을 이끌어내야지 ‘저들은 다 가진 꼰대’라고 적대해서야 무엇이 나아지나.
질문조차 없는 그들과 함께하는 법
최근 수년 간 함께 일했던 20대, 30대 팀원들 다수는 자기만의 벽을 만들고 도움을 주거나,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혼자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만만한 몇몇과 무리를 짓는다. 그리고선 사람이건 도구건 이용하지 않는다.
뭔가를 질문하는 직원은 차라리 영리하다.
그런 팀원들을 대할 때에는 사춘기 자녀라고 생각하고 대처한다. 나부터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직장)생활을 하려 노력하고, 직원 중 누구에게라도 물 한잔 떠다 달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대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 소통이 되지 않거나, 팀원들에게서 업무적 부족함이 느껴질 때에는 ‘모르면 예의를 갖춰 물어보라’고 이야기 해준다.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전문성, 성실함과 함께 관계성이 기본이라고. 실제로도 아주 가끔이지만 허물없이 편안한 자리에서는 하는 말이다. 더불어 성장하자는 것이고 그러면 변화가 있었다.
직장 내 세대갈등에 대하여
만약 한 달에 1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라고 치자. 그러면 오너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출발하는 프로젝트가 몇이나 되겠나. 그 중 한, 두 개가 될까 말까.
오너는 누구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독선, 아집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본인이 옳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이거나 그저 고집을 꺾기 싫어서 확신 없이 감행할 때도 있다.
실무자들 모두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이 될 때, 임원은 실무 책임자로서 총대를 메게 된다. 그럴 때면 ‘이 우주에 나 혼자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윗사람의 지시가 부당해도 위신을 세워주어야 하고, 임원이 바람막이가 되면 나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 팀원들의 기대 사이에서 꽤 큰 부담을 안게 된다.
하지만 오너에게도 내가 팀원들에게 바라는 바와 같은 것을 주어야 한다. 예의를 갖추고 소통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너가 자신의 주장 때문에 때때로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이지만 결국 진심은 통한다. 그것이 지난 25년 동안의 경험이다.
팀원을 가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직장 내 세대갈등, 특히 젊은 부하 직원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단절은 팀원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생기지 않을 문제라고 본다.
‘팀원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를 꼰대 취급한다’ ‘스스로 꼰대가 된 것 같아 괴롭다’ 그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 것을 또 극복해 보겠다고 부질없이 감정만 소모할 필요가 있나. ‘사춘기인 내 아이다’라고 생각하고 한 번이라도, 작지만 진심 어린 칭찬을 해 본다면 알 수 있다. 두 세 배의 효과가 돌아온다.
나의 경우 ‘밥을 함께 먹는’ 시간을 중히 여긴다. 식사는 팀원들과의 관계를 잇는 좋은 매개체다. 식구들에게 밥값 아끼고, 뭔 대단한 걸 더 시키겠다고 식사를 건너뛰거나 대충 해치우길 종용하지 않지 않나.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식사 시간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세대 갈등 = 분배 불평등에 대한 반발
그럼에도 갈등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이 숙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하고 싶다. 국가의료보험 제도를 예를 들어보자.
국가가 출생부터 사망까지 보장하는 의료보험이 있는데도 20~30만원 씩 들여서 사보험을 든다. 만약에 국가의료보험료를 1~2만원 씩 올려서 거의 모든 사보험 질병보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나. 당장 포퓰리즘이니 빨갱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 자명하다.
큰 틀에서 노인세대건, 장년세대건, 청년세대건 모두를 위한 복지, 분배 정책이 있고, 그에 자연스럽게 동조해야 21세기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사회적 타협의 과정은 있어야 한다.
세대갈등이란 것은 막연하게 분배의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할 정책과 시스템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특정 나이대의 사람들을 특권 계층, 또 다른 누구는 (상대적일지라도) 소외 계층으로 줄을 세워 놓고 각자에게 이득이 되는 무언가를 내놓으라, 혹은 네 것을 덜어 저들에게 주라고 한들 공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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