還生爲甲(환생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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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홍천 두진양행 부사장 (fpost@fpost.co.kr) 작성일 2024년 09월 10일 프린트본문
살아오면서 ‘갑(甲)’이던 시절이 있었던가. 자본가도 아니고 설사 회사의 사장인들 갑은 아니지 않은가. 하물며 직장인으로서 대표도 못해본 자가 감히 갑을 운운 하기엔 너무나 가소롭다. 그럼에도 그는 늘 갑이었다.
누구보다도 당당했고, 회의실에서나 부서에서나 상대하는 업체에서나, 그는 갑 이상이었다. 20여년 이상을 한 브랜드에서 한 직종을 계속 맡기란 천운이거나 삼대가 덕을 쌓은 탓인가. 아, 언제나 나는 나의 커리어나 사회 조직, 하다못해 학창시절에도 슬픈 ‘을’이었던 것이다. 다음 생애를 기대하는 수 밖에, 나무아미타불….
그렇게 그는 당당했다. 조직에 합류한지 채 한달도 안된 그는 특유의 자신감과 자기애로 똘똘 뭉친 조약돌 같은 이미지로 필요한 일들을 거침없이 해 나갔다. 회의에서도 본인의 의사를 거침없이 개진했고, 늙거나 혹은 중년을 훌쩍 넘긴 임원들은 그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평소의 익숙한 습관대로 내일 지구가 망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태평성대의 양인(良人)이었던 것이다.
그의 사정권에 든 상대방은 지레 주눅이 들었고 빠르고 명확한 딕션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치켜 뜬, 밝은 갈색빛의 눈화살에 쓰러지지 않을 항우장사는 없었던 것이다.
‘갑’과 ‘그’가 만났다. 용쟁호투, 용호상박, 그들의 띠도 이미 수천년 고사성어에 예견되었던 것처럼 용띠와 호랑이띠였다. 오호 신이시여. 초식은 가볍게 수인사로 그들의 숨겨진 내공을 드러내지 않게 시시하게 끝났다.
오래되고 낡은 브랜드를 맡고 있던 갑과 젊은 피 그의 새로운 시도와 방식 변화는 여의주를 움켜쥐고있던 갑에게 선명한 위협이었고, 화등잔 같은 눈으로 전광석화같이 먹이는 노리는 그, 청천벽력 같은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 되었지만, 그들이 만약 붙게 된다면 동귀어진(同歸於盡,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상대에게 덤벼듦) 말고는 해결책이 없을 듯 보였다. 날리는 초식들은 거의가 허식이었고 살수나 결정타는 없었던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끼의 결투처럼.
아뿔싸, 호랑이의 애피타이저는 나였다. 어쩌면 대사를 치르기 전의 먹잇감인 것이다. 을로 살아온 세월이 누구보다 부럽지 않을 만큼 길었던 나였기에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내 방 입구에서 팔짱을 끼고 그가 나를 부를 때 나는 그의 의미가 되었다.
먹잇감, 난 털뽑힌 먹잇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내가 그보다 직급이 높았고, 나이도 많았다. 물론 다른 부서였고 서로가 협조를 해서 낡고 지친 브랜드를 회생시켜야하는 사명은 같았다.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늘 ‘솔(Sol)’ 톤이었다.
도레미파솔의 그 솔. 솔직히 그 톤보다 딕션에서 풍겨나오는 추상같은 엄격함은 이미 내가 잘못을 저지른 자였다. 검사가 불러서 그 책상 앞에 앉으면, 그 책상의 구조상 피의자건 참고인이건 두 발이 옹색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두 손이 저절로 모이게 된다는 오랜 검찰수사관 경력을 가진 친구 녀석의 얘기처럼. 난 이미 피의자였던 것이다. 어버버하는 사이에 조서는 꾸며졌고 형량은 정해졌다. “넌 그러면 안돼.”
남의 집 불구경이나 부부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던데, 언젠가는 일어날 용호상박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를 물고 뜯고 서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동귀어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그들은 고수였다. 동고동락을 택했던 것이다.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갑과 그는 3년 정도 같이 지냈던 것이다.
야심만만한 그는 여전히 무림을 활보하고 다닌다. 헤리티지 따위는 없다. 변화무쌍, 천변만화다. 장르도 다양하다. 캐주얼, 스포츠, 청바지로부터 신발에 이르기까지 홍보, 광고계의 ‘마인’ 칭호부터 이제는 수없이 많은 브랜드를 거느린 지사장으로서 갑인지 뭔지 활약중이다.
후일담 한가지, 그럼 그 시절의 갑은 어떻게 됐냐고…. 나도 거기를 떠나서 잘 모르지만 천수를 누리다가 만수를 누리고자하는 어떤 이가 사장으로 와서, 안 피우던 담배 시중까지 하면서 지냈지만 역시 이 바닥에서 영생은 누리기 어려운 법. 이윽고 낭인이 되어 칩거중이란 소문만. 하지만 부자는 망하더라도 3대가 간다더만, 부자 낭인으로 산다네요.
신이시여, 나에게 호랑이 같은 담력과 용맹성은 바라지 않지만 현생에 쌓은 얄팍한 덕으로 다음 생애에는 ‘갑’으로 태어나게 해주소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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