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아카이브 '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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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중심 브랜드 첫 깃발 꽂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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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우섭 기자 (ws@fpost.co.kr) | 작성일 2023년 07월 14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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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아카이브 '데밀'

 

“생산자 중심 브랜드 첫 깃발 꽂을 것”

<왼쪽부터 신희택, 김진호, 함동수 대표. 심정수, 차종한 디렉터>

   

데님의 빈티지 아카이브는 일본의 복각 브랜드들이 수준 높게 구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웨어하우스, 풀카운트, 오어슬로우는 현재 국내 다수의 편집숍에 입점해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 만들어졌던 데님을 똑같이 만드는 브랜드가 이토록 오랜 기간 사랑받는 이유는 ‘오타쿠’라 불릴 정도로 데님을 동경하는 고집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실 염색부터 제직 방식까지 모두 예전 데님들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제작한다. 소규모 브랜드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까다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빈티지 데님 시장은 일본에서도 진입장벽이 높다. 국내에서 빈티지 데님을 만든다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국내에서는 셀비지 특유의 원단을 짤 수 있는 제직기가 부족할 뿐 아니라 손이 많이 가기에 다루는 공장도 드물다. 데님의 자연스러운 페이딩을 결정하는 로프 다잉(염료가 섬유 내부까지 침투하지 않는 염색기법)을 할 수 있는 A 염색공장도 올해 문을 닫았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국산 빈티지 데님’을 만들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데밀’의 김진호, 신희택, 함동수 대표를 만나 그들의 데님 제작기에 대해 들어봤다.

 

데밀은 어떤 브랜드인가

신: 데밀은 빈티지 데님의 아카이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제대로 된 데님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생산자가 직접 만드는 브랜드이죠.

 

데님에서 가장 중요한 원단도 실 하나부터 직조하는 방법, 밀도, 염색까지 모두 개발해서 데님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복각 브랜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데밀은 재해석 브랜드입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복각의 개념과 우리가 생각하는 복각이 다른 것 같아요. 데님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수도 있구요. 

 

흔히 빈티지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과거의 옷과 비슷하게 만들면 복각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복각은 조금 더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복각 브랜드인 웨어하우스나 리얼맥코이는 시작부터 특정 년도에 출시된 제품을 똑같이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원단 제작부터 염색 방식까지 모두 옛날에 사용됐던 대로 제작하거든요.

 

저희가 빈티지 데님을 만들겠다고 뛰어든 2018년도 당시에는 셀비지 원단을 만들 수 있는 기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로 데님을 생산하는 데 있어 환경적 제약이 많았습니다. 국내에서 복각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웠죠. 

 

셀비지 데님을 만들고자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함: 각자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브랜드를 만든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배우려고 신문 장학생으로 일본에 가면서 우연히 데님을 접하게 됐습니다. 일본어 교류회에서 만난 일본 지인이 가업으로 데님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죠.

 

그들은 한국에 데님을 판매하고 싶었지만 판로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팔 수 있도록 활로를 개척했습니다.

 

데님은 단순한 재화라고 생각했는데 깊이 공부해보니 디테일이 많은 의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대로 알고 판매하기로 마음먹고 4년 동안 패턴부터 봉제까지 데님을 생산하는 과정을 익혔어요. 그리고 2014년 오리엔탈 유나이티드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그때 잠시 한국에 들어왔는데, 다른 곳에서 무역과 디렉팅을 하고 있었던 김 대표가 데밀 브랜드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어 매몰차게 거절했죠. 

 

이후 2018년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닐튼(Knilton)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했던 신희택 대표를 만나 오리엔탈 유나이티드 판매회에서 제품을 함께 소개했습니다. 

 

그때 문득 ‘한국에서 일본보다 질 좋은 데님을 만들 순 없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국내산 데님을 만들고자 창업진흥원이 지원하는 기술혁신형 창업기업 지원사업(현 예비창업자패키지)에 신청했지만, 혼자 어떻게 만드냐는 이유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2년 전에 거절했던 김 대표의 데밀 브랜드 제안이 떠올랐고 3명이 만나 팀을 꾸려 지원사업에 재도전하면서 데밀이 시작됐습니다.

 

“생산자 중심 브랜드 첫 깃발 꽂을 것”

 <데밀이 보유하고 있는 빈티지 리바이스 데님>

 

팀을 꾸린 이후에는 순조롭게 진행됐나

김: 우리의 사업계획은 자체 생산을 기반으로 PB 전개와 OEM 사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사실 선정된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타 봉제 공장의 납품가가 8천 원으로 형성돼 있던 시기에 우리의 가격은 3만 원 정도였거든요. 

 

한국에서 빈티지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직접 생산한다는 것이 생소했기 때문에 망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멘토로 붙었던 국가 사업 담당자분이 ‘차라리 꽃무늬 자수를 넣은 바지를 팔아라’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결국 턱걸이 점수로 최저 지원 금액인 4천만 원을 지원받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데밀, 이름에 담긴 의미가 있다면

데밀은 군용품이 민간에 유통될 때 부여하는 표식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입니다.미국의 밀리터리 서플러스는 군용품 재고 경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해 판매합니다. 경매장에서는 군용 제품을 민간인도 사용할 수 있게 인정한다는 DEMIL CODE (Demilitarized CODE, 비무장화 코드)를 부여해서 출품합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데밀이 추구하는 장르인 밀리터리와 워크웨어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옷이지만, 현대에서는 생존을 위해 입는 옷이 아닌 패션으로 자리 잡은 만큼 그러한 디테일을 제거하면 비무장이 된다는 뜻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디밀리터리라이즈드(DMZ, Demiltarized)의 앞부분을 딴 디밀에서, 변형을 주어 데밀이란 이름을 지었습니다.

 

데밀의 첫 제품은 무엇이었나 

신: 데밀의 첫 시제품은 009라는 제품이에요. 1954년도 리바이스 501xx 데님을 모티브로 만들었습니다. 54년도 제품의 디테일을 담았다는 의미에서 5에서 4를 더한 9를 이름에 넣었습니다. 단순하죠(웃음). 

 

당시 출시된 리바이스 데님의 디테일은 크게 히든 리벳과 단추를 벗어나 지퍼로 출시된 점입니다. 리벳은 주머니의 모서리 부분 즉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이 쉽게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적용된 디테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데님이 광산지대를 넘어 일반 도시였던 동부로 퍼져나가면서 리벳이 불필요하다는 클레임이 많아지면서 바택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데밀 009 제품에도 리벳 대신 엑스자 바텍 미싱을 적용했습니다. 이처럼 현대에서 불필요한 디테일은 생략하지만 감성은 가져가는 것이 우리가 제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국내에서 빈티지 데님에 적용된 디테일들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버튼홀, 엉덩이 요크, 밑단 등을 작업하는데 사용되는 빈티지 봉제 기계를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거든요.

“생산자 중심 브랜드 첫 깃발 꽂을 것”
<데밀의 009 13온즈 셀비지 데님.>

 

빈티지 데님은 꼭 특정 기계를 사용해야만 하나

함 : 얼마나 중요하다고 여기는지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사실 현행의 봉제 기계로도 기술만 있다면 충분히 일부 디테일은 구현할 수 있지만 디테일에서 차이가 납니다. 

 

빈티지 데님에 적용된 디테일과 가장 흡사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 천만 원이 훌쩍 넘어서는 빈티지 봉제 기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생산된 기계라 잔 고장도 많고 단종 제품이라 일부 부품이 고장이 나면 새 기계에서 갈아 끼워 넣어서 수리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기계죠. 

 

그래서 3명 모두 시간이 남을 때마다 서브 기계를 찾는 게 일이 됐습니다(웃음)

 

김 : 빈티지 기계가 희소성을 가지는 이유는 시대상에 있는 거 같아요. 

 

대부분 6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기계를 말하는데,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시기가 아니다 보니 하나를 만들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려 더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인식이 생겨버렸습니다.

 

지금 쓰는 기계와 다루는 방식도 다르고 사용성도 오히려 떨어집니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빈티지 기계로 만들어야 그때의 ‘맛’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데님 장르의 특성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수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밑단의 퍼커링에 대한 논란을 정리한다면.

함 : 흔히 파도 모양이라 불리는 알파벳 ‘J’를 거꾸로 한 듯한 형태의 퍼커링(실의 솔기 부분의 구김)이 빈티지 데님의 밑단에서 드러나는 특징입니다. 

 

데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근본이라 불리기도 하구요. 이 속에는 작은 오해가 있습니다. 

 

밑단을 봉제할 때 체인 스티치를 사용해야만 퍼커링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도 모양의 퍼커링을 구현하겠다고 빈티지 기계인 유니온 스페셜을 사용하는데 60년대 이전에 생산된 특정 모델이 아니면 제대로 구현되지 않습니다. 

 

또 퍼커링 모양은 과거에는 심하게 틀어진 불량으로 여겨졌습니다. 틀어짐을 잡기 위해 바늘이 사선으로 들어가는 구조의유니온스페셜 43200g 모델이 나왔지만 오히려 더 크게 틀어지면서 파도 모양의 퍼커링을 만들게 됐죠. 

 

당시 리바이스가 유니온 스페셜과 계약을 맺고 기계들을 납품받던 때라서 당시 데님의 밑단들이 다 파도 모양의 퍼커링을 갖고 있게 된 것입니다. 

 

이후 일본에서 빈티지 열풍이 불었을 때 그들은 리바이스의 빈티지 데님을 모티브로 제작하면서 유니온 스페셜 43200g 모델을 가지고 밑단을 작업하는 것이 빈티지 데님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국내에 처음 빈티지 데님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단지 체인스티치 봉제면 된다는 오해를 만들게 됐죠 

 

스티치가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죠. 사소한 것이지만 깊이 알수록 빠져드는 것이 데님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일본을 상대로 국산 데님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신 : 데님은 라멘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일본에 여러 라멘 집을 방문해보면 메뉴는 같지만 가게 마다 맛은 모두 다르거든요. 오랜 연구 끝에 개발된 레시피의 차이겠죠. 

 

데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본 데님이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만 나라마다 데님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다릅니다. 

 

데밀도 국산 데님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먼저 원단이 가장 큰 차별점이죠. 데님 원단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만드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하지만 빈티지 데님이 가지는 특유의 색상, 짜임, 텐션, 요철감 등을 표현하고 싶어서 전남방직과 함께 코튼 100 USA 슬럽사를 개발해 커스텀으로 염색된 원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산자 중심 브랜드 첫 깃발 꽂을 것”

 <데밀이 보유한 유니온스페셜 43200G 모델과 35800모델.> 

 

: 사실 데님은 거의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 안에서 브랜드만의 것이 있느냐가 중요한데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만드는 브랜드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빈티지 데님 붐을 일으킨 ‘레졸루트’ 브랜드를 운영하는 하야시가 당시 데님 브랜드 ‘드님’을 만들 때에도 원단을 생산하는 구직기를 사용하는 업체가 없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일본 데님 장르의 전환점이 됐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처럼 데밀이 국내 데님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됐으면 합니다.

 

현재 유통과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있나

김 : 소수 인원이 생산과 함께 브랜드를 운영하다보니, 오프라인 숍을 운영하기가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저희 제품을 소비자들이 직접 보고 구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편집숍을 중심으로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입점한 편집숍은 서울에서는 므스크샵, 서플라이루트, 조스개러즈와 이외에는 와인드(수원), 굿스포츠샵(전라도 광주), 스테이블스토어(대구) 등으로 수도권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 제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편집숍과 함께 협업 제품을 출시하기도 합니다. 협업 자체가 고객들에게 데밀을 노출 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일종의 데밀 만의 마케팅이기도 합니다. 펜필드, 네이머클로딩, 라이프 아카이브 등과 함께 했습니다.

 

어떤 브랜드로 인식됐으면 하는지

신: 현재 패션 브랜드 시장은 춘추전국시대 같습니다. 수많은 브랜드가 쏟아지는 것과 더불어 옷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고 있죠. 

 

하지만 옷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만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옷 생산을 담당하는 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모습이 보이고 있고 대다수는 해외시장으로 원가 절감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생산 중심의 브랜드가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와 같은 변수가 생기더라도 그동안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 ‘브랜드와 생산 업체가 서로 존중해야만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데밀이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고요. 

 

우리는 일부 제품 생산을 위해 외부 공장에 위탁할 때에도 그들을 우리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존중합니다. 

 

모든 브랜드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생산자를 존중하지 않는 잘못된 문화가 아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장에서 진행하는 생산 업무가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브랜드와 생산 업체가 서로 존중받아야만 국내 패션 수준도 함께 올라가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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