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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인가 퇴출인가, 백화점 떠나는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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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수한 기자 (saeva@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6월 08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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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백화점 MD를 앞두고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백화점에서 매장을 빼느냐, 그냥 두느냐 기로에 섰다. 패션 업체 경영진은 골치가 아프다. 한 패션 업체 임원은 “8월 MD를 앞두고 매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이다. 머리에 쥐가 난다”고 말했다.

 

백화점과 패션 업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백화점의 권력

패션 브랜드들의 가장 큰 판매 채널은 당연 백화점이었다.

 

백화점 메인 점포에 입점하려면, 지방 비효율 점포에도 옵션으로 입점해야 했다. “본점에 입점하려면 지방 점포 몇 개도 동시에 입점하셔야 합니다.”

 

브랜드들은 어쩔 수 없이 메인 점포에 들어가는 대신 외곽 점포에도 매장을 냈다. 그만큼 백화점의 권력은 막강했다.

 

브랜드의 생사를 결정하는 입퇴점 권한은 백화점 바이어들에게 있었다. 백화점 브랜드 영업팀은 얼마큼 바이어들과 친하게 지내느냐에 따라 능력을 인정받았다. 한 캐주얼 업체 본부장은 백화점 입점을 위해 바이어들 앞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다.

 

브랜드의 성패는 좋은 점포에 얼마나 좋은 자리에 입점하느냐에 달려있었다. 브랜드들은 백화점의 메인 점포 입점에 목숨을 걸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추락한 명성

지금은 어떠한가. 사실 2~3년 전부터 백화점의 명성은 서서히 작아지고 있었다. 백화점 입점을 원하는 브랜드는 점점 줄어갔다. 서서히 백화점에 채울 브랜드가 없어지고, 백화점은 자체 PB 사업을 키우는 등 대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셔널 브랜드들은 조금씩 매장을 줄여 나갔다. 빈자리는 명품과 수입 브랜드들로 대체됐다. 

 

그래도 기존 브랜드들은 백화점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규모만 크고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외형 유지를 위해, 백화점은 필수 불가결한 유통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바로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 까지는.

 

과거 백화점 메인 점포에 매장이 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백화점에 매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2차 유통에서의 매출도 좌지우지될 정도였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의지했던 본점을 비롯한 메인 점포의 매출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메인 점포에서 올리는 매출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일부 비효율 점포의 손해를 커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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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점포의 매출이 떨어져 비효율 점포의 마이너스를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브랜드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 겪는 위기에 대안 자체가 없다. 중견 여성복 업체 임원은 “메인 점포의 매출이 있어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비효율 외곽 점포들을 유지할 의미가 없어진다. 하반기 MD에서 비효율 점포의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임원은 이런 말까지 했다. “본점에서 빠지라면, 빠지겠다. 더 이상 입퇴점 권한은 백화점의 무기가 되지 못한다. 매출이 안 나오는 점포는 어디라도 상관없이 빼야하는 것이 맞다.”

 

백화점 매입에는 요즘 브랜드 영업팀의 철수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비효율 점포가 너무 많아 운영이 어려우니, 매장 철수 부탁드립니다.” 


옵션 점포 운영 불가

역으로 통보를 받은 백화점은 난감하다. 빠져나간 자리에 채울 브랜드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영업 중인 브랜드 수는 이미 정해져 있고 신규 브랜드는 없다. 기존 브랜드가 나간다면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눈앞에 닥친 8월 MD에 브랜드들의 대규모 철수가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비효율 매장들은 비효율 점포에 몰려 있다. 롯데, 현대, 신세계, 어느 백화점이나 비효율 점포는 존재한다. 

 

이 비효율 점포들에서 비효율 브랜드들이 모두 빠지겠다고 하면 점포 자체의 운영에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백화점은 브랜드들과 깊은 협의 중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협의하고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동안 백화점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사람은 안 좋게 말할 수도 있고, 백화점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며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LF와 신세계의 강수

백화점 점포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LF로부터 시작됐다.

 

LF는 3~4년 전부터 매년 70개 정도의 백화점 매장을 철수시켜 왔다. 이는 구본걸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궁극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줄여야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룹에 속해 있지 않은 유일한 오너 체제의 대기업인 LF는 효율 위주의 전략을 세우고 실행했다. LF몰을 비롯한 온라인 매출 규모가 4천억 원을 넘으면서 오프라인에 대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 졌다.

 

LF 전체 매장 수는 백화점 기준 지난 2015년 1,200개였다. LF는 현재 800개 정도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5년 동안 400개 백화점 매장을 접었다.

사실 LF는 올해 160개 점포를 폐점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 중 110개는 유통과 협의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110개 중 60개는 상반기 중 이미 철수를 완료했다. 남은 매장들은 8월 MD에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LF와 함께 과감한 카드를 꺼낸 것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이다. 해당 사업부는 국내 사업부문이다. 보브와 지컷, 톰보이, 코모도가 해당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백화점 20개점의 철수 통보를 해놓은 상태다. 

 

계열사인 신세계백화점도 포함이다. 백화점이 어떤 답을 줄지는 아직 모른다.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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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본점> 

 

코로나의 타격이 가장 큰 대기업

사실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대기업이다. 외형이 클수록 고정비가 높다. 백화점 의존도가 높은 대기업들은 매출이 많게는 30~40%까지 역신장하면서 어마어마한 고정비를 감당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어떤 기업은 월 2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내기도 했다.

 

수익이고 뭐고 살기 위해서는 고정비를 줄여야 한다. 대기업들은 구조조정도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매장 철수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대기업으로부터 시작된 탈 백화점 움직임은 중소 규모의 브랜드들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매출이 급격히 줄고 있는 잡화, 제화, 아동복 등의 브랜드들은 백화점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 러브캣, 빈치스벤치 등의 핸드백 브랜드들도 일부 백화점에 철수를 통보한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비효율 매장을 운영하기 어려운 이유는 중간 관리자들의 수수료 때문이기도 하다. 연 매출이 2~3억 원대 매장들의 경우 중간 관리자들이 가져가는 몫이 작기 때문에 버티기가 힘들다. 대기업들은 중간 관리자의 상황도 십분 이해하기 때문에 억지로 비효율 매장을 운영하는 것 자체로도 힘든 상황이다.

 

신생 브랜드들의 배짱

온라인에서 잘 나간다는 브랜드들의 배짱도 두둑해지고 있다.

 

본점에 입점하려면 다른 점포에도 입점해야 한다는 요청에 ‘그렇다면 NO’라는 답을 준다. 백화점 메인 점포가 아니라면 꼭 입점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러브콜을 보내지만 응해주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롯데는 본점 영플라자에 온라인 브랜드 중심의 스트리트 관을 만들기 위해 브랜드를 찾아 다녀야 했다. 입점 제안을 백화점에서 한다. 

 

반대 상황이 됐으니 조건도 좋아진다. 수수료는 물론이고, 행사도 하지 않는다. 온라인 몰을 위한 별도의 물량도 없다.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으로 배짱을 튕겨도 백화점은 승낙한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할지언정 현재로서는 브랜드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준다는 것이다. 바이어들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갑과 을이라는 생각보다는 서로 협력해 좋은 결과를 내야한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결국 신규 브랜드도 없고, 있다고 해도 입점을 유치해야 하는 쪽은 백화점이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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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백화점 본점>

 

코로나로 촉발된 脫 백화점

백화점 매출이 바닥을 치니, 일부 매출이 잘 나오는 수입 브랜드를 제외하면, 점 효율이 나지 않는 매장들이 수두룩하다. 그 좋다는 재난 지원금도 백화점은 해당이 없다. 5월 누계 매출을 보면 롯데, 신세계, 현대 모두 역신장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만이 스포츠와 해외 패션에서 신장을 기록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의 입장도 점점 바뀌고 있다. 그래도 백화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도 서서히 깨져가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백화점 매장 유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철수해도 큰 영향이 없는 매장이 대다수이다. 우스갯소리로 백화점에 매장을 운영하는 대신 직접 건물을 사서 1층에 매장을 내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브랜드들은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매출이 당장은 안 나오지만 과감하게 빼자니 다른 대안이 없고 운영하자니 당장 손익이 나지 않고, 사면초가(四面楚歌)인 것이다.

 

그래도 당장 살아야하니, 운영비를 줄여야 한다. 운영한다 해도 효율 없는 매장에 물건이 잠기니, 그 물량이라도 어떻게든 팔아 수익을 내는 방향으로 선회하겠다는 말들도 들린다.

 

일부 백화점 매장은 온라인 판매를 위한 창고처럼 쓰인다고 말할 정도다. 일부 백화점 매니저는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을 응대하기보다 하루 종일 택배 포장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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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백화점 본점 photo 황현상 기자>

 

모두 살기 위한 일

백화점 입장도 난감하다. 업체가 빼달라고 한다고 다 요구를 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은 누구나 어렵고, 어떤 특정 업체의 사정만 봐줄 수도 없다. 자칫하면 연쇄 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정 범위 안에서 서로 조율하는 일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그동안 손해를 감수하면서 운영해 온 매장의 경우 철수를 요청하고, 백화점도 다른 브랜드로 전환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정 안되면 업체와 협의해서 최선의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가 살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패션 기업들의 철수 요청은 수익 창출이 아닌,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되고 있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후죽순처럼 브랜드들의 요청을 받아 매장을 다 빼준다면 이 시국에 무슨 브랜드로 매장을 채울 수 있겠냐 말이다. 

 

백화점도 살고 싶다. 그래서 비효율 점포도 중단하고, 수수료에서 임대로 운영 체제를 돌리기도 한다. 백화점은 백화점대로, 브랜드는 브랜드대로 생존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가겠다, 안 된다, 감정이 뒤섞인다. 달아나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의 의견이 엇갈린다. 서로 상대방 탓을 한다. 그러나 사실 뒤집어 보면 백화점 바이어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업무를 했을 것이고, 패션 업체 담당자도 자신의 일을 했을 것이다. 누가 잘못한 것도,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할 일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매출 폭락이 가져온 현실이다.

 

오래 전부터 누구나 예상해 온,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 생각했던, 현실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한 업체 임원은 “사실 지금 같은 상황이 비수기인 7, 8월을 지나 9월까지도 이어진다면 금전적으로 버틸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재무건전성이 좋은 기업이라도 보유 현금이 바닥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점포를 줄여 고정비를 줄이지 못하면, 생존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혹자는 “백화점이라는 유통이 있었기에, 패션 브랜드들이 중심 상권에서 나름대로 편하게 장사를 하고, 높은 매출을 영위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백화점은 백화점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고, 브랜드도 브랜드 나름의 입장이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서로 조율하고 서로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게시물은 임경량 기자님에 의해 2020-06-17 21:27:57 SPECIAL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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