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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의미가 고객경험을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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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재상 매드해터 CM (alex@madhatter.co.kr) | 작성일 2021년 12월 13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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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분과 의미가 고객경험을 넘어설 수 있을까?

 

얼마 전 카페에 갔다가 경험한 일이다. 에코 매장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특별히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이용해보니 순간순간 ‘현타(‘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로,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가 여러 번 왔고, 친환경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에코 매장을 이용하면서 겪은 과정을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풀어보겠다.

 

내돈내산 에코매장 이용 실제 후기

업무미팅 차 시내에 나갔다가 평소 습관대로 카페에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런데 가격이 평소와 달랐다. 

 

에코 매장이라 일회용 컵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반납하면 다시 환불해주는 컵 보증금 1,000원을 추가로 계산해야 한다고 한다. 

 

천 원이 더해지니 커피 값이 확 비싸게 느껴진다. 기다렸다가 커피를 받았는데 ‘잉? 컵이 이상하다’.

 

계산할 때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하다가 평소와 다른 컵을 보니 의도치 않게 카페 에코 매장에 왔다는 사실에 첫 번째 현타가 왔다.

 

일회용품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항상 있던 터라 다회용기컵 사용에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그래, 친환경이라는데 동참하자!’ 의지가 불끈 솟았다.

 

미팅을 하면서 커피를 홀짝거리는데 평소 마시던 그 카페 브랜드 커피 맛이 아니다. 순간 두 번째 현타가 왔다! 커피는 당연히 그대로다. 

 

단지 컵만 바뀌었을 뿐이다. 커피는 공감각적인 체험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컵에 해당 카페 브랜드 로고나 문양, 글씨 등이 전혀 없고 친환경 로고와 카피만 인쇄되어 있다.

 

명분과 의미가 고객경험을 넘어설 수 있을까?
 

늘 이용해온 카페 브랜드 커피를 마신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맛도 기분도 별로였다.

 

불현듯 다회용기컵 보증금 가격 책정을 기가 막히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백 원이었으면 매장에 반납하는 게 귀찮아서 고민했을 텐데 천원이면 반납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동기부여가 충분했다. 천 원짜리 한 장이라 현금으로 빠르게 교환할 수 있다.

 

더구나 다회용기컵 디자인이 평범해서 전혀 탐나지도 않는다. 일부러 이렇게 디자인하고 카페 로고도 안 넣은 것 같다. 무조건 반납할 수밖에 없다.

 

미팅이 끝난 후 당당하게 카운터로 반납하러 갔는데 다회용기컵 반납과 보증금 환불은 기계로 해야 한다고 한다. 매장 한쪽에 있는 반납기계를 가리켰다.

 

반납하는데 세 번째 현타가 왔다! 남은 음료를 버리고 세척하고 컵에 붙어있는 주문용 스티커도 직접 떼야 한다. 솔직히 세척까지는 하지 못했다. 

 

다행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라 컵은 깨끗한 편이어서 반납에 문제는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이용한 사람들 말로는 컵이 지저분하면 기계에서 인식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세척 후 반납하는 거라면 매장 내에 컵을 닦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던가, 이게 뭔가 싶어 슬슬 짜증이 났다.

 

그래, 여기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취지가 좋으니 넘어갔다. 그런데 커다란 반납기계에 컵을 딱 하나씩만 반납할 수 있었다. 

 

네 번째 현타가 왔다! 덩치도 큰데 하나씩만 반납 가능한 1980년대스러운 기계였다. 반드시 하나하나 넣어서 보증금을 받아야 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점심시간 등 피크타임이면 반납하기 위해 제법 오래 기다려야 할 듯했다. 

 

이미 그 수고로움을 겪었던 사람들은 에코 매장을 피해서 간다고 한다. 반납기계가 정말 컵 하나하나를 아주 정성껏 확인하더라는 말과 함께.

 

반납할 때 다회용기컵 위를 덮고 있던 플라스틱 뚜껑은 반납 대상이 아니다. 

 

뚜껑은 기존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다섯 번째 현타가 왔다! 이럴 것 같으면 용기를 모두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 재활용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내린 결론은 ‘나는 왜 그토록 이 카페 브랜드에 애정을 갖고 이용 해 왔을까?’였다. 

 

당분간 에코 매장은 방문하지 않을 것과 정 안 되면 다른 카페를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명분과 의미가 고객경험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더 키우는 우를 범하다? 

경영스터디에서 아주 유명한 사례 하나가 떠오른다. 우유 생산 공장에서 우유 주입이 안 된 채 라인을 지나는 불량 종이팩을 분리하기 위해 세상 똑똑한 사람들이 다 모여 연구를 거듭했다. 

 

하이테크 기계를 만들었고 공장에 설치하려고 갔더니, 공장 직원이 이미 라인 옆에 선풍기를 하나 놓고 선풍기 바람으로 속이 비어 가벼운 종이팩을 날리는 방법으로 불량제품을 걸러내고 있었다고 한다. 

 

친환경한다면서 온갖 번거로움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다회용기컵 사용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다회용기컵을 카운터에서 받아 모아서 세척하면 빠르고 손쉽게 끝내면서도 고객만족도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일을 고객을 위한 아무런 세척 인프라도 없이 큰 기계만 갖다 놓고서는 세척은 세척대로 따로 해야 하고 반납도 불편한 프로세스를 만들어 친환경을 실천한단다. 

 

단순한 일을 크게 키워서 그야말로 일을 위한 일을 만들어낸 느낌이다. 무슨 맥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카페 에코 매장은 다양하고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생각이 얽히고설켜 탄생한 괴작인 듯하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건 다 이유가 있을 테니.

 

취지, 즉 명분과 의미가 고객경험을 넘을 수는 없다

다회용기컵 반납 프로세스를 겪고 나면 수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저 반납기계 값은 얼마일까? 저 기계는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만든 걸까? 친환경이라는데 모든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았을 때 진짜 친환경이 맞을까? 

 

친환경을 내세워서 더 환경을 해치고 있는 에코팩과 텀블러를 장사하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다회용기컵을 만들고 유지하고 세척 라인 돌리는 것까지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또 비용은 얼마나 들까? 

 

기계를 포함해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데 과연 인건비보다도 쌀까?

 

친환경을 위한 이 모든 비용 지불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결국 언젠간 이 모든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할 텐데 고객이 기꺼이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친환경이라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명분과 의미가 고객경험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도 친환경이라는 명분만으로 고객이 고비용에 비합리적인 프로세스를 참도록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이 더 발전하고 운영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고 사용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야 하겠지만, 이렇게 준비 덜 되고 미숙한 상태의 프로세스를 고객 대상으로 테스트하는 것까지 고객이 참을 필요는 없다.

 

명분과 의미가 고객경험을 넘어설 수 있을까?
 

고객 입장에서 내 돈 내고 스스로 실험실의 쥐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참여한 고객들에게 돈을 줘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앞서 정리한 문제들은 고객 경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그 문제 하나하나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고객경험 과정에 반영되어야만 고객은 기업이 내세우는 명분과 의미에 공감하고 기꺼이 참여하고 불편을 감수할 것이다. 

 

나아가 더 많은 비용도 지불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명분과 의미를 고객에게 강요하는 우를 범한다. 

 

특히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를 중요시하는 기업이나 마케팅 캠페인에서 흔하게 발생한다.

 

명분과 의미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고객경험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사회적 명분과 의미를 갖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몇몇 기업들을 떠올려보면 바로 공감할 것이다. 

 

유기농 및 공정 무역 운동의 선구자 ‘닥터브로너스’, 환경을 보호하려고 옷을 판다는 ‘파타고니아’. 이들은 모두 선한 영향력에 대한 명분과 의미를 전면으로 내세워 사업을 진행한다.

 

제품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과정에 기업이 추구하고 있는 명분과 의미를 반영해 고객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 동시에, 필요 이상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또 기대 이상의 압도적인 제품과 서비스 제공과 더불어 명분과 의미가 더해진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다. 고객은 이들 기업에 흔쾌히 지갑을 연다.

 

캡슐커피의 대명사 ‘네스프레소’ 역시 캡슐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다. 현재 캡슐 재활용 백을 제공하고 무료 수거 서비스를 실행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고, 단지 커피를 마신 후 캡슐을 모아서 자신이 반납하기 편리한 방법으로 반납하면 된다. 

 

물론 캡슐을 모으는 것도, 매장에 직접 반납하거나 수거하도록 챙겨놓는 것도 불편함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고객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수준까지만 요구하며 그 작은 불편함을 오히려 친환경 활동에 동참하는 즐거운 고객경험으로 치환한다.

 

고객은 좋은 취지를 가진 기업과 제품, 서비스를 사랑하고 명분과 의미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고객경험을 세밀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기업은 명심해야 한다.

 

경력사항

  • 현) 패스파인더넷 공동대표, 알렉스넷 공동대표, 매드해터 CMO
  • 전) ST 유니타스 스콜레 본부장
  • 전) 브랜드 메이저 전략실장
  • 전) 두산인프라코어 APE 마케팅 파트장
  • 전)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브랜드 매니저, 마케팅 담당
  • 전) 삼성SDI 마켓인텔리전스팀 마케팅 전략 담당
  • 저서 : <일의 기본기,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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