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신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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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작성일 2021년 10월 25일 URL 복사본문
최근에 러닝을 다시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뛴 것이 아마 4~5년 전인 것 같다.
7년 전에 미국의 브룩스러닝(Brooks Running)이라는 러닝화 전문 브랜드를 한국에 론칭하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러닝화를 파는 회사의 대표가 본인은 정작 뛰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 몇몇 선구적인 러닝크루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우리도 브랜드 마케팅을 겸한 러닝클럽을 결성했다.
나름 해외의 러닝 잡지들도 구독하고, 가끔 우리 러닝클럽에 나가서 뛰기도 하고, 혼자서 뛰기도 하고, 러닝 이론들도 공부했다.
출장을 갔을 때에는 짧은 코스이긴 했지만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락앤롤 마라톤에도 나갔더랬다.
이렇게 말하니 엄청 열심히 뛴 거 같지만 이제 와서 고백하건데 그다지 자주 뛰지는 않았다.
어쩌면 뛴 횟수보다도 리서치 명목으로 사들인 러닝화가 더 많지 않나 싶다. 내가 마이클 조던도 아닌데 사서 한 번 신고 처박아 놓은 신발도 수두룩했다.
그렇게 러닝 브랜드를 시작하고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내가 열심히 뛰지 않은 탓인지 전문 러닝 브랜드라는 개념이 소비자들에게 어필되지 않아 결국은 브랜드 운영을 중단해야만 했다.
뼈아픈 실패지만 덕분에 러닝과 러닝 용품에 대한 꽤 많은 지식을 얻었다. 지금은 삼성물산에서 브랜드를 잘 키워주고 있는 듯해 흐뭇하다. 한강 변에 나가면 실제로 신고 뛰는 사람들도 종종 보여서 더 좋다.
<photo 아디다스>
새 신발이 궁금한 초보 러너
어쩌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새긴 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러닝이라는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잘 달리지 못하는 주제에 러닝화에 대해서는 좀 지나치게 잘 아는지라, 아직 집에 발도 안 넣어본 러닝화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새 러닝화를 사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신 기술이 접목된 러닝화들이 브랜드마다 나오고 있는데 안 신어보고는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 큰 맘 먹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장비도 업데이트 해줘야지. 나는 세상이 다 아는 맥시멀리스트 아닌가.
신지 않는 러닝화 몇 켤레를 당근으로 처분하고 주위에도 좀 나누어 준 후, 성능이 궁금한 최신 러닝화를 몇 켤레 사들였다. 특히 카본 플레이트를 밑창에 넣어서 마치 스프링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마라톤 선수들이 기록 단축을 위해 애용한다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신발들이 궁금했다.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나이키 줌엑스 베이퍼플라이 넥스트%2>
딱히 빠르지도 않고 마라톤은 아직 하프 마라톤도 완주를 못하는 실력에 기록 단축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초보 러너가 그게 왜 필요하냐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도저히 궁금해서 못 견디겠는 것을 어떡하나.
그리고 중창의 쿠셔닝 소재를 만드는 기술도 지난 4~5년 새에 꽤 발전한 듯하니 유튜브의 러닝화 전문 리뷰 채널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장바구니에 신발을 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사들인 최신 러닝화들을 돌려가면서 신고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 워낙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게으른 성격이라 뛰러 가기 전에 나가지 말아야 하는 핑계를 백만 스무 개 정도는 댈 수 있지만, 새 신발을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게으름을 이긴다.
아직 속도도 거북이처럼 느리고 거리도 한 번에 5~6㎞ 정도 밖에 못 뛰는 초보 러너이지만, 러닝화만큼은 마라토너나 유튜브의 전문 리뷰어처럼 분석하며 즐길 수 있다.
오늘은 이 신발을 신어볼까, 저 신발을 신어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자, 오늘은 컨디션이 좀 별로니까 최대한 편하고 리무진처럼 물렁물렁한 쿠셔닝 좋은 놈을 골라 신고 나가야지, 오늘은 에너지가 좀 넘치는 날이라 빨리 뛸 수 있을 거 같으니 그에 걸맞은 가볍고 통통 튀는 스포츠카 같은 놈을 신고 나가 봐야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근데 실제로 좋은 러닝화는 기록 향상과 부상방지에도 도움을 주니까, 이게 단지 초보 러너의 주제 넘는 취미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당연히 좋지 않겠나
다들 초보가 무슨 장비빨을 세우냐며 실력이 출중하고 장비에 좀 무심한 것이 멋지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장비에 관심을 갖는 게 왜 나쁜가 싶다.
장비에 돈을 들이느니 실력부터 키우라는 기조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대다수의 일반인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태릉 선수촌에 들어갈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 없는데, 좋은 신발 한 켤레를 사 신을 자격을 얻기 위해 실력을 키우라는 것은 좀 가혹한 요구가 아닌가 싶다.
골프도 등산도 사이클링도 테니스도 거의 뭐 마찬가지다. 사실 나처럼 비정상적으로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적절한 장비를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엘리트 스포츠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이기 때문에 육체적 한계를 보완해 줄 장비는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무리 초보자라고 해도 좋은 러닝화를 신고 달리는 것이 당연히 좋지 않겠나.
그래서 러닝을 시작한지 두어 달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사들인 신발이 또 대여섯 켤레는 된다. 최신 기술의 쿠셔닝 소재와 브랜드별 특성을 비교해 가면서 신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러닝화 덕질이 시작된 것은 다 카본 플레이트의 등장 때문이다. 카본 플레이트라는 것은 철보다 강하지만 무게는 훨씬 가벼운 카본이라는 소재의 얇은 판으로, 이것이 신발의 중창에 들어가면 마치 스프링과 같은 역할을 해서 기록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엘리우드 킵초게라는 마라톤 선수가 있다. 비공식 기록이기는 하지만 인류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이내에 완주한 사람이다.
공식 대회에서도 2시간에 근접한 기록을 몇 번이나 낸 선수인데, 2시간의 벽을 돌파한 코스에서 신은 신발이 바로 나이키가 만든 카본 플레이트가 3장이나 들어간 러닝화였다.
이 신발은 기술 도핑이라는 화두를 던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기술 도핑이란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한 최신 기술 장비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것 때문에 세계육상연맹(World Athletics)은 신발에 들어가는 카본 플레이트를 한 장까지만 허용하는 새로운 룰을 만들었다. 이후 모든 국제 마라톤 대회의 선두를 장식하는 선수들의 발에는 어김없이 나이키의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러닝화가 신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이키만의 특허는 아니었던 듯, 러닝화를 만드는 모든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신발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달린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만해도 마라토너들을 위한 신발이란 누가 최대한 가볍고 밑창이 얇으면서 충격흡수가 되는 신발을 만드느냐가 화두였는데, 이제는 카본 플레이트는 기본 장착에 충격흡수를 위해 중창이 충분히 두꺼운데도 가벼운 신발을 만드느냐로 바뀌어 버렸다.
이 트렌드는 전문 육상 선수들뿐 아니라 달리기를 즐기는 아마추어 동호회인들 사이에서도 급속도로 퍼졌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이 정보와 트렌드를 더 빠르게 실어 날랐다.
조금이라도 달리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신발을 신어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신기만 하면 기록이 단축되고 그동안 느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러닝 경험을 선사해 준다는데 신어보고 싶지 않은 러너가 어디에 있겠는가.
심지어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신발들은 가격도 상당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러너들 사이에서 커다란 유행으로 번져 나갔다.
당연히 나도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신발을 사서 신어 보았다. 감히 카본 플레이트가 들어간 신발을 신을 정도의 실력도 안 되는 주제지만, 오히려 그래서 나의 비루한 실력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몇몇 러닝 유튜버들의 말을 들어보니 초보자에게도 그 나름의 기능적 도움을 주는 듯했으니까.
신어보니 과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통통 튄다. 신발이 나를 막 밀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더 뛰어보니 역시 초보자에게는 지나친 기술인가 싶었다. 그래도 경험해 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신발의 고기능에 걸맞은 러너가 되어야지, 라고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달리기 자체도 즐겁지만, 각 브랜드의 최신 러닝화를 신고 비교하며 달리는 것이 너무 즐겁다. 잘 뛰건 못 뛰건, 즐겁게 뛰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대다수의 나같은 일반 러너들이라면 무엇이든 오래오래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내 경우는 그것이 신발인 것이고.
그러다가 실력이 점점 쌓이다 보면 언젠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에 꾸준히 달리기를 해서 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 때 쯤에는 해외 여행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될 테니 뉴욕, 보스톤, 와이키키에서 열리는 마라톤에는 꼭 참가해 보고 싶다.
현지의 러닝화 전문 매장에 가서 신발도 두어 켤레 사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 동네의 맛집에 가서 맥주며 와인이며 음식을 실컷 먹고 즐기다가 오고 싶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새로 나온 러닝화의 끈을 꽉 묶고 문을 열고 뛰러 나간다.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 이전글라멘 르네상스 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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