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과 마늘을 먹는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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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명광 비루트웍스 대표 (mkcho7@gmail.com) 작성일 2021년 12월 13일 URL 복사본문
브랜드 어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 소에 낙인을 찍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원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시장에서 브랜드의 탄생은 개인의 소유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할 수 있으니 사실 언제부터인지 딱 꼬집어 알 수는 없다.
내꺼라고 표시하는 거 모두가 브랜드가 아니겠는가?
보통 브랜드라 함은 시장에서 경쟁자와 다른 상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분’의 의미에, 내 상품이 더 믿을 수 있다는 ‘신뢰’의 의미도 줄 수 있고, 더 비싸거나 가치있다는 ‘럭셔리’의 의미를 갖기도 하며,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브랜드가 가진 의미를 두고 시장에 처음 탄생했을 때 가졌던 기본적 속성으로 정의하기엔 너무 올드하다.
물론 그런 속성은 기본이 되었고 현재 브랜드를 설명하고 정의 내릴 수 있는 키워드는 ‘인격체’라고 할 수 있겠다.
MZ세대는 요즘 자기를 소개할 때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는 누구누구라고 소개한다. 어떤 이들은 아예 특정 브랜드를 닮고 싶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이제는 브랜드가 단순히 기능이나 사용성 측면에서 취급받던 그리고 정의됐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브랜드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서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는 수명 연장은커녕 소비자의 사랑이나 관심을 받기조차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이키는 오랜 세대에 걸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아하는 브랜드에 항상 올라 있다.
비결이 무엇일까? 신발로서의 기능이 월등해서? 가격이 착해서? 사실 그런 이유보다는 “내가 나이키를 신는 것은 나이키이기 때문이지 신발이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나이키 때문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1. 브랜드 사람으로 태어나다
나이키를 입는 혹은 신는 사람들을 묘사해보면 어떤 모습일까?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액티브하게 살며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나이키는 브랜드 액티비즘(사람처럼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행동하는 것)의 대명사가 되었다.
2020년 5월 미국 미네소타 미내이폴리스에선 조지 플로이드가 미국 경찰에 무릎에 눌려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시위와 폭동이 일어나고 주 방위군이 소집되기도 했다. 사건 4일 후 나이키는 ‘For Once, Don’t do it’으로 시작하는 광고를 자사 홈페이지에 실었다.
이 사건에 애도를 표하고 많은 사람들이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나이키는 이 사건 외에도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을 하여 중국 내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이키의 전향적이고 일관적인 목소리는 나이키라는 거대한 사람이 시대정신을 부르짖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신발이지만 미국에서도 나이키 화형식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키는 여전히 소비자로부터 최애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성이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중국 같은 거대시장에서 매출이나 이익의 감소는 전체 비즈니스에 영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키는 진정성과 가치관을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신념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나이키가 동남아 시장에서 아동 노동 착취나 인권 없는 노동 강도 등을 통해서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협력업체를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가능해졌다.
브랜드 액티비즘 기업이 늘어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브랜드를 선택하지 않는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에 있다.
소비자도 단순히 소비만을 하는 집단이 아니라 시장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생존과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모든 브랜드들도 세계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해주길 요구하는 출발선이 됐다.
2. 브랜드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라
산업화로 인해 생산이 늘어나고 효율이 좋아지면서 소비자들은 질좋고 다양한 상품들을 시장에서 만나게 됐다.
소비자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모든 브랜드가 필요한 존재처럼 여겨졌지만 21세기 공급과잉으로 인해 자원은 줄어들고 환경은 파괴되면서 점점 존재의 가치가 필요한 브랜드만 선택받는 길로 시장은 변화하고 있다.
브랜드가 선택받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를 브랜드 이론에서는 ‘브랜드 철학’ 또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이 브랜드가 없어져도 전혀 어느 누구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나이키는 스포츠 브랜드이다. 스포츠 브랜드는 운동을 할 때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이키 말고도 많은 브랜드가 있는데 왜 나이키일까?
나이키가 시장에 나왔을 때 나이키는 지속적인 운동화 개발을 통해 기록을 단축시키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다.
나이키는 브랜드 시작에서부터 스포츠가 해야할 일 그리고 스포츠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프로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스포츠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한 단계 넘어서길 원했다. 이는 나이키가 초기부터 지켜온 정신이다.
아무리 루이비통과 협업을 해도 나이키는 패션 브랜드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패션에 나이키를 끌어들여 패션화시키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여전히 스포츠 브랜드로서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고 있고 스포츠 브랜드로서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
2017년 나이키는 브레이킹2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라톤의 한계인 2시간 벽을 깨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세계 최고기록은 2시간 2분 57초였는데 이 한계를 넘기 위해 선수 선별, 훈련법, 식이요법, 심리상태, 그리고 신발까지 최적화하는 프로젝트였다.
계획된 환경이기는 했지만 엘리우드 킵초케는 1시간 59분 18초에 42.195킬로미터를 완주했다.
나이키 창립자 빌 바워만은 “달리기의 진짜 목적은 경기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이키는 여전히 존재의 이유를 소비자에게 말하고 있다.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가 사라졌다. 스포츠 의류가 일상복이 되고 운동화와 구두의 경계도 사라져간다.
어느 스포츠 브랜드처럼 패션 브랜드를 지향했다면 나이키가 여전히 나이키로 존재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3. 브랜드 소비자와 생각을 교감하다
소비자의 소리를 무시하고 생존할 수 있는 브랜드가 있을까? 과거에는 필요에 의해 생산이 이뤄졌다.
빨래가 힘들어서 세탁기가 나왔고 빨리 상하는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가 나왔다.
식당에서 지갑이 없어 낭패였던 경험이 다이너스라는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를 만나게 했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필요에 의해 등장하는 상품들보다 소비자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나오는 제품들이 선택된다.
고객들이 되고 싶은 브랜드란 결국 사람처럼 서로 생각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일방적인 상품 제공으로는 이제 소비자 선택지에 들어가기 힘들다.
미국의 주말 오후 20~30대 여성들이 줄을 서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글로시에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다.
2014년 론칭한 글로시에는 매년 세자리수 성장을 하면서 기업가치가 3년 만에 한화로 약 1조4천만 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브랜드는 창업자가 화장품 관련 블로그를 시작하고 구독자들과 교감하면서 4년이 지난 후 브랜드로 나오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소비자들과 교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보통은 인플루언서들을 앞세워 브랜드를 말하고 알리지만 글로시에는 일반 소비자의 이야기를 가장 앞에 두었다.
일반 소비자들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의견들을 모아 화장품을 만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광고로 전했다.
또한 브랜드 앰배서더를 일반 소비자 중심으로 선정하여 소비자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소통했다.
제품 개발 시 소비자들은 서로의 질문에 응답하면서 스스로 제품 개발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슬랙이라는 업무 공유 어플리케이션에 100명의 사용자를 초대해서 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 하게 하고 제품생산에 반영한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소비자는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다. 소비 외에 생산과 유통에 많은 영향을 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감하지 않는 브랜드는 남은 수명이 길지 않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을 버텨야 했다.
100일을 버틴 곰은 인간이 됐는데 지금의 브랜드에게 요구되는 것이 산중의 포식자 곰과 호랑이의 마인드가 아닌 인간의 마음이다.
과거 공급자 중심시장에서 고객의 소리보다는 회사의 이익과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 내던 시대는 종식을 고했다.
브랜드가 인간의 삶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같이 이야기하고 내 취향을 물어봐주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같이 발견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을 바라고 있다.
브랜드의 생존방식은 다양하다. 여전히 가성비가 중요한 것도 있고, 독점적 지위로 변화를 원치 않는 브랜드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원이 부족해지고 환경과 미래세대 먹거리를 같이 고민하지 않는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외면 받을 것이란 사실이다.
기존의 브랜드 메이킹 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빨리 바꾸지 않으면 동굴에서 쫓겨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람이 되는 브랜드, 지금 소비자가 바라는 브랜드 상이다.
경력사항
- 현 (주)디트리스, (주)코네이스 CEO/
씨엘앤코 대표컨설턴트/ 한양대사이버대학원 마케팅MBA 겸임교수 - 전 신세계 백화점 CRM팀 과장
- 현대캐피탈 고객전략팀 과장
- 타이드스퀘어 상품팀 부장
- 삼성카드 브랜드팀 차장
- 인스테리어 CMO
- 저서 : <마케팅무작정따라하기>, <호모마케터스>,<21일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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