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츠 츠타야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희선 일본 유자베이스 애널리스트 (hsjung3000@gmail.com) 작성일 2020년 12월 14일 URL 복사본문
2018년 11월, 홋카이도 삿포로시 옆에 위치한 작은 도시 에베츠시(江別市)에 츠타야 서점이 문을 열었다. 이 곳 츠타야 서점은 여태까지 우리가 흔하게 만났던 서점과는 조금 다르다. 음식점, 생활 잡화, 아웃도어용품점 등 17개의 다른 업종이 츠타야 서점 안에 들어와 있다. 스타벅스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키즈 파크, 이벤트 스페이스 등까지 마치 작은 쇼핑몰 같은 분위기이다.
에베츠 츠타야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서점’으로 유명한 츠타야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는 동시에 츠타야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최근 필자는 삿포로를 방문할 기회가 생겨 에베츠 츠타야 서점을 직접 다녀왔다.
에베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도시 이름이었다. 삿포로에서도 자동차 혹은 열차를 타고 약 30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작은 도시이다.
전원도시에서의 ‘슬로우 라이프스타일’ 제안
에베츠로 가는 길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도시에 들어서자 단독 주택들이 늘어선 평온한 교외 마을이 나타났고 에베츠 츠타야는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츠타야가 에베츠에 새로운 서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왜 에베츠라는 시를 선택했을까’였다. 약 1만3천 평이라는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점과 주변에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상업시설이 없다는 이유도 컸겠지만,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은 에베츠시의 두 가지 특징에 주목하였다.
<에베츠 츠타야는 다이칸야마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를 건물 주변에 옮겨 심어 숲 속에 있는 듯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최근 삿포로 시내의 땅값이 올라 교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에베츠로 유입되는 인구가 증가하고 점. 여기에 에베츠시에는 녹음이 우거진 자연이 남아있어 에베츠 츠타야의 콘셉트인 ‘전원도시의 슬로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가족 고객을 타깃으로 한 서점 같지 않은 서점
츠타야는 자연에 둘러싸인 교외 도시, 에베츠에서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을까. 에베츠 츠타야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2층 높이의 건물 3동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건물은 각기 다른 테마, 지식(知), 생활(暮らし), 음식(食)이라는 3개의 콘셉트를 대표한다. 지(知) 영역에는 2층 높이의 천장까지 쌓아올린 책꽂이에 수만 종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곳곳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어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다.
중앙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바깥의 자연을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책을 읽기 좋다. 생활(暮らし) 영역에는 식물, 주방 기구, 인테리어 소품, 아웃도어용품 등 우리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츠타야답게 물건뿐만 아니라 관련 책을 함께 큐레이션해 놓음으로써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을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식물을 판매하는 코너에는 원예 관련 책을, 주방기구 코너에는 관련 도구를 사용한 요리 레시피 책을 배치하는 등 상품과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다양한 생활 모습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츠타야가 힘을 쏟는 지역밀착형 점포
에베츠 츠타야는 지역성을 강조한 소위 ‘지역밀착형’ 점포이다. 최근 지역의 매력을 발산하며 그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텐츠를 강화한 지역밀착형 점포를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4월에 선보인 나라(奈良)의 츠타야 서점은 역사와 문화가 깊은 나라현의 예술작품을 전시하여 지역의 역사를 알리거나 나라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명산품을 책과 함께 큐레이션하고 있다.
에베츠 점포를 지역밀착형으로 만들기 위해 츠타야는 ‘식(食)’분야를 강화하였다. 에베츠의 푸드코트는 홋카이도의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을 모아 놓았다. 쇼핑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점포들이 아닌 홋카이도 지역의 식문화를 살린 지역 음식점들을 유치한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생산된 밀가루로 만든 베이커리를 포함해 홋카이도산 식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지역밀착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해 이벤트에도 힘을 쏟고 있다. 요리나 수공예 등 현지 주민이 개최하는 이벤트를 많게는 월 100회 이상 개최하고 있다.
제안, 공간 설계 그리고 지역성
츠타야의 대표인 마스다 무네아키는 “서점은 단순한 도서 판매 장소가 아닌 고객에게 새로운 ‘제안’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공간 설계 또한 최대한의 여유와 편안함을 주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에베츠 츠타야 서점의 기획/영업팀 리더는 “책의 재고나 다양성으로는 아마존과 경쟁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책을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점포에서는 새로운 생활 스타일을 제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베츠 츠타야는 츠타야 철학의 본질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역할에 충실한 곳이다. 에베츠에 거주하는 가족단위의 고객들을 위해 식생활과 주거 생활, 취미 생활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큐레이션하여 제안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는 공간, 멋진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스타벅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은 츠타야를 방문한 고객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지역성’을 통해 다른 츠타야 서점과 차별화시키고 있다.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점포, 똑같은 풍경을 만나는 츠타야가 아니라 지역과 융화되고, 지역의 특징을 발산하면서, 그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츠타야를 만들고 있다. 에베츠 츠타야는 책을 너머 음식과 생활용품까지 라이프스타일의 모든 영역을 제안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탈서점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에베츠 츠타야에서 다른 어느 서점에서보다 더 자주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삶의 다양한 영역을 제안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결국 ‘책’이라는 존재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잘 설계된 공간에서 고객을 몇 시간이고 머무르게 하고, 몇 번이고 책을 들어 펼쳐보도록 하는 힘. 이것이야말로 츠타야 서점만이 가진 힘이 아닐까.
경력사항
- 현) 일본 유자베이스 (UZABSE) 애널리스트
- 전) LEK 컨설팅 도쿄, 경영 컨설턴트
- 저서 <도쿄 리테일 트렌드>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사지 않고 삽니다>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퍼블리 (PUBLY) 등 다수 매체에 트렌드 칼럼 기고 중
-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켈리 비즈니스 스쿨 MBA (마케팅 전공)
- 이전글온라인에서 오모테나시 정신을 만나다 20.12.28
- LIST
- 다음글일본 2021 트렌드 예측, 언택트 시대에 일하고 노는 법 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