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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 세대 교체 바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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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수한 기자 (saeva@fpost.co.kr) | 작성일 2020년 10월 26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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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이라는 사자성어가 지금처럼 딱 맞아 떨어진 때가 있었을까.

 

옛 것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 맞게 새 것을 이해하여야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참으로 익숙한 말이지만 한편으론 실행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학문에서나 쓸 법한 이 표현은 알게 모르게 지금 우리에게 더욱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코로나로 모든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앞으로 어떤 비즈니스 세계가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에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지 다소 막막하기만 하다.

 

방향은 어떻게든 만들어간다 하더라도, 모든 기업들이 직면한 과제 중 가장 해결이 어려운 것은 인력의 운용에 대한 것이다.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것 또한 스킬이고, 실력이다. 그만큼 사람을 잘 파악해 조직을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조직 구성원들의 속을 알 수가 없기에 모든 경영진들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는 바로 ‘인사(人事)’일 것이다.

 

인사는 말 그대로 ‘사람의 일’이다. 조직에서 사람의 일을 담당하는 부서가 인사팀인 것처럼 말이다. 인사팀이 한창 바빠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대기업들은 벌써부터 경영진의 인사를 시작했다. 줄이고, 자르고, 새로 선임하고, 인사팀에게 야근의 계절이 오고 있다.

 

You Must Come Back Home

 

인사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계절이 왔다는 뜻이다. 패션 업계 역시 예외는 없다. 실적은 바닥이고 책임질 사람은 필요하다. 벌써부터 낙엽 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패션계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부터 야심차게 사업을 이끌겠다고 컴백한 대기업 임원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스스로 물러났을 수도 있지만 ‘자의반 타의반’이 대세다.

 

정리 해고의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올드 보이(Old Boy)’다. 

 

패션계에서 사실 경험과 구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수없이 다양한 일들을 겪었고, 문제를 해결했고,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개국공신들의 공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시대를 잘 타고 넘지 못해, 매출이 줄어들고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누구를 정리해야 할 것이냐는 난제에 대한 해답이 ‘올드 보이’인 것이다.

 

한 중견사 경영자는 “임원 한 명의 연봉이면 한창 열심히 일할 막내 직원 서너 명은 쓸 수 있다. 물론 임원들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둘 중에 한 쪽을 고르라면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칼바람은 유통가에서부터 먼저 시작됐다. 신세계이마트는 최근 단행한 임원 인사를 통해 개국공신들을 밀어내고 새 술로 부대를 채웠다. 대표이사급 임원 10여명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자리에는 젊은 인력들이 새롭게 선임됐다. 강희석 대표를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급격하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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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au.hudson> 

 

무거운 몸집 먼저 ‘아웃’

구실이 참 좋다. 코로나로 매출이 떨어지고, 수익이 없으니, 인건비라도 줄여야겠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같은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 자금 조달도 어렵고 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LF,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신원, 신성통상 등 대기업과 중견사부터 아웃도어, 골프, 여성복, 잡화 전문기업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세대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세대교체 작업은 이미 대세가 되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왔던 임원들은 변명의 여지도 없이 회사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책임론을 들이밀었을 때 다른 할 말도 없다. 임원들은 대부분 계약직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도 전혀 없다.

 

사업부장급 임원들의 연봉은 거의 한 장(1억원) 안팎이다. 세금을 떼면 실 수령액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당연히 직원들보다는 많다. 대기업 임원이나 디자이너들은 상황에 따라 연봉이 더 높다. 비싼 몸값만큼 정리 대상에서도 1순위다.

 

사업부장은 좀 더 젊고 패기 있는 차부장급 인력을 승진시켜 맡기고, 디자인 디렉터 급 인력들의 경우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역할이 대체로 작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남성복의 내로라하는 디렉터들이 연이어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대부분 2.5~3세대 디자이너로 나이는 50대이다.

 

브랜드들은 남다른 감성의 디렉터를 유지하기보다, 보편타당한 디자인을 하는 젊은이들을 더 고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트렌드는 더욱 미니멀리즘하게, 이지하게, 편안하게 바뀌고 있다. 쫙 빠진 착장을 선호하는 고객들보다는 평범하지만 무난한 디자인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소비의 증가도 한몫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 중심의 기업들은 온라인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가면서, 그동안 오프라인에 최적화되어 있던 인력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젊어지는 패션계

50대를 넘어 선 나이 많은 올드 보이들이 올 해 대거 퇴진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패션계의 평균 연령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 50대는 한창 일할 나이였겠지만 지금은 ‘노땅’ 취급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더 젊고 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를 찾고 있다.

 

최근 한 캐주얼 브랜드는 30대 사업부장을 선임했다. 젊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이 회사 대표의 특단의 조치다. 옷은 젊은이들에게 팔고 있는데 사업부장 자리는 인스타그램도 모르는 올드보이에게 맡겨 왔던 것이 패착이었다는 판단에서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이 같은 결정은 고려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움직이던 패션과 유통의 흐름이 코로나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급속히 변화했고, 업체들은 위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직면했다.

 

인력 구성의 변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은 당연하다. 베테랑들은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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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만능 플레이어’

현 시대에 기업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력상은 만능 멀티 플레이어다.

 

한 가지 일만 잘해서는 안 된다. 책임자들은 제품도 볼 줄 알아야하고, 숫자도 볼 줄 알아야하고, 영업적인 네트워크도 있어야하고,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전의, 지금까지 살아남은 올드보이들은 전공이 따로 있었다.

 

영업 본부장은 상품을 보기 쉽지 않다. MD통이라면 디자인이나 영업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디자이너 역시 백화점을 쫓아가 바이어들과 융통성 있게 딜을 하는 것이 수월하지는 못하다. 물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존재했다.

 

과거 디자이너가 사업부장을 맡게 되면, MD의 입장에서도 보고, 백화점도 쫓아가 바이어도 만나 매장 위치도 협의했다. 그러나 누구나 잘할 수는 없었다. 적성에 맞는 사람은 잘 이끌어 나가기도 했고, 성격에 맞지 않는 사람은 도태되기도 했다. 

 

시대가 원하는 인력상이 점차 바뀌면서 한 가지 밖에 할 줄 모르는 임원들보다는 여러 가지 일을 닥치는 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어쩌면 조금 막무가내 일수도 있는 젊은 친구들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NO’를 외치는, 자신의 책임이 될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임원들보다 회사의 성장과 존속을 위해 역동적으로 조직에 융화되는 멀티 플레이어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 여성복 업체 대표는 “기존의 틀에 갇혀 있기보다 창의적인 비즈니스 툴을 생각해내고,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는,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팀장들을 보면 나조차도 힘이 난다. 솔직히 젊은 친구들에게 전문 경영인의 자리를 맡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집으로 돌아가는 이의 뒷모습은 쓸쓸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장강 후랑 최전랑(長江 後浪 催前浪)’이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뜻으로 ‘옛 사람은 가고, 새로운 사람이 온다’ 또는 ‘이전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곧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패션계는 격변의 시대를 겪고 있고, 생존에 대한 문제로 휩싸여 있다. 

 

옛 사람은 가고 새 사람이 오고 있다. 동시에 이전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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