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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패션산업은 무엇을 버리기로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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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유겸 FITI시험연구원 본부장 (youkyum@hotmail.com) | 작성일 2021년 07월 26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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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동차 시장의 화두는 단연 전기차이다. 이런 변화는 유럽을 중심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 판매 금지 조치 발표에 따라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전기 자동차의 시대

2025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2030년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2035년에는 영국, 2040년에는 프랑스, 스페인, 싱가포르, 대만의 순으로 신규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금지 조치를 시행한다. 프랑스 파리는 2024년부터 디젤차를, 2030년에는 가솔린차 운행을 금지한다. 

 

유럽연합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은 203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금지하기로 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워싱턴, 뉴저지, 매사추세츠 등 10개 주정부 주도로 2030년~2035년에 걸쳐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디젤게이트 사태를 겪으면서 친환경 자동차의 필요성 때문에 전기차 도입이 증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내연기관으로부터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때문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적인 합의에 따른 이행 방안으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 중단과 전기차 전환을 발표하고 있다. 

 

볼보는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 GM은 2035년 이후 휘발유와 디젤 엔진 자동차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을 선언, 포드는 독일 쾰른에 있는 조립 공장을 전기차 생산 시설로 전환해 2030년부터는 유럽에서 전기차만 판매할 것을 선언했다. 

 

폭스바겐은 2029년까지 전기차 75종을 출시해 전기차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벤틀리는 모든 판매 모델을 2030년 100% 전기차로 전환, 재규어도 2025년부터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도 2040년부터 미국과 유럽, 중국 등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내연기관 신차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아직 우리나라의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중단은 결정되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 엔진을 버리기로 했다

자동차 역사상 1800년대 전기모터가 먼저 도입됐지만, 이후 석유산업의 발전과 함께 가솔린과 디젤이라는 고농축 에너지원을 연료로 기반으로 하는 내연기관 엔진이 자동차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약 14억 9천만 대의 자동차는 쉴 새 없이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고 있다.

 

한편,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소개되는 전기차를 대할 때 눈에 띄는 변화는 하늘색 번호판 뒤에 보이는 전면부 그릴이다. 막혀 있는 전면부 그릴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기차가 나타나면서 생긴 변화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변화는 전기차에는 내연기관 엔진이 없다는 점이다. 휘발유, 디젤을 연료로 작동하는 엔진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핵심 부품이자, 기술의 우수성과 차별성을 보여주는 자동차의 심장이라고 일컬어 온 존재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는 ‘심장’을 버리는 데 합의했다. 전기차 도입으로 그동안 회사의 모든 자본력과 기술력을 쏟아부어 발전시킨 엔진을 버리기로 했다. 

 

그 ‘엔진’을 버리지 않으면 회사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온도 상승을 산업화 시점 대비 1.5℃ 이내로 억제하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5%, 2050년까지 100% 줄여야 한다는 것이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보고서에 따른 국제적 합의이다. 이 국제적 합의에 엔진의 사용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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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전기자동차 아이오닉​>

 

세상은 탄소중립화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50년 탄소중립화를 선언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산업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각 산업별로 R&D 기획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의 총 감축이행 목표에 따라 우선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에 대한 개선을 통해 국가 감축 목표 달성을 시도 중이다. 

 

반면 섬유·패션 산업의 배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산업계 내부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느껴진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적은 것은 섬유·패션 산업 자체의 효율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산업 자체의 축소, 그리고 구조적 특성 때문으로 생각된다. 상당수의 생산 시설이 해외로 이전했고,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큰 섬유 스트림 또한 국내에서의 기반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섬유·의류 산업 전체 스트림에서 섬유(fiber) 생산 부문 15%, 원단(textile) 생산 부문 76%, 봉제 및 유통 부문에서 8%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재 국내 섬유·의류 산업 스트림을 기준으로 탄소중립화를 추진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온실가스 저감 방안은 해당 산업과 기업을 모두 국내에서 없애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전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만을 고려할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일 뿐이다. 

 

탄소중립화는 지금 모든 산업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과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화석연료로 태워 손쉽게 소재와 제품을 만들던 방식을 모두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설사 재생에너지를 통해 산업의 에너지원을 대체하더라도 그 에너지 사용량은 절대적으로 축소돼야 한다. 

 

2050년까지 충분한 재생에너지원이 확보되지 못하면, 각 산업에 필요로 하는 절대량의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섬유·패션산업은 1차 산업혁명 때와 같이 산업 자체의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 직면해 있다. 

 

자기잠식은 기회를 만든다 

오늘날의 섬유산업은 1차 산업혁명 이후 그 틀이 바뀌지 않았다. 패션산업은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글로벌 산업으로서 섬유산업과 연결돼 패스트패션을 만들어내면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공장 효율화 등을 통해서 이미 에너지 비용 절감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글로벌 패션업계에서 계획하고 있는 2030년 45% 감축, 2050년 Net-Zero 달성이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다.

 

반면 향후 국내 섬유·패션산업은 탄소중립화에 수동적으로 단순히 따라가는 자세를 취할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또 다른 차원의 산업과 비즈니스의 기회를 만들어 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자동차 업계는 핵심기술인 엔진을 버리고 새로운 기회와 만나기로 결정했다. 과연 섬유·패션업계는 무엇을 버려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큰 염색·가공 부문에서는 무엇을 버릴지, 그리고 뒤를 이어 방적사(yarn) 제조, 섬유 제조, 원단 생산 부문에서는 탄소중립 시대를 맞이할 어떤 준비와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탄소중립화를 위해 전기차를 선택한 자동차 산업계의 2년 전 반응은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전기차 전환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가격에 따른 소비자의 선택 제한, 충전 인프라 부족에 따른 문제 등 전기차 전환에 따른 문제점 해결책 제시보다는 문제점, 기술적 장애요소에 대한 나열을 통해 부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중장기적으로 내연기관의 기술 발전, 하이브리드 기술을 통한 시장 대응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은 국내 업계를 대표하는 학회, 협회 그리고 자동차 메이커 사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주장과 단기적 대안 제시는 국제 사회 공동의 의제인 탄소중립 안에서 의미를 잃었다. 

 

자동차 업계는 엔진을 버리는 자기잠식을 통해 새로운 기준과 세상에 맞춰 자신을 변모시키기로 결정했다. 섬유·패션업계는 그냥 모두 그대로 짊어지고 가면 탄소중립이 해결될까? 우리 업계가 2년 전 자동차 업계가 제시했던 것처럼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만을 얘기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방식으로는 2050년 탄소중립화된 섬유소재와 패션 의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패션산업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 45% 이상 절감된 소재를 원하고 있고, 이를 만족하는 섬유소재를 공급하는 기업은 비즈니스가 계속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비즈니스는 멈추게 될 것이다.

 

그동안 얘기해 온 지속가능성은 기업들이 나름대로 각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여정이라면 탄소중립은 절대기준이다. 이 기준을 넘으면 기업과 산업은 존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진다. 디지털카메라를 세상에 최초로 판매했던 최고의 필름 회사는 그 필름을 버리지 못해서 사라졌다. 자기잠식을 내가 주도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나를 잠식 시켜 사라지게 할 것이다. 

 

세상의 기준이 바뀔 때, 게임의 룰이 바뀔 때 기회가 온다고 했으니 지금이 바로 섬유·패션산업에는 그 기회이다. 그동안의 성공 경험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과감히 버릴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세상은 이전과 달라지기로 모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앞으로 우리 자손들은 전기차를 운전하면서도 숯불구이 갈비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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