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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본질, 어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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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아 글쓰는 마케터 (atoz_story@naver.com) | 작성일 2021년 05월 10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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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어깨와 골반이 콤플렉스다. 조금 낙낙한 옷을 입으면 어깨빵으로 다 이길 것 같은 몸뚱어리로 보이게 만들고, 주름 스커트를 입으면 인간 다리미가 되어 주름을 모두 펴 버렸다. 

 

아무리 낑낑거려도 허벅지에서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않는 바지에 여러 번 좌절한 후 모든 바지와 결별했다. 혹시 공주병 아니냐는 소리에도 꿋꿋하게 치마 외길 인생을 살아온 지 어언 15년. 15년 만에 다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바지를 집어 든 것은 순전히 지인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바지를 입으면 지퍼가 잠기지 않거나, 잠겨도 뚱뚱해 보일 거라며 손사래를 치는데도, 입어보라며 기어이 나를 탈의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친구와 점원들, 나를 제외한 그들은 바지가 너무 잘 어울린다며 호들갑이 시작됐다. 결국 그 바지를 사서 나왔다. 친구는 선물로 줄 테니 며칠만 입어보고 그래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가서 버리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 후 다시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당시 산 바지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입는 옷이 됐고, 용기를 얻어 5년간 여러 벌의 바지 구매를 시도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실패였지만, 이제 ‘내게 어울리는 바지’도 세상에 몇 벌 정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바지를 입기 시작하자 캐주얼한 티셔츠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으며, 발가락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구두에서 내려와 편안한 운동화에 안착하게 됐다.

 

만약 친구가 선물로 그 바지를 사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치마만을 고집했을 거다. 내 옷은 내가 사고, 나의 체형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으로 비슷한 옷들만 구매하게 되니 말이다. 

 

지난날 구매한 옷들을 보면 하나같이 같은 스타일이다. 골반이 드러나지 않는 플레어 치마, 그리고 어깨가 덜 넓어 보일 수 있는 카라 없는 블라우스. 그저 색깔만 다를 뿐이다.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패션 전문가가 개인의 체형을 이해하여 그에 맞는 옷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스타일을 즐겨 입는지 파악하여 선호도가 높은 옷도 추천해 주지만, 분명 어울릴 텐데 입어보지 않은 스타일의 옷까지도 과감하게 제안하는 그런 서비스 말이다. 이미 있다고? 나도 안다.

 

퍼스널 쇼퍼. 백화점 VVIP가 되면 굳이 매장마다 돌지 않아도, 퍼스널 쇼퍼가 고른 옷들을 퍼스널 쇼퍼 룸에서 편하게 입어보고 구매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세계이니까 논외로 치겠다.

 

알고리즘으로 쌓아가는 나만의 성벽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댓글이다. 유튜브에 어느 콘텐츠를 검색하고 나면 그 기록이 남아 추천영상에는 비스무리한 것들로 도배된다. 

 

쿠팡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리디북스에서 책을 주문할 때도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이라는 코너가 함께 뜬다. 덕분에 쉽고 편하게 내 취향의 것들로 삶을 채울 수 있지만, 문제는 편협한 취향 안에 갇힐 수 있다는 거다.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는 그의 저서 ‘생각 조종자들(The Filter bubble)’에서 알고리즘이 낳을 수 있는 ‘필터버블’에 대해 지적했다.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란 정보제공자가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이용자는 필터링 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개별 사용자의 검색 기록에 따라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콘텐츠를 추천해 주고, 그러한 콘텐츠만 접하다 보면 자신만의 세상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도, 새로운 의견도 없는 왜곡된 세계관은 점점 견고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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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스티치픽스>

 

스티치픽스는 패션유통업의 미래?

모든 것이 너무 많은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동굴 속으로 떨어지듯 알고리즘에 의해 비슷비슷한 곳에 떨어지다 보면, 어느새 편협한 사고에 갇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큐레이션이 필요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한 AI의 추천 말고, 취향을 가진 사람이 기획한 그런 큐레이션 말이다.

 

다양성을 경험하고 새로운 취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획 큐레이션 서비스는 이미 많은 곳에서 새싹 자라듯 커져가고 있다. 2011년 미국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된 ‘스티치픽스’는 온라인 퍼스널 쇼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2019년 기준 연매출 1조 7879억 원(2019년 기준)을 달성했다. 

 

개인의 체형과 취향을 고려하여 고객에게 어울리는 옷을 제품을 제안하는 비즈니스 방식은 소비자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스티치픽스를 패션유통업의 미래라고 평가한다.

 

경제지 포춘은 스티치픽스를 ‘패션회사로 위장한 데이터 회사’라고 표현했다. 이 말이 일리 있는 것이 스티치픽스에는 120여 명의 데이터 과학자가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규모의 경제면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는 데이터 과학자의 수보다 훨씬 많은, 5100여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의 성공신화는 고객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도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이용한 ‘고객경험’에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패션유통업의 미래라는 말도 다시 곱씹어 보자. 사실 개개인에게 꼭 필요한 큐레이션 서비스를 해주는 곳은 이미 우리 주변에 많다. 독립서점에서의 큐레이션 서비스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서점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책들이 입고되고, 어떤 곳은 책마다 앙증맞은 메모지가 붙어있기도 하다. 

 

왜 이 책을 입고했는지, 이 책은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지 적어두어 손님들의 선택을 돕는다. 덕분에 전혀 관심 갖지 않던 분야의 책이라도 주인장의 메모를 보고 선뜻 구매를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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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스티치픽스>

 

맞춤 큐레이션은 결국 서비스의 본질

동네 한의원을 떠올려보자. 사실 A증상 때문에 한의원을 방문했으나 진단을 받고 나니 A증상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면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B증상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잘은 모르지만 A증상이든 B증상이든 뭐든 치료하기 위해 한약을 짓고, 그 한약을 짓기 위한 과정에는 오랜 시간 문진을 거친다. 참고로 내가 애용하는 곳에서는 몇 십 개의 질문이 빼곡히 적혀 있는 문진표를 주는데, 그걸 다 작성하면 나에게 꼭 맞는 한약 한 첩이 만들어진다. 

 

나도 몰랐지만 나에게 있는 어떠한 증상 발현을 막기 위해 내게 꼭 필요한 약재들로만 만든 한약 한 첩. 백화점 VIP에게만 제공되는 퍼스널 쇼퍼 서비스보다 데이터 회사라고도 불리는 스티치픽스보다 더 고도화되고 개별적인 맞춤 서비스이다.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서양학이 기준이 되면서 동양학의 많은 것이 사장됐다. 정갈한 한옥지붕에 기와 곡선을 더욱 우아하게 만드는 것에도 건축학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바다 건너 멀고 먼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뾰족한 첨탑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높은 건물에 사용한 고딕 양식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한의학이다. 그만큼 한의학에서의 치료와 처방은 퍼스널 쇼퍼 서비스와 같은 개별 맞춤 서비스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별 맞춤 큐레이션은 이제 막 휘몰아치는 유통 트렌드도 아니고 패션 유통업의 미래는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었던 서비스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대박을 낼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 주변을 둘러보자. 어릴 적부터 있었던 동네 가게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곳에 가보는 것도 좋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오랜만에 들러 주었다며 나를 알아봐 주지는 않는지, 혹은 오늘은 싱싱한 횟감이 들어왔으니 어느 회를 먹어보라고 추천해 주지 않는지 면밀하게 살펴보자. 그곳에 대박의 비밀, 즉 서비스의 본질이 숨어있다.​ 

경력사항

  • 프리랜서 브랜드 마케터&에디터
  • 현) 인스텝스 콘텐츠 마케터
  • 현) 스톤브랜드커뮤니케이션즈 콘텐츠 마케터
  • 현) 국제디지털노마드협회 마케터
  • 전) 그라스메디 브랜드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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