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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찾아낸 변화의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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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macrostars@gmail.com) | 작성일 2021년 02월 22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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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패션쇼 시즌이 돌아왔다. 백신이 나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패션쇼 진행되고 있다. 매년 1월에는 남성복 FW 패션쇼와 오트쿠튀르 컬렉션이 열린다. 그러나 올해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위기가 급작스럽게 찾아오면서 파리, 뉴욕 같은 큰 도시에 다들 모여 축제처럼 즐기는 컬렉션은 불가능해졌고, 컬렉션에 참여하던 브랜드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쇼를 만들어 갔다. 

 

2020년은 언택트에 익숙해지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었으며 지구 전반에 걸친 실시간 소통의 시대에 패션위크라는 기존 형식의 단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탐구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위기가 지난 뒤 찾아올 소비의 시기를 두고 이미 벌어진 경쟁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브랜드들은 그때의 방법론을 조금씩 더 발전 시켜 나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캣워크라는 한정된 장소를 벗어난 이후 영상, 음악, 공간의 적극적인 활용이 두드러진다. 

 

영역을 파괴하다 

패션쇼는 그저 옷만으로 독립된 무대가 아니라 정치적 태도, 사회적 태도, 관심사 등 라이프스타일의 연장선이자 다양한 문화 활동이 어울려 섞일 수 있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 분야에서도 패션은 공간, 음악 등의 배경과 함께 의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케이팝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패션을 다루고 있다. 각자 위치에 따라 중요도는 다르지만 이 모든 것들은 긴밀하게 연동되어 움직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올해 패션쇼는 꽤 재미있다.

 

버질 아블로의 루이 비통은 패션쇼에서 영화와 뮤직비디오, 기존 캣워크의 방식을 교차해 보여주었다. 시작하자마자 눈 덮인 산과 숲이 나오고, 느린 인서트(insert) 화면처럼 슈트를 입고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패션쇼를 선보일 공간과 겹친다. 주변에 누워 있는 사람, 대화를 하는 사람, 그냥 서 있는 사람 등 마치 무대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 이어진다.

 

버질 아블로의 경우 여러 예술 분야, 대중문화 분야를 넘나들며 인용과 오마주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데 이번 패션쇼의 경우 건축가 미스 판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꼭 닮은 세트가 눈에 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버질 아블로는 미스 판 데어 로에가 자신의 미적 감각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부쩍 강조해 왔으며 이번에 적극 활용을 했다.

 

시공간을 넘나들다

건축가가 큰 영향을 발휘한 컬렉션으로 프라다가 빠질 수 없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와의 공동 디렉팅이 이어지고 있는 프라다의 이번 컬렉션에서는 건축가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레드, 화이트, 핑크 등의 퍼로 뒤덮인 여러 방이 등장한다. 모델들이 방을 가로지르며 워킹을 하는 동안 다른 방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델들의 모습들이 간간이 비친다. 

 

건물을 활용한 제냐의 패션쇼도 재미있다. 모델들은 건물 바깥에서 시작해 아파트와 오피스 건물의 방 사이와 계단과 복도를 누비고 다닌다. 여기에 시간의 경과를 집어넣은 것도 보통의 패션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 패션쇼는 ‘(RE)SET, (RE)TAILO RING THE MODERN MAN’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기존과 다른 시공간의 활용뿐만 아니라 포멀 웨어와 캐주얼 사이에서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이 동시에 반영된 새로운 럭셔리 패션에 대한 제안도 매우 흥미롭다.  

 

에르메스와 이자벨 마랑의 경우에는 학교, 체육관 같은 곳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나오는 모델들도 그에 어울리는 연기를 한다. 사실 영상으로 보여주는 패션쇼는 더 자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촉감, 질감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동적인 장면과 실생활에서의 적용 모습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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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바티스타 발리​> 

 

패션쇼, 한 편의 영화가 되다

레디 투 웨어가 이런 생활의 감각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데 비해 오트쿠튀르는 보다 더 환상의 세계를 향한다. 오피스나 학교, 아파트 대신 성이나 알 수 없는 신화 속에서나 나옴 직한 공간을 활용한다. 디올의 경우 지난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는 요정들에게 옷을 방문판매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올해에는 타로 카드의 세계를 표현했다. 

 

이번 영상은 ‘고모라(2008)’ ‘테일 오브 테일즈(2015)’ 등의 영화를 내놨던 마테오 가로네 감독이 만들었다. 패션 영화가 보통 패션에만 치중하기 마련인 데 비해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영화는 내러티브(narrative)가 상당히 강화됐으며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주인공의 변화 과정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패션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는 오트쿠튀르의 환상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라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기대된다. 이외에도 발렌티노는 화려한 성과 가면을 이용한 신화적인 모습과 함께 매시브 어택의 로버트 델 나자(3D)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음악 작업을 통해 오트쿠튀르 패션쇼에 세련된 현대적 이미지를 불어 넣었다. 

 

샤넬의 오트쿠튀르는 무대를 돌던 모델들이 갤러리 석에 앉으며 패션과 소비자의 전통적인 분리를 융화시켰고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특유의 오트쿠튀르 패션에 발레리노의 무용을 접목해 비일상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을 극대화했다. 등장하는 남성이 무척 많아진 것 또한 이번 시즌 특징이다.

 

패션, 정반합을 이루다

이렇듯 패션은 자신만의 유니크한 이미지를 영상과 음악, 공간 등을 활용해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화면이 선명하고 시청이 편리해도 정확한 입체적인 형태와 촉감은 여전히 전달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슬로우 모션, 디테일 샷, 바람과 동작에 흔들리는 옷의 모습 등 보는 사람이 실제 모습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장치들이 많이 늘어났다. 디올이나 발렌티노의 오트쿠튀르 같은 경우엔 아예 옷의 이름과 내용을 자막으로 설명해 주기도 했다. 딱딱한 설명문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패션의 멋을 전달하는 방법 사이의 균형을 찾아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브랜드들은 동영상 패션쇼가 갖는 한계로 인해 바이어와 기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패션쇼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패션쇼와 매체 지면, 매장 디스플레이 사이의 간극이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패션쇼의 기존 양식을 지켜나갈 이유는 없다. 변화는 패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집중적으로 발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힘들고 어려운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기에 새로움을 향한 현재의 변화야말로 패션이 얻을 수 있는 값진 소득이 아닐까.​

경력사항

  • 패션칼럼니스트
  • 패션붑(fashionboop.com) 운영.
  • 現 한국일보 패션 칼럼니스트
  • 2018년 ‘레플리카’ 저서
  • 2016년 ‘패션 vs 패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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