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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이제는 양말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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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1년 03월 08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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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군 입대 후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와 첫 대면을 한 댄 중위(후에 같이 새우 잡이 배를 타는 그 인물이다)가 기억해 두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병이 사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하는 군용 장비가 있는데 뭔지 아나? 바로 양말이야. OD그린색(olive drap green, 국방색)에 쿠션 바닥으로 된 양말. 작전 중에 멈출 때마다 양말을 갈아 신어서 발을 건조하게 유지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메콩 강물에 너희들 발이 썩게 될 거니까.” 

 

양말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가 하는 점을 전달하는 내용이기도 하면서, 그 짧은 대사 안에 당시에 군용으로 지급되던 양말의 디테일이 표현되어 있다. 소재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아마도 울, 면, 나일론을 혼방한 실에 파일(pile) 짜기로 발바닥이 보강된 양말이었을 것이다. 

 

그깟 양말이 그렇게나 중요할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미군은 1차 세계대전에서 발이 축축하고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걸리는 병인 참호족(Trench Foot) 때문에 병력에 타격을 입으면서, 발의 괴사와 절단으로까지 이어지는 이 병을 예방하기 위해 양말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리고 1943년에 당시의 최신형 전투복과 장구를 패키지화한 M1943 라인을 내놓았는데, 여기에 이 울 혼방의 쿠션 양말이 포함돼 있다. 

 

현대의 기능성 양말의 시초는 바로 이 군용 양말에 기초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군대에서 장거리 행군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나, 등산이나 종주 등 장거리 보행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신발만큼이나 양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 것이다.  

 

양말, 대접 받아 마땅한

꼭 군생활이나 스포츠를 할 때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도 사실 양말은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아이템이다. 어쩌면 속옷보다도 더 삶의 질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물건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만듦새와 질적인 면이 주는 기능적 효용도 그렇고, 패션 면에서의 미적 효용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양말에 대한 대접이 그닥 좋지가 않다. 양말의 품질에도 여러 종류와 격이 있다는 것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양말은 손쉽게 사서신고 버리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아직 큰 듯하다. 

 

이런 우리의 인식 부족에 비해서 우리나라 양말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양말은 조선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들어왔다. 양말은 버선을 뜻하는 말(襪)에 서양의 양(洋)자를 붙인 것이다. 양말이 한반도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조선 말기에 천주교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조선의 버선과 서양의 삭스(socks)의 큰 차이점은 천이 직물(우븐)이냐 편물(니트)이냐 하는 점이다. 서양에서 발명된 니트가 소개되기 전까지 한반도의 사람들은 베틀로 짠 우븐 천으로 모든 의복을 해 입었다. 

 

버선도 직물을 재단해 만든 물건이기 때문에, 니트로 된 양말이라는 것은 아마도 당시의 조선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신박한 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소개된 양말이 본격적으로 국산화 되어 생산된 것은 꽤 이른 시점이었다. 무려 1906년 평양에 첫 양말 공장이 세워졌고, 1930년대에는 자동 편직 기계를 갖춘 양말 공장들이 속속 들어섰다. 

 

한국 전쟁 직후에는 석산양말이나 금강양말 같은 회사가 나일론 100%로 만든 양말을 만들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전까지의 양말은 발가락이나 뒷꿈치에 곧잘 구멍이 나서 기워서 신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아무리 신어도 구멍이 잘 안 나는 튼튼한 나일론 양말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전후 섬유 산업이 한국 경제를 부흥시키면서, 양말 제조업도 그와 더불어 눈부시게 성장했다. 양말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산 양말은 한동안 수출 효자 품목이었다. 20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갭’이나 ‘바나나리퍼블릭’과 같은 미국 유명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양말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대부분이었다. 수출뿐 아니라 양말은 내수로도 잘 팔렸다. 

 

80년대에는 양말세트가 매우 보편적인 명절 선물 품목이었다. 여전히 지금도 내수용 양말의 국산 비율은 꽤 높다. 이미 우리가 입는 의복의 대부분이 저비용 국가에서 생산되어 수입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실 국산 양말의 내수 점유율은 놀라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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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데 알릴 방법이 없네…

하지만 우리나라 양말 산업과 소비 시장의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아 보인다. 한 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양말 생산국의 성적표는 최근 많이 초라해졌다. 좀 더 저비용 국가로 해외의 주문이 많이 이동한 탓이다. 임대료가 높아지고 근무 환경이 열악한 탓에 인력난도 겪고 있다. 

 

고부가가치 고급 양말로 활로를 모색해야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미국산이나 유럽산에 밀린다. 고기능성 스포츠 양말은 미국에 유명한 브랜드들이 드글드글하고, 고급 드레스 양말은 독일, 영국, 이태리의 노포들이 꽉 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들 못지않은 고품질 양말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런 하이 스펙의 양말은 생산을 거의 할 수가 없다. 

 

국산 양말의 대부분은 품질은 좋지만 스펙은 낮다. 국산 양말의 품질이 좋다는 것은 공산품으로서 하자가 없고 내구성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이지, 사용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스펙의 품질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양말은 그저 잘 늘어나고 잘 헤지지 않으며 가격이 저렴한 물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공장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고스펙의 양말을 만들어서 비싼 값에 팔기가 너무 힘들다. 국내는 한 켤레의 양말에 지불하는 금액의 기준이 너무 낮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 켤레에 천원이면 그럭저럭 신을 만한 국산 양말을 얼마든지 사서 신을 수 있고, 대다수의 소비자는 그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고 더 좋은 스펙의 양말을 사서 신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런 양말의 존재 자체나 효용 자체에 눈을 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러니 공장에 생산을 의뢰하는 브랜드들도 좋은 기술을 활용한 고품질 고스펙의 양말을 생산하기 힘들 것이다.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한들, 공급자가 제공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경험을 해 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수준이 더 발전하기는 힘들다. 결국 우리나라는 소모품 개념의 저가형 양말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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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 신어보시라

그런데 사용 용도에 알맞게 잘 만들어진 양말이 삶의 질을 엄청나게 높여준다는 사실을 경험하면 절대로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앞서 군용 양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강도 높은 스포츠나 익스트림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 고기능성 양말을 착용하면 퍼포먼스가 획기적으로 높아지면서 부상이 줄어든다. 

 

고작 양말 한 켤레 바꿨다고 그럴까 싶지만 진짜 그렇다. 꼭 프로처럼 운동을 하지 않아도 오히려 아마추어이기에 좋은 양말을 신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아마추어일수록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용 양말 역시 좋은 소재와 좋은 짜임으로 만든 양말은 신발의 착화감을 좌우한다. 한 번은 스판덱스 함유율이 높은 소위 ‘짱짱하게 잘 만든’ 국산 양말을 신고 나갔다가, 두께감이며 촉감이 신발과 맞지 않고 너무 겉도는데다가 발목은 너무 조여서 걷기가 힘들 지경인지라, 결국 가까운 수입양말 판매점에서 캐시미어로 만든 양말을 한 켤레 사서 갈아 신고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캐시미어로 만든 양말이라니.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너무나 비싼데다가 신축성도 떨어지고 세탁 등의 케어도 힘든 양말일 테지만, 천연소재에 적당한 텐션으로 짜인 양말이 주는 구두와의 상성과 적절한 착화감은 정말 끝내준다. 케어도 익숙해지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가정에서 울소재 옷이나 폴리에스터 운동복을 세탁하는 것과 같이 빨면 충분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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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도 기능이지만, 잘 고른 양말은 멋과 품격을 높여주는 패션 아이템이다. 반대로 잘 못 신은 양말은 모든 룩을 깡그리 망쳐버리는 위력을 지녔다. 

남자라면 양말이 너무 짧아서 바지 단 밑으로 종아리 살이 드러나는 것은 최악의 실례다. 

 

충분히 긴 양말을 신자. 수트를 입는 남자라면 양말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롱호스(long hose)’를 신는 것이 글로벌 관점에서의 약속이다. 적어도 종아리 중간까지는 올라오는 ‘미드 캐프(mid calf)’ 길이의 양말 정도는 신어줘야만 한다. 그래야 흉한 다리 살이 보이지 않는다. 

 

양말색은 초보라면 바지색이나 구두색에 맞추면 되고, 스니커즈를 신는 캐주얼이라면 흰색 양말이 최고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면 컬러풀한 양말로 룩에 초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무늬가 들어간 양말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무늬가 들어간 양말은 작은 도트나 줄무늬, 또는 아가일 정도가 최대한이다. 여러 가지 캐릭터가 들어가 있다든지 화려한 문양을 넣었다든지 하는 양말은 사실 전혀 패셔너블하지 않다. 재미와 위트의 개념으로 가끔가다 신을 수야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번외편일 뿐이다.  

 

 무늬와 신축성보다는 짜임과 소재와 같은 스펙의 상성을 느끼면서 신을 줄 알자. 양말에도 명품 속옷만큼이나 비싼 값을 지불해보자. 신발에 티끌만큼 작은 돌맹이가 들어가도 불편함을 바로 느낄 정도로 민감한 것이 바로 발이다. 

 

인간은 몸에 입는 속옷의 감촉보다 발에 신는 양말의 감촉을 더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인지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그래서 고스펙에 고품질의 양말에 충분한 가격을 지불하는 순간, 당신의 에브리데이 라이프가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쇠락해 가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양말 산업을 부흥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다시 한 번 양말로 전 세계를 호령하는 양말 왕국의 위상을 누리기를 나는 오늘도 꿈꾼다.​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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