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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에이랜드의 도쿄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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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0년 10월 26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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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과도 같았던 ‘맨스 논노’

필자의 까까머리 고등학생이던 90년대 중반, 한 반에는 여러 종류의 친구들이 있었다. 

운동을 좋아해서 쉬는 시간마다 농구나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뛰어나가는 부류, 먹는 것을 좋아해서 종이 울리면 매점으로 달려 나가는 부류, 또 게임을 좋아해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게임이나 만화 이야기만 하루 종일 하는 부류 …

 

물론 취미는 다양했지만 한창 호르몬 분비가 최고조에 이르는 장엄한 수컷들의 세계에서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겉모습에 대한 집착은 거의 공통적인 관심사였다. 

 

자칫하면 머리에 아름다운 고속도로가 개통되거나 담임 선생님이 하사해 주시는 사랑의 매타작 위협에도 불구하고, 마치 군인들이 되도 않는 칼 주름 개수에 목숨을 걸 듯, 여성들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집요한 노력과 광기는 지구 생명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진화해 왔는가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에 최신 유행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은 잡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남성 패션을 다루는 잡지는 전무하던 그 시절, 일본의 ‘맨스 논노’는 우리들에게는 마치 성경과도 같은 교재였다. 

 

잡지 속에 등장하는 도쿄의 멋쟁이들은 어느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힙’했다. 그들이 입는 옷차림, 스타일링뿐 아니라 안경이나 팔찌, 운동화에 가방, 그리고 그들의 눈썹 모양과 헤어스타일까지 도저히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쿨함’ 그 자체였던 기억이 난다.

 

#2. 유명한 일본 디자이너만도 한 트럭

레이 카와쿠보,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다카다 켄조 같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은 차치하고라도 일본의 디자이너 풀은 광활하다. 

‘미치코 런던’으로 잘 알려진 미치코 코시노, 그녀의 두 언니들인 히로코 코시노, 준코 코시노와 츠모리 치사토 등 일본 패션의 전성기 때 활동했던 디자이너들만 해도 한 가득이다. 

 

또 그 다음 세대인 레이 카와쿠보의 오른팔 준야 와타나베, Kolor의 주니치 아베, Sacai의 치토세 아베, 아방 가르드 계열에서 릭 오웬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Julius의 타쯔로 호리카와, Undercover의 준 타카하시, Engineered Garments의 다이키 스즈키나 Bape, Human Made의 니고, Neighborhood의 신스케 타키자와 외에도 찾아보면 볼수록 ‘일본에 패션 디자이너가 이렇게 많았던가’ 싶을 만큼 패션 산업의 최정상에 위치한 유수의 디자이너들은 많다. 

 

Wacko Maria, Needles, Kapital 같은 이른바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들과 Evisu나 Edwin 같은 진 브랜드와 유니클로까지, 패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일본만큼 다양한 개성을 가진 브랜드와 그런 시장을 받쳐주고 유지시키는 소비자 층이 존재하는 국가는 미국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각종 조사에서 일본은 미국, 중국 다음인 세계 3위의 패션 산업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도쿄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옷을 사는 사람도 있나’ 싶은, 색깔이 뚜렷한 디자이너들의 작은 아뜰리에를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된다. 흔히 ‘하라주쿠 스타일’하면 떠오르는 다소 요란하고 괴상한 옷을 취급하는 숍부터 믿기 힘든 가격이 달린 옷까지 정말 다양한 콘셉트의 브랜드들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도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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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ALand>

 

 #3. “참가에 의의가 있습니다”

2020년 10월 8일,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인 에이랜드(A Land)가 시부야에 1호점을 열었다. 그것도 이름만 시부야일 뿐 모서리 어딘가에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볼품없는 구멍가게 수준이 아니라, 시부야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부야 스크램블 뒤쪽의 메인 상권이자 세이부 백화점 바로 뒤쪽에 2층으로 이뤄진 220평 규모의 대형 매장을 오픈 했으니, 이쯤 되면 에이랜드도 사활을 걸고 도전하는 대형 프로젝트이지 않을까. 

 

일본 내에서도 이를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한 일본 방송에서는 오픈 당일에 에이랜드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선 일본 젊은이들의 행렬을 보여주면서 여러 가지 내용을 담았다. 에이랜드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일본인 알바생들이 몇 명인지, 경쟁률은 어느 정도였으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까지 따진 채용 조건 등 가벼운 이야기부터 이 곳에서 판매하는 브랜드들은 과연 어떤 브랜드들인지 하는 전문적인 이야기까지 많은 호기심을 보였다. 

 

결과부터 밝히자면, 에이랜드의 이 도전이 얼마나 성공적일까에 대해서 필자는 다소 회의적이다. 무려 일본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콘셉트의 브랜드들이 ‘이미’ 존재한다. 게다가 그 브랜드들은 끊임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브랜드들이거나,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가 충분한 강력한 브랜드들이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 중 하나이자 에이랜드의 간판 브랜드이기도 한 커버낫의 경우, 예전 인터뷰에서 커버낫의 정체성을 ‘아메카지’라고 밝힌 바 있다. 아메리칸 캐주얼의 일본식 표현인 아메카지는, 풀어 설명하자면 미국식 캐주얼 룩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을 뜻한다. 즉 미국식 패션을 일본식으로 해석한 장르를 다시 한국식으로 풀어 놓은 브랜드가 일본의 뿌리 깊은 아메카지 브랜드들과 경쟁을 시작한 셈이다. 

 

물론 다른 브랜드를 봐도 일본인들이 크게 매력을 느낄 확고한 요소가 딱히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일본에는 츠모리 치사토나 메르시 보꾸도 있고, 히스테릭 글래머도 있으며 사카이나 콤 데 가르송도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결국 에이랜드의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도전은, “참가에 의의가 있습니다”라는 어느 이름 모를 선수의 올림픽에서의 인터뷰처럼 작은 의미를 남기고 조용히 마무리 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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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멋쟁이들.>

 

#4. 당신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누구나 소니의 로고가 박힌 워크맨을 꿈에서라도 갖고 싶어 하던 그 시절에는 더 이상 소니의 로고는 게임기 정도를 제외하면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룰라가 ‘오마쓰리 닌자’를 통으로 베끼고 온갖 국내 최고의 가수들이 몰래몰래 일본 음악을 훔쳐오고 걸렸던 행태를 반복했던 이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젊은 친구들이 한국 프로듀서에 의해 길러지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한국 음악이 무려 빌보드 싱글챠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일이 실제로 생길 거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라도 해보기나 했을까? 

 

패션이라고 되지 말라는 법은 없고, 그런 의미에서 첫걸음을 뗀 에이랜드의 도전에는 박수를 보내는 입장이다. 다만, 한국 패션 산업이 유독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기형적인 유통 구조에 있으며, 그 구조를 답습하고 있는 에이랜드가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도전하고 있는 상황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한 가지 더. 이번 프로젝트가 단지 보여주기 식의 마케팅 이벤트가 아니라면, 한국 음악과 한국 영화가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노력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신중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한류’에 올라타 티셔츠나 많이 팔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산업의 규모가 클 뿐 아니라 특유의 장인정신과 집요한 오타쿠 문화에 근거해서 발달해 온 단단한 일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어떻게 될지는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에이랜드의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응원한다. ​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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