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 시대 ‘진짜’만 남는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인호 비즈니스인사이트 부회장 (inokim0@gmail.com) 작성일 2023년 03월 15일 URL 복사본문
세상이 온통 Chat GPT로 난리다. 거의 모든 매체에서 Chat GPT의 경이로움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쏟아내고 있다.
서점에는 이미 Chat GPT가 쓰고 인간은 인쇄 작업에만 참여해서 단 7일 만에 완성한 책도 등장했다. 심지어는 ‘Chat GPT시대 글쓰기’라든가 ‘Chat GPT 사용설명서’ 같은 책도 서가에 꽂혀 있다.
Open AI가 만든 Chat GPT, 구글의 Bard는 경이로운 딥러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아서 그 안에서 패턴을 읽어내고, 인간과 유사한 언어 및 사고를 통계적으로 처리한다.
나날이 진화하며 더욱 멋진 결과물을 내놓는 AI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바둑의 세계에서 인간이 AI에게 비참하게 지는 것을 목도한 지 얼마 안되기에 그 압박 강도가 더 클 수 있다.
비록 일부이지만, 글을 쓰는 직업은 물론이고 그림과 관련된 직업도 몇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하는 과학자가 주장하는 근거도 바둑 세계의 기시감 때문일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중층적 지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능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유동성(流動性) 지능이 있고, 애써 노력해서 보람 있는 경험을 쌓는 결정성(結晶性) 지능이 있다.
연령 혹은 세대에 따라 유동성 지능과 결정성 지능의 발현 강도가 다르지만, 이를 적절히 조합해서 전문가가 되고, 글도 쓰는 것이다.
즉, 글은 세상에 대한 미지(未知) 적응과 기지(旣知)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래 글은 필자가 2018년 3월에 한 신문에 기고했던 글인데, 이것을 참고해 살펴보자.
시부야 거리를 걸으며 소매의 역사를 본다
도쿄 시부야 거리를 둘러본다. 30년 전에 전성기를 누리던 세이부백화점 거리를 걷다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백화점 입문 30년이 되는 필자에게 세이부 거리는 다양한 유통업 역사가 압축된 곳으로 투영된다.
이곳에서 많은 일본 관계자를 만나 창의적 발상을 나누었고, 제휴를 통해 국내 유통업에 기여한 경험이 있다.
도쿄 주재원 생활, 그리고 100여 번의 서울-도쿄 왕복의 여권 흔적은 최소한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위안은 주는 것 같다. 아무나 쓰는 일본 유통업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편하지 않은 글일 수도 있다. 다양한 시선이 있고, 읽으면서 생각해야 할 행간이 있기 때문이다.
세이부백화점을 지나 약간의 언덕을 오르면서 로프트(LOFT), 패션전문점 시드(SEED), 그리고 파르코(Parco) A, B, C 건물이 줄지어 서있던 그 거리는 일본 젊은 소비의 성지였다.
훌륭한 상권은 약간의 경사를 가진 언덕을 끼고 있어야 한다며, 일본 광고회사 하쿠호도가 자랑하던 바로 그 거리다.
당시 우리도 이 ‘언덕론’을 모방해 압구정 갤러리아와 청담동을 연결하는 고급 스트리트를 조성한 바 있다.
세월은 흘러 상권의 개척자였던 츠츠미세이지(堤淸二)의 세이부백화점이 추락하면서 거리도 변했다.
당시 세이부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세이유, 패밀리마트, 로프트, 파르코 등 다양한 업태를 주도하는 그룹이었으나, 백화점과 로프트는 세븐일레븐에, 세이유는 월마트에, 패밀리마트는 이토추에, 파르코는 J프론트(다이마루)에 매각되었다.
이렇다 보니 거리의 통일된 컨셉은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시대를 걷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건물과, 그곳에서 힙한 정보를 발신하던 브랜드도 사라졌다. 시드 대신에 세이유PB로 등장해 대박을 터뜨리며, 본체보다 더 커진 ‘무인양품’이 자리를 대체하며 그나마 세이부 DNA를 발신하고 있다.
파르코는 A, B, C 3개 건물 모두를 재개발했다. 그 부지 일부는 새 시대를 리드할 다른 시각의 업태가 등장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에(Koe)’가 2018년 2월에 호텔과 패션잡화, 뮤직 콘셉트의 점포를 오픈하였다.(1)
또 다른 부지는 J프론트가 최근에 시행했던 ‘긴자6’와 ‘우에노 프론티어’ 방식을 채용해 임대에 최적화된 복합상업시설을 2020년에 오픈할 예정이다.
J프론트의 야마모토 료이치(山本良一) 사장은 작금의 일본백화점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작년에 이세탄 사장에서 물러난 오니시 히로시(大西洋)가 최근 20년간 영업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던데 반해, 야마모토는 업무효율을 극대화 시킨 혁신의 아이콘이다.
긴자 마츠자카야를 폐쇄하고 ‘긴자6’로 재개발 오픈한 것과 마츠자카야 우에노점을 2017년 11월에 복합상업시설로 새롭게 오픈한 것은 백화점의 쇠퇴를 자산개발 관점에서 재구성한 그의 치적이다.
같은 관점에서 파르코 부지가 2020년에 글로벌 쇼핑센터로 새롭게 오픈하면, 세이부 거리의 주연은 단연 이 건물이 될 것이다.(2)
이 거리뿐만 아니라, 이미 일본 백화점의 판도가 다이마루로 이동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백화점 쇠락시대에도 다이마루는 승자로서 시장을 리드하는 반면, 시대를 주름잡던 세이부는 자신이 만든 상권에서 마저 홀대를 받게 되었다.
동키호테와 니토리가 2017년 말에 시부야 한 복판에 대형점포를 개설한 것도 시대의 변화를 설명한다.
세이부의 퇴장은 야마모토 같은 혁신맨, 오니시 같은 영업맨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시스템의 혁신 없이 그냥 그렇고 그런 샐러리맨만 양산하면서 세븐일레븐에 편입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백화점의 쇠락을 대체할 혁신적 인재가 부재한 까닭이다.
시부야 거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은 완벽하지 않다. 세월이 지나며 세상이 변한 만큼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할까? 사선으로 표현한 글이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1)사진처럼 호텔 코에가 개업 4년 만에 폐업을 하고, 그 자리는 ‘몽클레르’로 대체되었다. 호텔 코에는 새로운 가치와 문화 발신 기지를 표방한 패션회사 ‘스트라이프 인터내셔널’이 플래그십스토어로 오픈해서 화제가 되었던 점포다. 젊은 사장, 급성장 기업으로 인식되던 곳이 사장의 불상사, 상징 점포 폐점으로 이미지가 급 전락한 상황이다.
(2)새로 오픈한 ‘시부야 파르코 휴릭 빌딩’의 상권 영향력이 크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시부야역 상권이 부상하면서 상권 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부야 역을 중심으로 도큐그룹이 ‘히카리에’와 ‘시부야 스트림’, ‘시부야 스크렘블 스퀘어’의 재개발에 성공했고, 미츠이부동산이 ‘미야시타 파크’를 개발하면서, 상대적으로 기존의 세이부 언덕상권 쇠퇴가 촉진되었다.
이렇게 세월과 함께 변한 상황을 정확히 수정해야 할 때, 필요한 도구가 정점관측(定点觀測) 이다.
정점관측은 벤치마킹해야 할 점포, 기업, 지역을 정기적으로 조사해서 경과 변화를 보면서 경영전략을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정점관측을 하면 시간의 경과 속에서 트렌드는 기본이고,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동일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데이터를 수집하므로 꾸준한 노력과 비용이 드는 단점이 있지만, 인간의 유동성 지능과 결정성 지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방법론이기에 전문가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Chat GPT시대에는 SNS유저 수준의 As-Is만 강조하는 찌라시 전문가와 As-Is 이전의 Before와 그 이후의 After까지 검증한 실행 전문가가 확연하게 구분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함량 미달 전문가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고, 실행 전문가는 정점관측으로 복기 능력을 제고해서 더욱 강력한 전문가로 도약할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 차고 넘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사례는 5년 전의 복기를 통해 스스로를 다그치는 필자의 고해성사이다.
경력사항
- 現) 성균관대학교 소비자가족학과 겸임교수
- 現) 비즈니스인사이트그룹 부회장
- 現) 대한상공회의소 유통산업위원회 위원
- 現)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원 패션연구과정 초빙교수
- 前) ㈜코엑스 자문위원 (코엑스몰리뉴얼 프로젝트)
- 前) 산업자원부 유통산업 마스터플랜 수립 자문위원
- 이전글다케오 도서관의 교훈 23.05.29
- LIST
- 다음글다시, 분양 상업시설 유감 22.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