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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니폼 디자이너로 살아온 이유” 등 떠밀려 한국 떠나 최고의 유니폼 디자이너가 된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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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경량 기자 (lkr@fpost.co.kr) | 작성일 2021년 06월 28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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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마랑고니, 아르마니 하우스 디자이너 그리고 다시 에우로빼오 

“작품 같은 유니폼…유명 디자이너의 전유물 선입견 깨고 싶다”

“유니폼은 하나의 컬렉션, 풍경화 그리듯 스토리를 담아내”

日 유명 패션 디자이너 마사루 미네오 통해 배운 일 철학 ​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군 제대를 6개월 앞둔 ‘97년 9월. 병장 이재우의 인생 2막은 예고 없이 시작됐다. 한 명은 제대 이후 진로를 물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당연한 듯 코스를 짜왔다. 

 

진로는 이재우의 어머니 조영숙 디자이너 몫이고 코스는 당시 한국일보 평기자였던 사촌형 고재학(現 한국일보 경영전략본부장) 작품이다. 2인 1조가 된 어머니와 사촌형은 이렇게 이재우의 삶에 개입했다. 

 

산업공학도 출신, 대학 생활까지 흥미가 없던 그에게 절대적인 공감력을 가진 어머니가 그날 이재우에게 디자이너의 길을 제안했다.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어머니가 ‘이대로가 좋으냐’라고 물으셨어요. ‘더 늦기 전에 네가 좋아하는지 확인할 겸 의상 디자인을 배워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주신 거죠.” 

 

디자이너인 자신의 영향도 있고 아들이 자라면서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지켜봤던 것이다. 그래서 이재우 디자이너는 인생 후반부의 조력자가 어머니라고 말한다. 

 

사실 이재우의 어머니이자 디자이너인 조영숙 씨는 국내 패션계에 잘 알려진 유명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럼에도 예순이 넘은 나이까지 디자이너 부티크 브랜드를 운영하다 몇 년 전 그만 두셨다.

 

그가 본 어머니는 항상 옷과 패션을 대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공기통을 메고 출구도 알 수 없는 길을 소방관처럼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고 하니 그야말로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다.

 

조력자이자 선배 디자이너, 어머니 조영숙 

그녀의 평생 업을 이어 아들 이재우 디자이너가 유니폼 디자이너가 됐다. 패션을 전공했지만 산업 안전복과 기업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유니폼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들의 업이다. 

 

전통과 업력이 이 바닥에도 있을까. 매번 기업이 의뢰한 프로젝트를 이재우 혼자 했다. 3년 전부터 소재기업 화선테크 임원으로 소속감이 생겼지만 그의 과거와 현재 이력은 혼자일 때 내세울만하다. 그가 벌이고 실행한 일들은 많아도 너무 많다. 

 

몇 가지만 보자. 브랜드 캡슐컬렉션 디렉터, 곤지암과 알펜시아 리조트 그리고 코카콜라, 일본 유명 디자이너 마사루 미네오와 함께 신라호텔 유니폼 디자인, 현대오일뱅크, 미포조선, 현대중공업의 산업 안전복부터 세달 전 문을 연 현대백화점그룹의 여의도 더현대서울의 스페셜 유니폼 디자인까지. 

 

더현대서울 스페셜 유니폼은 우경숙 현대백화점그룹 고문이 모든 점포로 확대 적용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많다. 클래식한 슈트와 나비넥타이의 유니폼을 파격적으로 바꾼 카지노 유니폼, 젠더리스 키워드를 집어넣은 항공사 승무원 유니폼까지. 

 

이중 국내 항공사 에어로케이의 승무원 유니폼은 백미다. 타이트한 치마 정장과 구두 차림으로 대표되는 유니폼을 디스코 바지에서 영감을 얻은 넉넉한 품의 팬츠와 재킷으로 바꿨다.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파일럿, 정비복 등 각 파트의 유니폼도 모두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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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로케이 항공사 유니폼.>

 

2019년 당시 화제를 낳은 프로젝트였다. 중앙일보에서는 이재우 디자이너가 왜 이런 디자인을 했는지 인터뷰 기사를 내기도 했다. 당시 항공업계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여성 승무원 유니폼 디자인 붐에 작은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쯤 되면 국내 유니폼 디자이너라는 직군이 있는 것일까 찾아보게 된다. 혹시 디자인 컨설턴트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태리 유학길에 올라 당시 가장 손에 꼽히던 패션스쿨 마랑고니를 졸업, 아르마니 하우스에 디자이너로 일해 온 그가 한국 땅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유니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왜 선택했는지. 

 

“유니폼 디자이너의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만 했다. 이재우 디자이너는 “정확한 답변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공감의 힘을 더할 답을 찾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유니폼 디자인은 굉장히 피곤하지만 머릿속을 재밌게 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이태리에서 스케치를 처음으로 배웠다는 이 의지의 디자이너는 인터뷰 내내 “그저 운이 좋았어요”라고 했다. 

 

한국떠나 마랑고니에서 인생 첫 스케치 

그는 인터뷰 시작 전, 이번 기사는 자신의 업력을 뽐내는 지면으로 할애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특이한 이력이라 소개를 안 할 수가 없다. 

 

생소한 직업이기도 했다. 유니폼 납품 업체라고 하면 디자인을 강조하는 경우가 사실 드물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유니폼이 세상에 화제를 모으기 일쑤다. 그래서 유니폼 디자이너를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 

 

첫 질문에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으니 ‘유니폼 디자이너 이재우’를 설명하려면 패션분야에 입문하게 된 이태리 유학길부터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군 제대 3개월 후 ‘98년 6월 이재우 디자이너는 이태리로 떠났다고 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그가 원해서라기보다 현실 도피에 가까운 유학길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가 향한 곳은 이태리 밀라노 중심부에 위치한 명문 패션학교 마랑고니. 도착할 당시 마랑고니에는 동양인 학생이 6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태리 명문 패션 학교에서 스케치 한 번 그려보지 못했던 동양인 한국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행동이 항상 조심스러운 것도 이때 생긴 습관이라고 했다.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와 약속도 했고….” 말문을 흐렸다.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라고 당시 상황을 꺼냈다. 간절히 원했던 유학길이 아닌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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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현대백화점 하계유니폼.>


각고의 노력 덕일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고 설렌 경험이 마랑고니에서 첫 과제라고 했다. 패션 잡지에서 좋아하는 화보를 골라 똑같이 스케치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패션 과제였다.

 

눈빛이 다시 빛났고 금세 목소리 톤이 크고 밝아졌다.

 

“고3 수험생 시절 때도 밤을 새워 본적 없는데 너무 설레었요. 몇 개월 배웠다고 그림이 그려지는 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내가 행복하구나’ 처음으로 느꼈죠.” 

 

어머니가 제안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됐다. 의외성으로 꽉 찬 유학길에서 그는 진짜 자신을 들여다봤다.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게 됐다.

 

伊 아르마니 하우스 디자이너 생활도 지루한 회사원 

그가 디자이너를 꿈꾸고 마랑고니를 졸업하면서 정말 디자이너가 됐다. 이태리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아르마니 하우스 인턴 디자이너로 4년을 일했다. 그는 이런저런 일을 벌이면서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보낸 4년은 달랐다고 한다. 

 

한참 생각에 잠겼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한국의 패션 기업과 일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래도 반복적인 일상의 직장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갈수록 ‘인생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왔어요. 점점 강하게…. 가장 중요한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누가 동양인 인턴 디자이너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겠어요.” 

 

그가 첫 직장을 나온 이유라고 했다. 아르마니를 나온 후 선택한 것은 다시 디자인 공부였다. 이번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색을 입히고 싶었을까. 이태리에서도 마랑고니만큼 유명한 디자인 스쿨 에로우뻬오에 입학해 2년간 디자인과 패션 에디터 분야를 더 공부했다. 

 

이번엔 디자이너로서 공부보다 패션쇼 기획과 연출 그리고 에디터로서 필요한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안 디자인으로 가장 유명한 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지난 일이지만 에로우뻬오를 졸업하면 당시 국내 명문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직을 달수 있는 코스이기도 했어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졸업 작품은 잡지 한 권이었는데 ‘더블 센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양면성을 다뤘다고 했다. 

 

“이때 이후 고질병이 생겼는데 말을 머뭇거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웃음). 잡지를 만들면서 영어, 이탈리아어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너무 힘들었나봐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밀어 붙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이런 답을 내놨다. 

“어떤 일을 바라볼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긴 해요. ‘하고 싶은지’와 ‘그것을 해내는 시간’이 문제인 것이죠. 보통 안 될 것처럼 보여도 막상 부딪혀 보면 되는 일들이 많거든요.” 

 

지루함이 싫어 선택한 유니폼 

유니폼 디자이너로서 업력을 본격적으로 물었다. 계기가 있을 것 같았다. 집요하게 물어봤다. 이태리 유명 패션 스쿨을 졸업하고 유니폼 디자이너의 길이라니 조금 낯선 조합이랄까. 그는 최근 꿈이 하나 있다고 했다. 동문서답이다.

 

“청와대 경찰(101단) 제복과 근무복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유니폼은 영국 근위병 제복이라고 했으니 그럴법했다. 지금 유니폼 디자이너로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긴듯한 답이다. 

 

왜 이 길을 택했을까. “한국의 패션 기업과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이태리에서 배웠는데 국내 패션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약간의 등 떠밀림이랄까.” 그는 지금도 디자인을 할 때 풍경화를 상상하듯 큰 그림을 그린 뒤 스토리를 채우듯 하나씩 컬렉션을 채우고 색을 입힌다. 유니폼 디자인의 작업 방식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산업안전복과 각 기업들이 이미지를 담아야 할 유니폼을 단체 특수복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아요. 옷은 옷이어야 하는데 대충 콘셉트 컬러를 지정 받아 로고를 달아 만드니까요. 공기업과 금융업 근무복 디자인은 사실 저는 만족스러운 작업이 아니었어요. 재미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사실 이재우 디자이너가 2004년 이태리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잠시 패션기업에서 브랜드 론칭 작업에 참여해 패션 디자이너로 발을 담갔다. 회사가 중국 사업에 실패하면서 부도가 났고 그때 나이가 서른 초반. 적(籍)을 둘 곳이 사라졌다. 

 

그는 활짝 웃으며 “그때 회사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어요”라고 말하더니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해진다. 

“즐거운 생각으로 시작된 디자인 작업이 상업을 이끌어내는 힘에 지배된다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는 패션 디자이너로 일을 잠시 했지만 다시 이태리로 돌아갔다. 2006년 CJ홈쇼핑이 업계 최초로 온라인몰을 통해 이태리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태리 현지 바잉팀으로 합류한 것이다. 그래도 디자이너 일은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신나게 일했다.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처럼 지루하지 않았다. 

 

“하루는 한국에 있던 지인 한 분이 디자인 제의를 하면서 진지하게 유니폼 디자이너로서 제의를 해왔어요. 당시만 해도 유니폼 납품 업계가 스타일화로 경쟁을 하고 있던 시절인데 간간히 했던 디자인을 보고 연락이 온 거죠.”

 

이재우 디자이너는 그 일이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직업이 있을 텐데 그 누구도 이야기 해주지 않았죠. 유니폼 디자인도 저에 그런 일이었어요.” 

 

곧장 한국으로 짐을 쌌고 유니폼 디자인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거침없이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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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스킨.>

 

본격적인 유니폼 디자이너 데뷔 실험 같은 디자인  

이재우 디자이너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유니폼 디자이너로서 활약했다.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실력이다. 

 

“첫 프로젝트가 곤지암 리조트였어요. 콘도미니엄 프론트데스크부터 스키복, 조리복 등 각 분야별 모든 유니폼을 디자인 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어요.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때 이재우 디자이너가 솜씨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곤지암 리조트의 콘셉트가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리조트’였다. 모든 유니폼에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휴식과 자연을 시각적으로 담았다. 

“큰 그림을 그리고 각 분야별 독특하고 재미있는 유니폼을 만들었더니 하나의 미니 컬렉션이 되더라고요.” 

 

유니폼 디자인에 재대로 꽂혔던 것이다. “무엇보다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도, 미래에도 세상에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요.” 

 

이듬해 알펜시아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으니 곤지암 리조트 유니폼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어요. 디자이너로서 저를 봐준 것이니까요. 그래서 스키복이랑 몇 가지 유니폼을 디자인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전부 운이라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카지노 세븐럭의 딜러 유니폼부터 슈퍼바이저 디자인 프로젝트도 재밌게 했어요. 카지노 업장의 인테리어나 슬롯머신들의 화려한 색감을 유니폼에 담아 파스텔 톤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박제된 디자인 아니라 무엇이든 새로운 영감을 찾아 시도하는 실험 같은 디자인을 그는 좋아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이 반한 디자이너 

그의 디자인은 대상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몇 번 만나보면서 그에게는 신기한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묵혀둔 꿈을 술술 불게하고, 그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힘이다. 

 

“아마 2012년도 일거예요. 지금은 현대백화점그룹 자회사인 현대리바트로 합병됐지만 현대에이치앤에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당시 현대에이치앤에스가 현대그룹 유니폼이나 산업안전복 디자인부터 납품을 해왔는데, 6개월째 현대오일뱅크 유니폼 디자인이 퇴짜를 맞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 현대오일뱅크 마케팅부문장님이 외부에서 디자이너를 섭외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제가 선택된 거죠.” 

 

당시 현대오일뱅크 대표직을 맡고 있던 권오갑 현 현대중공업회장은 패션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소문이 나 있었다. 틀에 박힌 공장 작업복 디자인은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이재우 디자이너는 현대중공업, 현대오일뱅크 등 현대가의 고유 콘셉트 색깔인 네이비와 다른 차별화된 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경쟁사인 삼성중공업은 짙은 파란색을 이미 쓰고 있었다. 그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중공업분야에 화사한 색깔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하늘색 빛이 도는 색 바랜 블루를 지정해 투박한 이미지를 지운 디자인을 제시했다.

 

당시 권오갑 대표까지 참석한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에서 그는 “직원들이 공장에서 거칠고 투박한 색의 옷보다 밝은 계열의 근무복을 입게 되면 기분까지 좋아져 작업 효율도 개선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현대중공업 계열사의 모든 유니폼은 다 이재우 디자이너의 몫이 됐다. “이때부터 현대그룹 유니폼 납품을 맡고 있던 현대리바트에서 저를 납품 업체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생각하고 바라봐 주기 시작했어요.” 

 

접객 분야의 유니폼부터 산업안전복까지 폭이 넓다고 묻자 “저의 가장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게 ‘당신은 뭐가 전문이야?’라고 물으면 하나를 꼽을 수 없다는 거죠. 웃기지만 재밌고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日 디렉터 마사루 미네오 통해 배운 스타일링 

계획된 방향이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며 생각의 틀을 고정시키면 안 된다. 하찮다고 보이는 게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지난 3월 현대백화점그룹이 여의도에 야심차게 개장한 더현대서울 스페셜 유니폼 프로젝트가 그랬다. 내로라하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를 찾아 의뢰했을 수도 있지만 이번에도 이재우 디자이너를 찾았다. 그가 꺼낸 유니폼 디자인은 청보라색의 팬츠 품도 넉넉하고 하이탑 스니커즈에 겨자색 챙이 달린 모자와 라임 컬러의 액세서리를 매치했다.

 

더현대서울은 백화점의 틀을 깬 테마파크 같은 곳이다. 콘셉트가 ‘도심 속 자연주의’다. 콘셉트를 최대한 살렸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헤어스타일링과 메이크업까지도 제시했다. 

 

“2009년 신라호텔 유니폼 디자인을 맡은 일본 아트 디렉터 마사루 미네오 씨에게 어깨 넘어 배운 거예요. 마사루 미네오 디자이너가 한국 현지 디자이너 한 명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합류하게 됐는데 정말 굉장한 경험을 했죠. 프론트 데스크부터 객실팀, 레스토랑 웨이트리스트, 셰프복까지 모든 직원을 불러 모아 헤어부터 메이크업, 신발, 스타킹까지 꼼꼼하게 다 스타일링을 해주는 거예요. 처음 보는 광경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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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모지웅 기자>

 

죽을 때까지 ‘너무 재미있었어’ 꿈꿔  

일본 유니폼 산업과 디자이너의 실력은 사실 한국보다 몇 십 년 앞서 있고 세분화 되어있기로 유명하다. 기술과 디자인 면에서도 빼어나다. 이재우 디자이너도 신라호텔 유니폼 디자인 프로젝트에 합류해 짧게 경험한 것이 그에게 큰 재산이 됐다. 

 

질문과 답이 이어지는 긴 시간동안 언제쯤 물어볼까 틈을 살피고 있을 때, 몸담고 있는 화선테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혼자서도 그리고 찾는 이도 많은 유니폼 디자이너로 알려졌는데 왜 디자인 하우스를 만들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연신 “그저 운이 좋았어요”라던 이재우 디자이너의 대답의 이유쯤 될 것 같다. 

 

“유니폼 디자인과 납품 일은 바이어가 당장 ‘내일부터 당신과 하지 않겠다’고 하면 끝일지도 몰라요. 유니폼 디자인은 제가 했지만 이재우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아니니까요.” 

 

그에게는 반전의 면면이 많다. 용감무쌍할 듯했지만 알고 보니 겁쟁이였고, 즉흥적일 듯했지만 알고 보니 신중한 사람이었다. 

 

이동명 화선테크 대표가 2019년 의류 브랜드 사업을 준비하면서 마음속 한편 불안함을 쌓고 있던 이재우 디자이너를 알아보고 회사로 입사를 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론칭한 국내 최초의 콜라겐 원사를 적용한 에코 프렌들리웨어 ‘콜스킨’ 브랜드 사업의 디렉터도 맡겼다. 유니폼 일도 병행한다. 

 

“하하. 제가 겁이 많아요. 그래서 일을 신중하게 지르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나’라는 생각으로 수만 가지 경우를 머릿속에 돌려 봐요. 고민을 많이 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일단 시작하면 하는 일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죠.”

 

치밀하고 진중한 사색은 묵직한 질문으로 탄생한다. “매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요. ‘내가 하는 일에 정답이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가’였죠.”

 

답은 찾았는지 물었다. “죽을 때까지 ‘와, 너무 재미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려면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을 직성이 풀릴 때까지 다 해봐야겠죠? 내일 죽는다고 해도 후회 없이 사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꿈이에요. 유니폼을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만들었을 때 작품이 나온다는 선입견이 사라지길 바래요.”

 

그는 ‘패션 디자이너가 유니폼 정도는 디자인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지길 바라고 있다. 

 

“멋진 슈트를 뽑아낼 디자이너가 있다면 스포츠웨어의 기능성을 강조하고 미학을 담아낼 디자이너도 있어요. 유니폼도 전문적인 시각으로 뛰어들 후배 디자이너가 더 나오길 기대해요. 교복을 입고 즐거웠던 시절이 떠오르듯 유니폼 역시 즐겁고 추억이 있는 멋스러운 옷으로 만들기 위한 디자이너 길이 무엇인지 여전히 찾고 있어요. 지금 당장 평가를 받고 답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요(웃음).” 

 

올해 이재우 씨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우연과 운이 아닌 잘할 수 있는 준비를 해왔던가”이다. 그 질문이 어떤 행동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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