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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패션생활/박지훈

고의적 진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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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훈 동인인터내셔날 2XU… (jihpark07@gmail.com) | 작성일 2020년 07월 13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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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발레파킹 부스 앞으로 노란색 포르쉐 911 한 대가 들어옵니다. 누가 튜닝의 최고봉은 옆자리 튜닝이라고 했던가요, 균형 잡히고 보기 좋은 외모의 커플이 키를 맡기고 로비로 향하는 사이 사람들은 순간 911에게 주었던 시선을 거두어들이기 바쁩니다. 

 

방금 전 들어온 911은 997모델입니다. 포르쉐는 모델명 뒤에 코드네임을 붙이는데 2019년부터 양산한 8세대 911의 코드네임은 992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본 997모델은 2004년부터 생산됐으니 만약 2004년형 모델이라면 무려 16년이나 된 차네요. 

 

16년이나 된 차에게 우리가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5세대 모델인 996은 1997년에 출시됐으니 25년이 다 되어 가는데, 5세대 911을 타는 사람들에게 클래식 자동차 마니아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붙여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독일차라서 그렇습니다. 너무 황당한 대답인가요? 하지만 1927년 GM 사장 앨프레드 슬로언의 ‘고의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이 GM의 성공과 동시에 오늘날 미국차의 위상(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독일차에 대한 미국차의 위상)을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제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obsolescence’는 ‘스러져감’ ‘없어져 가고 있음’ ‘기관 따위의 폐퇴나 위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에 계획적이라는 ‘planned’가 붙어 ‘planned obsoles cence’는 고의적으로 또는 계획적으로 진부하게 만들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은 1954년 산업 디자이너 브룩스 스티븐슨이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광고인들의 모임에서 발표하고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를 사용하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GM의 사장이었던 앨프리드 슬로언이 이 개념을 마케팅적으로 적극 활용한 인물입니다. 

 

슬로언은 이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신형차 모델의 변화는 소비자들이 기존 모델에 불만을 느낄 수 있게끔 진기하고 매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파리 패션업체들의 법칙이 자동차 산업에도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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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슬로언은 1927년 아트 앤 컬러(Art and Color) 라는 부서를 만들고 새로운 모델을 끊임없이 내놓아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에 계속 질리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자동차의 등급을 만들어 더 상위 클래스의 자동차를 갖고 싶게 하고 PPL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자동차를 구입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자동차 수명이 다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신모델을 구입하도록 기존 모델을 고의적으로 진부하게 만들어 버리는 전략 덕택에 1934년 미국인의 평균 자동차 보유 기간은 5년에서 1950년대 후반에는 2년으로 짧아졌습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자동차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고의적 진부화는 미국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을 올렸지만 동시에 미국 자동차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포르쉐 911이나 BMW 3시리즈는 최초 모델부터 현재 모델까지 한 줄로 세워 놓고 보면 미묘한 디자인의 변화가 사람들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특히 BMW는 같은 코드네임을 쓰는 한 세대 모델이 끝날 즈음엔 모든 기술적 문제점들이 거의 완벽하게 개선된 자동차가 나옵니다. 새로운 모델은 외관에서만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모델이 출시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트렌드 등장

고의적 진부화는 산업군을 막론하고 제품의 수명을 줄여 소비를 촉진하게 만들고 공장이 돌아가게 하며 현대 경제 발전에 큰 몫을 담당해 왔습니다. 물론 패션 산업에서의 고의적 진부화는 그 기법이 훨씬 다양하고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방법도 다채로울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우리 머릿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개념입니다. 

 

‘유행이 지나서 입기 힘들다’ 혹은 ‘신제품 출시’라는 문구가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패션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패션업계가 만들어 온 고의적 진부화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노출되었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에 반해 브랜드의 디자인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비즈니스를 쉽고 강력하게 만드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버버리의 체크, 메킨토시의 트렌치코트, 루이스레더의 라이트닝 재킷 등은 고의적 진부화와는 거리가 머니까요. 

 

어쩌면 몇 년 전부터 패션업계의 트렌드로 등장한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도 고의적 진부화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 소비자들로부터 추출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력사항

  • 現) 동인인터내셔날 2XU 사업부장
  • 前) 더네이처홀딩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CD
  • 前) 네파 상품기획 팀장/유럽프로젝트장
  • 前) 인디에프 ‘프레디’ 상품기획 팀장
  • 前) 데상트 ‘르꼬끄 스포르티브’ 상품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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