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트셔츠 없이는 못 살아 > 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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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스웨트셔츠 없이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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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1년 01월 1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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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고서 내가 용돈을 모아 스스로 산 최초의 스웨트셔츠는 대학생 때 명동의 챔피온 매장에서 산 미제(美製) 실버 그레이 컬러의 리버스위브(reverse weave) 크루넥(crewnec k) 셔츠였다. 왼쪽 가슴에 브랜드의 로고인 C자 마크가 자수로 들어가 있고, 왼쪽 소매 끝에 역시 동일한 로고의 와펜이 붙어 있는 클래식한 모델이다. 리바이스의 배기한 실루엣의 청바지에 에어조던을 신고 이 챔피온의 스웨트셔츠를 입고 뉴에라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가장 좋아하는 옷

당최 어떤 선지자가 명동에 챔피온을 수입해서 매장을 내고 사업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 매장이 정식 수입 매장이었는지도 잘 모르지만, 여하튼 당시 명동 안에서도 조금 후미진 골목에 매장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 스웨트셔츠는 25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용케 버리지 않고 잘 입고 있다.

 

이 스웨트셔츠는 지금도 동일한 스펙의 디자인으로 계속 생산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지만, 생산국이 온두라스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바뀌었다. 메이드 인 USA 버전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웬만한 캐시미어 니트 가격을 뺨칠 정도가 됐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미니멀 라이프 따위는 꿈도 못 꾸고 집 안은 물건으로 터져 나갈 지경이지만 그래도 이런 물건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 흐뭇하다. 빈티지 중 최고의 빈티지는 내가 직접 사서 오래 묵힌 빈티지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스웨트셔츠와 후드 스웨트셔츠는 그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옷 중 하나가 됐다. 대학생 때 처음 접해본 스웨트셔츠는 이제 불혹을 훌쩍 넘긴 중년 아저씨에게도 여전히 최애 아이템으로 남아있다. 여름엔 나름의 기준으로 고른 질 좋은 티셔츠를 입고, 여름을 제외한 세 계절에는 그 티셔츠 위에 스웨트셔츠나 후드 스웨트셔츠를 입고 지내는 날이 꽤 많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더 스웨트셔츠를 입으려고 날이 조금만 선선하면 반바지와 입기도 하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며 날이 조금이라도 선선해질라 치면 옷장에서 좋아하는 스웨트셔츠를 꺼내어 입고 낮에 때 아닌 땀을 흘리기도 한다. 드레스코드가 비교적 자유로운 업종에 있다 보니 특별한 일이 있어서 드레스업을 하는 날이 아니라면 사무실에도 스웨트셔츠를 입고 나가는 일이 많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사 모은 것들 이외에도 직접 운영하는 브랜드에서 매 시즌 스웨트셔츠를 만들기 때문에 테스트 삼아, 그리고 홍보 삼아서, 그냥 내가 좋아서도 입는다. 

 

최근에는 스웨트셔츠가 더욱 더 그 저변을 넓히고 있는 듯 보인다. 전 세계적인 스트리트 캐주얼의 유행 덕분이다. 데님이 백 년 전의 작업복에서 출발해서 런웨이에 오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아이템이 됐고, 어글리 스니커즈가 가죽 구두와 스틸레토 힐을 대체하고 있듯이, 스웨트셔츠도 패션하우스들이 단골로 만드는 아이템 중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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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록키'의 한 장면>

 

국내에서는 무신사와 같은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온라인 플랫폼이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플랫폼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는 도메스틱 브랜드들의 단골 봄 가을 아이템으로 스웨트셔츠가 대거 생산되고 있다. 브랜드의 로고를 플레이하기에 스웨트셔츠만큼 최적인 아이템이 또 있을까. 가격도 젊은 세대가 접근하기 용이하다. 우븐 셔츠나 울 소재의 니트보다도, 면 소재의 스웨트는 만들고 파는 입장에서나 사서 입는 입장에서나 여러모로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킹 오브 스웨트셔츠’ 그리고 록키 

스웨트셔츠가 완전히 패션 용도의 일상복이 된 것은 운동복을 최신 기능성 웨어가 대체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디 스웨트셔츠는 운동복으로 개발된 옷이다. 말 그대로 스웨트(sweat, 땀)를 흘릴 때 입는 셔츠가 아닌가. 백 년 전에는 울로 만든 니트 스웨터가 운동복이었는데, 미국의 러셀 애슬레틱스라는 브랜드에서 미식 축구 선수들을 위한 니트 스웨터의 대체재로 면으로 짠 스웨트셔츠를 발명하면서 운동선수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그것을 이어받은 브랜드가 바로 챔피온이다. ‘킹 오브 스웨트셔츠’라는 닉네임이 있을 정도로 챔피온이 스웨트셔츠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면 직물이 스포츠웨어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울로 만든 니트가 일상복이 됐듯이, 합성소재 직물이 스포츠웨어 소재로 면을 완전히 대체하면서, 면 직물 옷은 일상복이 됐다. 

 

스웨트셔츠를 가장 아이코닉하게 입고 운동을 한 인물은 아마 록키 발보아가 아닐까. 영화 속에서 땀에 절은 회색 후드 스웨트셔츠와 스웨트바지를 입고 캔버스화를 신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조깅을 하는 장면은 스웨트셔츠가 완전히 운동용 옷이었다는 기록이다. 

록키의 현대판 리메이크를 찍는다면 주인공은 흡한속건 기능을 탑재한 합성소재로 만든 몸에 딱 붙는 운동복을 입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고기능성 러닝화를 신고 달릴 것이다. 팔에 스마트폰을 차고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영화 록키를 생각하면서 가끔 운동을 할 때 스웨트셔츠에 스웨트팬츠를 입고 나가보기는 하지만, 역시 못할 짓이다. 간단한 운동 정도라면 문제없겠지만 땀을 흠뻑 흘리는 운동에는 최악이다. 땀을 흡수하긴 하지만 발산하지 못하니까 축축하게 젖은 채로 무겁게 몸에 감긴다. 찬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감기에 걸리기 딱 좋다. 옛날 사람들은 용케 이런 옷을 입고 운동을 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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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섬유가 1974년 경향신문에 실은 스웨트셔츠 광고.>

 

다이마루와 쭈리 원단

개인적으로 애호하는 아이템이기도 하지만 업으로도 매 시즌 만드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나름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실전 지식과 책과 인터넷으로 배운 지식을 대비시켜 보면 소소하게 재미있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복식 관련 생산 용어 중 많은 것들이 일본어 발음이 와전돼 정착된 것들이 많은데, 현장 분들에게 여쭈어 봐도 정확한 유래나 뜻을 모르시는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스웨트셔츠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일본어 와전 용어는 다이마루와 쭈리 원단이 아닐까 싶다. 다이마루는 면직물을 짜는 환편기를 지칭하는 일본어인 대환편기(台丸編機, 다이마루아미키)에서 왔을 것이다. 다이마루는 면 니트 원단을 칭하기도 하고, 이 원단을 잘라서 봉재하는(cut and sewn) 방식의 옷을 아울러 지칭하는 표현으로 정착됐다. 일본에서는 이 컷 앤 소운이라는 영어가 일본식으로 남아서 캇토소(カットソー)라는 일본식 영어단어로 남아 있다. 일본에서 캇토소라고 하면 면직물로 만든 티셔츠나 스웨트셔츠 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다이마루가 면 니트 직물을 크게 통칭하는 용어라고 한다면, 쭈리는 프렌치테리라고 불리는 스웨트셔츠용 원단을 칭하는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쭈리라는 용어는 아마도 일본어인 츠리아미(츠리吊り;매달아 編み;짜는)라는 말에서 기원했다고 보여지는데, 스웨트셔츠 원단을 짜는 구식 환편기 또는 구식 니팅 방식을 뜻한다. 영어로는 루프휠러(loopwheeler)라고도 하는데, 현대식 환편기와 다르게 원단의 힘만으로 짜는 방식이어서 지금은 독일과 일본에만 기계와 기술이 남아서 명맥을 잇고 있다. 

 

생산성도 엄청나게 떨어지는 방식이어서 이 방식으로 짠 스웨트셔츠는 꽤 비싸다. 분명 어느 시점에서인가 이 츠리아미라는 말이 한국에 들어와 쭈리라는 단어로 와전됐다는 것이 가능성이 높은 추론일 것이다. 뭐든 빨리빨리 돌아가야 하는 한국에서 진짜 츠리아미 방식이 살아남았을 리는 만무하고 단어만 남은 것이 아닐까 싶다.  

 

‘맨투맨’의 어원

스웨트셔츠와 관련된 용어 중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말은 맨투맨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한국만이 크루넥 스웨트셔츠를 맨투맨이라고 칭한다. 지금도 널리 맨투맨이라고 칭해지고 있으니 완전히 콩글리쉬로 정착된 말이다. 국어사전에도 ‘긴소매가 달린 면 소재의 라운드 티셔츠’라고 등재돼 있는 엄연한 단어이다. 

 

그런데 왜 맨투맨인가? 콩글리쉬 치고도 상당히 독특한 편이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엄청난 자료를 발견했다. 1953년에 창업한 성도섬유라는 회사가 1974년 경향신문에 실은 광고에 이 스웨트셔츠(당시의 표기 방식으로는 스웨트샤쓰)가 등장하는데, 맨투맨은 이 회사의 상표였던 것이다! 관련된 네티즌들의 해석을 보면 맨투맨 방식의 수비 등 스포츠에서 온 용어를 상표화했다는 추측이 지배적인 듯하다. 

 

당시의 광고를 보면 요트에 남녀가 타고 있고(70년대에 요트라니) 간편한 외출복, 젊은이의 일상복, 각종 스포츠용이라고 용도를 밝히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지금의 애슬래져 유행은 이미 예전부터 있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시대와 소재와 실루엣이 바뀌었을 뿐. 결국 맨투맨은 코카콜라처럼, 크리넥스처럼, 상표가 정착돼 대명사가 된 케이스였던 것이다.   

 

무려 74년도에 나온 신문 광고에서도 이 스웨트셔츠를 오로지 운동복 용도로 마케팅하지 않고 외출복으로도 포지셔닝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정말 일상 외출복으로 널리 입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옷의 태생 자체가 완전한 스포츠웨어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패션의 역사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그닥 없었던 듯하다. 

 

노 스웨트셔츠, 노 라이프

외국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예를 들자면 뭐니뭐니해도 영화 ‘대탈주’의 스티브 매퀸일 것이다. 아메리칸 클래식 캐주얼 복식이나 밀리터리 웨어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착장이다. 영화에서 스티브 매퀸은 한 눈에 딱 보기에도 당시의 방식으로 두텁게 짠 질 좋은 래글런 소매의 스웨트셔츠의 소매를 가위로 툭 잘라 면 치노 소재의 오피서 팬츠 위에 입고 나온다. 

 

위에는 잘 에이징된 가죽 A2 재킷을 걸치고. 이것이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소위 ‘아메카지’의 바이블 같은 차림이 됐다. 내가 철이 들고 챔피온의 스웨트셔츠를 찾아서 사 입게 된 것도 결국은 그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스티브 매퀸의 이 착장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그처럼 소매를 가위로 툭 잘라 입기에는 기후가 어울리지는 않아서 아쉽지만. 상황이 허락한다면 일 년에 한 250 정도는 스웨트셔츠를 입고 지내고 싶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같은 날씨라면 스티브 매퀸처럼 스웨트셔츠의 소매를 툭 잘라서 여름에도 종종 입을 수 있을 텐데. 

 

이제 스웨트셔츠가 없는 삶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울이나 캐시미어 스웨터는 확실히 더 멋지고 격이 있어 보이지만 아무래도 스웨트셔츠만큼 편하진 않다. 드레스코드가 갈수록 캐주얼해지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더 활용 범위가 넓어지니 입을 수 있는 상황이 늘어나서 좋다. 

노 스웨트셔츠, 노 라이프(No Sweat Shirt, No Life). 건조기에서 갓 꺼낸 뽀송뽀송한 스웨트셔츠를 맨살에 입고 덱체어에 누워서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병맥주를 따서 마실 수 있는 매일을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인생이 아닐까.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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