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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는 기꺼이 서서 마셔야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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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1년 09월 27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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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가 뜨겁다. 인스타그램에서 에스프레소 잔을 두 세 개씩 쌓아 올려놓고 찍은 인증샷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문화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냥 마시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 본토 에서처럼 스탠딩바 형태로 된 곳에서 서서 마시는 문화까지 시작되는 조짐이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소비자가 압도적으로 많이 마시는 커피는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떼이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는 그 베이스가 되는데, 대부분의 커피숍이 에스프레소를 메뉴에 넣어 놓고는 있지만 실제로 이것을 시켜서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양이 적고 쓴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주문을 받는 바리스타들의 표정은 ‘이 사람은 정말 에스프레소를 알고 시키는 것일까’라는 느낌인데, 그들도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사람들로부터 컴플레인을 많이 받아서일 터이다. 

 

반대로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를 판매할 준비를 아예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전용 잔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 커다란 아메리카노용 일회용 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주는 곳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것은 꽤나 생소한 문화인 것이다. 사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에스프레소라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발전된 독특한 문화이고, 커피 문화라는 것은 나라마다 꽤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란 다방 문화와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시간을 갖고 앉아서 마셔야 한다. 

 

여럿이 가면 앉아서 커피 한 잔을 놓고 수다를 떨고, 혼자 가면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하거나 핸드폰이나 책을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가 있는 곳을 다방의 연장선상으로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에스프레소바, 그것도 서서 마시는 스탠딩바가 유행이라니. 문화가 한 순간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고 확산되는 과정은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탈리아의 커피 부심

여기서 에스프레소의 종주국인 이탈리아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전 세계를 통틀어서 가장 독특한 커피 문화를 가진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가 아닐까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탄생한 커피는 오스만 제국을 거쳐 17세기경에 무역 도시인 베네치아를 통해 이탈리아에 전해진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는 증기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발명되고, 이는 현대의 커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 스타벅스를 필두로 하는 전 세계 커피 문화의 세컨드 웨이브의 확산은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가 그 근원이다. 어쩌면 현대 커피 문화의 근원지가 이탈리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커피 맛과 마시는 법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과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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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데, 벤티 사이즈의 스타벅스 커피는 이탈리아에는 없는 이탈리아어로 창조됐다.>

 

이탈리아 사람들 중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2~3%에 불과하다고 하고, 대부분은 하루에도 2~3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오후에 한 잔. 저녁을 먹고 돌체(디저트) 후에 마시는 경우도 많다.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하루에 5~6잔 이상도 마신다. 

 

이탈리아에서는 ‘카페(caffè)’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를 뜻한다. 그래서 커피를 시킬 때 ‘에스프레소’라고 칭하지 않고 그저 ‘카페(caffè)’나 ‘카페 노르말레(caffè normale)’라고 하면 된다. 스팀으로 낸 우유 거품을 부어 마시는 카푸치노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아침 식사 개념이다. 

 

그래서 오전 11시 이후에는 아무도 카푸치노를 마시지 않는 것이 그들의 국룰이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후에 카푸치노나 카페라떼를 시키면 서빙하는 사람이 와서 진지하게 식사가 맛이 없었냐고 묻는다.

 

왜냐하면 배가 덜 고프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진짜 자기네들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사람들이다.  

 

커피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에스프레소 가격을 통제할 정도이니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커피 한 잔 값은 1유로에서 1.5유로 선으로 유지된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이탈리아의 카페는 거의 스탠딩바가 대부분이고 약간의 테이블을 갖추어 놓은 곳이 있다.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는 경우는 커피 값이 훨씬 비싸지는데, 이것은 일종의 서비스 비용이 붙기 때문이다. 

 

카운터에서 선불로 커피 값을 지불하고 주문증 같은 것을 받아 바에 가서 바리스타에게 주문증을 보여주며 마시고 싶은 스타일의 커피를 주문한 후 서서 커피를 훌쩍 마시고 나온다. 

 

좀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는 커피바는 장소의 대부분을 크고 기다란 바가 차지하고, 서서 커피를 마시고 시끄럽게 대화하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북적인다. 

 

클래식하고 역사가 오래된 커피바에 가면 흰 재킷과 타이를 맨 바리스타들이 엄청나게 빠른 손놀림으로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또 내려준다. 이것이 전형적인 이탈리아 커피숍의 풍경이다.  

 

스타벅스식 커피 문화

자국의 커피 문화가 워낙 짙고 충만하기 때문에 그만큼 타국의 사람들에게는 일견 배타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는 사실 충분히 이해하고 즐기면 참 즐겁기 그지없긴 하다. 

 

그래서인지 에스프레소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통째로 수출하려는 노력은 줄곧 존재해왔다. 그런데 귤이 제주도를 건너 육지로 오면 탱자가 되듯, 에스프레소도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그 맛도 문화도 분위기도 느낌도 모두 달라져 버린다.

 

스페인이 그나마 이탈리아와 가장 흡사한 커피 문화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커피도 나름 맛있지만 역시 이탈리아에 비할 바는 아니다. 프랑스는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가 맛없다고 놀리는 대표적인 나라다.

 

스타벅스는 이탈리아 본토의 커피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에스프레소를 기본 베이스로 하는 여러 가지 레시피를 만들었지만 그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미국적인 변주를 가해서 이탈리아와는 정반대의 문화를 창출해 냈다. 그것은 바로 편한 소파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그에 걸맞게 그란데(grande, 크다는 뜻)며 벤티(venti, 20을 뜻함. 20온스 약 590㎖ 용량을 의미)같은 이탈리아에는 없는 이탈리아어로 된 무지막지하게 큰 사이즈의 커피 메뉴를 창조해냈다. 

 

커피와 함께 편히 앉아서 시간을 즐기는 공간을 제공하는 스타벅스식 커피숍의 문화는 이탈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 잘 맞아 떨어졌다. 특히 다방의 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와는 너무 상성이 좋았다. 

 

이것이 현대의 커피숍 셋팅의 기준이 되다시피 하다보니 당연히 커피바에 선 채로 몇 모금에 잔을 훌쩍 비우는 이탈리아 본토식 커피 문화는 뿌리내리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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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바 에스프레소 

우리나라에도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그대로 가져와서 알리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개는 도전과 실패의 역사였다. 

 

지금은 종로구 내자동에서 ‘소울빌’이라는 위스키 리스닝바를 운영하는 박지혁 사장은 무려 2006년에 이탈리아에서 보고 사랑에 빠진 에스프레소 바의 문화를 한국에도 전파하고자 ‘차오바 에스프레소’라는 커피숍을 청계천에 오픈했다. 

 

2층으로 된 카페의 1층은 전체가 다 스탠딩바로 되어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탈리아의 어느 커피바 같은 모습이 한국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역시 스탠딩 커피바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2년 동안 에스프레소바를 운영하다가 역시 한국에서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위스키를 서빙하는 바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의 에스프레소에 대한 사랑과 내공은 그대로여서, 주방에 본인이 마시려고 설치해 놓은 작은 기계로 단골들에게 가끔 에스프레소를 내려주고는 하는데, 그 맛의 밸런스와 쫀득쫀득한 텍스쳐가 장안에 대적할 카페가 몇 군데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끝내준다.

 

그 커피 맛이 아까워 그에게 또 에스프레소바를 차릴 생각이 없냐고 묻지만 그는 좀 회의적인 미소로 답할 뿐이다. 

 

리사르 커피

그런데 어지간해서는 한국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스탠딩 바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문화가 지금 막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바로 리사르 커피다. 

 

리사르는 상왕십리의 허름한 건물 반지하에서 시작했다. 아예 상권과는 동떨어진 동네에 겉에 간판도 없고 로스팅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었는데 스탠딩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곳이 몹시 궁금했었지만 소문만 듣다가 내가 찾아간 시기는 이미 약수동 시장 안쪽으로 이사를 간 이후였다. 아침 일찍 열고 저녁 시간 전에 문을 닫는 식이라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가기가 힘들었다. 거기서 리사르 커피의 이민섭 대표를 만났다. 

 

대여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작은 공간에 ‘ㄴ’자로 된 스탠딩 바가 있고 사장님 혼자 에스프레소 기계를 놓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같은 층의 뒷편 넓은 공간이 로스팅 작업실인 듯했다. 

 

왠지 이런 고집스러운 카페의 사장님은 성격도 깐깐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에스프레소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지더니 수다로 둘이서 이태리를 한 바퀴 다녀올 정도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시작으로 다른 메뉴까지 3잔을 마시고 나왔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왜 리사르의 에스프레소 가격이 천오백 원 밖에 안하는지, 아메리카노 같은 메뉴는 다루지 않는지, 그리고 스탠딩 방식의 바를 고집하는지 자연스레 의문이 풀렸다. 

 

그렇다. 이 분도 이탈리아의 매혹적인 그 커피 문화를 우리나라에서 같이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리사르 커피가 약수동에서만 있었다면 절대로 지금 불어 닥치는 에스프레소 유행은 시작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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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르 커피.>

 

쌓아올린 에스프레소 잔들 

리사르가 지금의 청담점 자리로 진출하면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행위는 2021년 한국에서 가장 힙한 행위 중 하나가 되었다.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기는 하지만 공간의 대부분은 역시 서서 커피를 마시는 구조로 되어 있다. 

 

분명 누군가는 의자가 왜 이리 없냐며 불평을 할 법도 하지만, 힙한 여성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마치 원래 이런 문화를 즐겨왔다는 듯 바에 기대어 선 채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풍경이 금세 연출되기 시작했다. 

 

청담동에 카페를 열었다고 가격을 크게 올리지도 않았다. 먼저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주문증을 들고 가서 바리스타에게 커피를 받는 시스템도 이탈리아 본토 그대로이다.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은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천오백 원으로 동결. 크림이나 우유가 들어간 메뉴들만 오백 원씩 올렸다. 

 

그래도 한국, 그것도 청담동 한 복판의 물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오면 으레 두 세 잔 씩 마신다. 

 

그리고 누가 시작했는지 자기가 마신 에스프레소 잔을 쌓아 올려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은 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리사르로 향하게 했다. 커피 마니아뿐 아니라, 커알못이지만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려고 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들 어쨌든 저변이 확대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만은 사실이다. 

 

리사르 커피의 청담동 진출이 에스프레소 유행의 큰 계기를 마련하자, 이전부터 재야에서 에스프레소를 팔던 곳들이 같이 주목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또는 아예 스탠딩 에스프레소바를 콘셉트로 오픈하는 카페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어쨌든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크나 큰 복음이다. 절대로 벌어질리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힙한 유행처럼 확산되는 것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대중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을 공급하는 선구자와 그것을 찾아서 소비하는 매니악한 애호가도 그들 나름의 즐거움은 각별하겠지만 역시 어느 정도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더 좋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내가 요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내려주는 바가 집이 있는 동네에 하나, 그리고 사무실 근처에 하나 생겼으면 하는 것이다. 모두 일부러 찾아갈 정도의 거리가 아니라 생각이 나면 그냥 쓱 걸어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있어야 한다.

 

상상만 했던 일인데, 작금의 이 유행 덕분에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언제든 커피 생각이 나면 동네에 있는 바에 걸어가서 선 채로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 쭉 마시고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 곱절은 풍요로워질 듯하다.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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