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름은 온다 플립플랍의 계절 > 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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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름은 온다 플립플랍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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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1년 05월 3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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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전지구적 팬데믹이라고 해도, 결국 여름은 온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스멀스멀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플립플랍, 또는 비치샌들, 또는 속칭 쪼리라고 부르는 신발이다.

 

이 칼럼을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내가 얼마나 구제불능의 맥시멀리스트인지 알 터이다. 최근의 트렌드인 정리와 비우기에 역행하는 습성임은 물론이요, 재무적 관점에서도 절대로 좋은 습성은 아니지만, 타고난 천성은 천성인가 보다.

 

좋아하는 물건은 실사용과 상관없이 계속 사 모으게 된다. 비슷한 것이 있거나 말거나 약간의 차이점이 너무 재미있다면 사게 된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내가 사모은 물건으로 대변될 수 있지 않을까란 철학적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여름이면 플립플랍을 사모은다. 사실 이미 집에는 아마 10년은 신고도 남을 정도의 플립플랍이 가득 있지만, 왠지 매해 여름이 오면 또 새로 나온 플립플랍을 산다.

 

한 때 이 습성을 고쳐보고자 엄청나게 자제를 해보기도 했지만, 사고 싶은 물건을 못사는 스트레스가 더 컸기에, 그냥 순리를 따르기로 했다. 예쁘고 멋지고 사고 싶은 플립플랍이 있으면 그냥 산다. 당장 안 신어도 박스에 넣어 놓는다. 그러면 그 이듬해가 되어서라도 결국 신을 테니까.

 

사고 싶은 것을 놓치느니 내 창고 박스 안에 넣어 놓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참 피곤한 성격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고, 테제이자 안티테제이자 진테제이다. 

 

미국스러운 신발

각설하고, 이 플립플랍이라는 신발은 기원전 몇천 년경부터 지구의 각 지역에서 신었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신발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에서 문명이 생겨날 때부터 있던 신발이다.

 

아주 단순한 구조로 지면으로부터 발을 보호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신발이다. 그런데 현대의 플립플랍은 일본의 조오리(草履)가 원형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도 흔히 쓰는 ‘쪼리’라는 통칭도 일본어에서 왔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이 조오리를 미국으로 가져간 것이 현대판 플립플랍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라고 한다. 

 

플립플랍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신발을 신고 걸을 때 나는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 굳어진 것이다.

 

 70년대의 히피 문화와 캘리포니아의 라이프스타일이 결합하면서, 이 일본의 조오리라는 신발은 금세 미국인이 사랑하는 신발의 일종으로 발전했다. 1962년에 브라질의 신발업체가 ‘하바이아나스’라는 브랜드로 고무 재질의 플립플랍을 처음 선보였는데, 이것이 현대판 조오리의 시초인 셈이다.

 

 ‘하바이아나스’가 현재까지 판매한 플립플랍은 일억 오천만 켤레가 넘는다고 한다. 플라스틱 성형술의 발전과 더불어 플립플랍은 급속도로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의 일상화가 됐다. 마구 찍어내는 형태로 개발되다 보니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특히 사시사철 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해변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이상적인 신발도 없었을 터이다. 

 

그래서인지 플립플랍하면 미국의 이미지가 강하다. ‘As American as apple pie’라는 관용어구가 ‘지극히 미국적인’이라는 뜻인데, ‘as American as flip flops’라는 관용구도 충분히 있을 만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미국에서 살 때에는 티셔츠와 반바지에 플립플랍 차림으로 지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태리에서 지낼 때는 매일같이 재킷에 구두를 신고 타이를 매고 다녔던 작가님이 미국에 갔다고 갑자기 맨발에 플립플랍이라니, 그만큼 플립플랍은 미국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지니게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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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아일랜드슬리퍼>

 

멋있으면 된 거야

그러고 보니 나도 미국 여행 때 플립플랍을 가장 많이 샀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한철 아이템 성격이 강해서 선택지가 적었던 탓이다. 그래서 미국만 가면 플립플랍을 사고 싶은 욕구가 불쑥 튀어나오게 된다. 팬데믹 이전에 출장으로 미국을 매년 두 세 차례씩 드나들 때의 이야기이다.

 

공항에 내려서 면세 구역을 지나가다 보면 미국의 편의점같은 개념인 뉴스스탠드에서도 기념품 개념으로 플립플랍을 팔기도 하고, 심지어 플립플랍만 모아놓은 편집숍도 만나게 된다.

 

공항에서 연결편을 기다리며 어슬렁거리다 보면 그만 플립플랍을 한 켤레 사게 된다. 호텔에 들어가서 실내화로 신거나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갈 때 신어야지 하고 사는 경우도 많았다. 

 

공항 내에서 만나는 유혹을 뿌리치더라도, 현지의 쇼핑몰을 시장조사차 돌다 보면 무조건 맘에 드는 플립플랍을 파는 가게를 만나게 된다. 남성 브랜드에서도 팔고, 스니커즈 편집숍에서도 판다.

 

무엇보다 현지의 서핑숍이나 익스트림 스포츠숍을 들어가면 온갖 서핑 브랜드에서 만드는 플립플랍의 향연을 만나고 결국 또 한 켤레를 사게 된다. 거리에서 만나는 미국 남성들의 룩에서도 자극을 받게 된다.

 

 따스한 미국 서해안의 햇볕과 선선한 공기를 맡으면 그만 나도 저 미국 남자들처럼 반바지와 티셔츠에 플립플랍을 신고 싶은 기분이 된다. 사실 이건 어떤 관점에서 보면 엄청나게 촌스럽고 신경도 안 쓴 차림이지만, 미국식 실용주의와 미국 남자들의 마초적 무심함이 자아내는 나름의 멋이 있다. 

 

일본이 원조인 셈이지만 결국은 미국에서 꽃을 피운 신발 장르이니만큼, 플립플랍을 제일 다양하게 만드는 브랜드들은 거의 미국 브랜드들이다. 5달러짜리부터 100불을 넘어가는 것까지 가격적인 선택지도 꽤 많다.

 

미국식 SPA 브랜드인 갭, 올드네이비, 아베크롬비앤피치, 아메리칸이글 등등에서 매해 내놓는 물건도 나쁘지 않다. 가격도 저렴하고 좋은 디자인도 많다.

 

또는 미국의 서핑 브랜드인 퀵실버, 볼컴 등에서 만드는 것도 좋다. 특히 이런 브랜드의 플립플랍을 신고 다니면 내가 마치 서퍼가 된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칠 만한 물건은 플립플랍 전문 브랜드에서 나온다. 내가 결국 종착하게 된 브랜드는 ‘레인보우샌들’과 ‘아일랜드슬리퍼’이다.

 

둘 다 가격이 만만치는 않다. ‘여름 한 철 신을 슬리퍼에 이런 금액을 지불한다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웬만한 운동화 가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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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레인보우센들>

 

레인보우샌들 & 아일랜드슬리퍼

레인보우샌들은 1972년에 LA의 라구나 비치에서 창업했다. 공식적인 창업년도는 1974년이니 곧 있으면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이다. 감히 스스로 세계 최고의 플립플랍임을 자처한다.

 

심지어 이 브랜드는 라이프타임 개런티를 보장해준다.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설명이 나와 있는데 언제든 얼마나 신었든 자신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불량이 나오면 새 신발로 교환해준다.

 

이 브랜드에는 충성 고객도 많다. 이제는 LA의 해변을 넘어 전 세계의 여름 신발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글링을 하면 처음 나오는 질문이 이 브랜드가 돈 값을 하느냐 인데, 답변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용자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니 가격에 대한 의구심은 그냥 사라진다. 

 

개인적으로도 여름이면 제일 애용하는 브랜드이다. 가죽 재질이라 처음엔 좀 빡빡하지만 오랫동안 신으면 점점 더 내 발에 맞게 모양이 잡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처음 미국에서 이 브랜드를 발견했을 때는 비싼 가격에 망설였지만, 한 켤레 사서 신어보고는 나도 이내 팬이 되어 버렸다. 몇 년 전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팔리고 있다, 

 

아일랜드 슬리퍼는 하와이에서 수작업으로 만드는 샌들이다. 고급 소재와 독특한 디자인으로 일본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꼭 반바지와 티셔츠가 아니더라도, 캐주얼한 셋업 수트에 신어도 여름 차림으로 괜찮은 느낌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비싼 가격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요즘 이 브랜드를 수입하는 회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곧잘 팔린다고 한다. 

 

참 반갑다. 한 철 사서 막 신다가 버리는 게 플립플랍의 매력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장인정신에 기초해서 잘 만들고 제 값을 받는 브랜드도 좋다. 나도 벌써 10여 년 전에 산 것들을 지금도 잘 신고 있다.

 

명품 브랜드에서 만드는 플립플랍이라면 몇 십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것도 많은데, 그것을 생각하면 충분한 가치를 가진 신발이다.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아웃도어 신발을 잘 만드는 전문 브랜드에서 만드는 플립플랍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킨, 차코, 테바 등 그야말로 미국 아웃도어 느낌이 물씬 나는 브랜드들이 이런 제품을 잘 만든다. 대개는 좀 더 튼튼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아무래도 고기능성 제품을 만들다 보니, 기능성 소재를 쓰고 발의 굴곡에 더 잘 맞게 디자인되어 있다. 앞서 말한 브랜드들이 해변이나 도시에서 신을 때 잘 어울린다면 역시 아웃도어 브랜드 출신 플립플랍은 산이나 계곡이 훨씬 잘 어울린다. 특히 캠핑 씬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 신발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발포고무 소재로 일체 성형한 제품을 만드는 우포스와 토앤토라는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벼운 무게와 폭신폭신한 착화감이 인기의 비결이기도 할 것이고 독특한 형태가 주는 룩도 최근 유행과 어울려서 그런 듯하다.

 

특유의 모양 때문에 신는 것을 좀 꺼리다가 한 켤레 사서 신어보니 과연 인기를 끄는 이유가 있다 싶어 다른 컬러를 또 샀다.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좋다. 크록스의 모양이 부담스럽다면 적절한 대체재 역할을 하는 신발이다. 

 

여름이 오면 창고에 넣어 놓았던 플립플랍들을 꺼내어 신발장에 전진 배치시켜 놓는다. 평일에도 매일같이 신고 다닐 수 있는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하니 주말에 최대한 즐긴다.

 

스니커즈도 좋지만 플립플랍이 주는 단순한 멋과 여유로움은 확실히 한여름의 각별한 즐거움이다. 

 

나중에 은퇴하면 여름엔 매일같이 신고 어슬렁거릴 테다. 그러니 이번 시즌에도 몇 켤레 새로 사야겠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작은 호사다.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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