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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패션 실험실/김유겸

뉴욕에서 만난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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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유겸 FITI시험연구원 … (youkyum@hotmail.com) | 작성일 2020년 09월 14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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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 교양과목으로 심리학을 수강하며 기말 리포트 주제로 ‘패션 유행’을 용감하게 선택했던 경험을 기억한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종로 관철동 골목(당시엔 지금 홍대 앞처럼 핫했던 곳이라고 기억하신다면 아마도 당신은 80년대 학번이시리라)에서 같은 조원들과 오가는 여성들의 신발을 색상별로 수를 헤아렸다.

 

1학기 말이었으니 7월 초라 한창 샌들이 대부분이었고, 색깔은 믿기 힘들겠지만 70% 가까이 빨간색이었다. 당연히 그 시즌의 유행색은 빨강이었다. ‘동조현상’ 때문에 패션의 유행은 계속된다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맺은 리포트를 제출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유행과 트렌드

구글 번역기에 ‘유행’이라고 넣으면, ‘트렌드’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엔 ‘유행’이라는 표현보다는 트렌드라는 표현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이것도 유행인가? 트렌드인가?) 프랑스에 위치한 섬유 패션 유행색 기관이나 유명한 색상 전문 기업에서 해마다 올해의 유행색을 발표한다. 그래서 그 색상을 사용해야 올해의 신상품이라는 건지 관련 기사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진다. 

 

마치 이런 색상을 사용하지 않으면 트렌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아마도 남들과 다른 것이 불편해서 나도 모르게 따르게 되는 ‘동조현상’을 이용하는 것 일수도 있고, 색상 전문기관으로서 존재를 알리려는 작업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바지 단의 너비와 길이가 줄었다 늘었다 하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물방울무늬, 꽃무늬가 계절이 바뀔 때쯤 언뜻 거리를 수놓는 듯 하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의 옷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와 팔다리가 몸통으로부터 가지처럼 뻗어 있어 형태적으로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고, 선택할 수 있는 소재도 이미 정해져 있어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크기와 색상의 무한한 조합이 아닐까? 이것은 엔지니어의 단순한 생각이니 놀라지는 마시기 바란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가기도 어렵고, 청중을 초청하는 세미나, 발표회도 열지 못하니 출근길 반복되는 옷차림이 어느 사이 유니폼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유니폼’도 각자 나름대로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옷 중에서 골라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꾸며보지만 대량생산으로 공급되는 색상, 크기, 장식의 조합 내에서 고민한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여러 브랜드의 옷들은 품질과 디자인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서로 비슷해지고 있고, 브랜드 상표를 소매에 그리고 어깨에 표시하면서, 옷의 스타일이 아닌 브랜드 로고만 눈에 띄는 듯하다. 

 

대량 생산을 위해 표준화된 생산 방식과 품질관리 체계는 색상과 디자인의 무한한 조합의 한계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서로 비슷한 제품들이 나오게 된다. 30여 년간 표준화 활동을 하며, 표준화가 주는 장점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되는 것이 ‘다양성(diversity)’의 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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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내 아프리카 전시관. photo metmuseum>

 

내재된 다양성

뉴욕 센트럴파크 옆 5번가를 따라 1마일 사이에 8개의 전시관들이 이어지는 ‘Museum Mile’에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단연 으뜸이다. 오랜만에 다시 들렀을 때 새롭게 접한 아프리카 전시관은 인류에게 매우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음을 알려 준다.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문명과 또 다른 세상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정교하고 놀라운 조각품들과 천장을 가득 뒤덮은 방패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생활과 문화가 있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이런 아프리카 고유의 스타일과 취향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고, 세계가 서로 동질화되어 모두 닮아가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삶의 방식이 편리함을 극대화시켜주는 표준화된 몇 개의 형태로 정리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소비자들은 좀 더 자신만의 차별화를 추구하고, 개인적 취향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제한된 선택의 범위 안에서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패스트 패션을 통한 대량생산과 소비에 한동안 익숙해져 있던 섬유, 패션업계는 이제 다행스럽게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 이제는 고유의 스토리를 상품에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스토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야 하고, 다채로운 사연과 경험을 통해 지나온 시간의 자취들은 고스란히 그 상품만의 스타일이 된다.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이미 내재된 가치를 통해 고유한 다양성으로 차별화된다. 

 

10여 년 전 뉴욕 세미나장에서 발표하던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를 처음 보았을 때와 그 이후 파타고니아의 스토리를 책으로 접했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제대로 알지 못했던 스토리를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2015년 사고로 세상을 떠난 노스페이스의 창업자 더글라스 톰킨스를 추모하는 글로 채워진 파타고니아의 홈페이지 화면을 보았던 순간, 무엇이 진정한 다름인가를 알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온갖 다양한 상품을 쏟아내던 패스트 패션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브랜드 고유의 가치와 다양성을 잃게 만들었다. 

 

동네 아이들이 어울려 뛰놀던 골목길을 없애고 재개발로 표준화된 아파트가 우리의 터전을 대신하고, 어디서나 똑같은 맛의 커피 체인점과 달고 짠 프랜차이즈 음식이 모두의 입맛을 통일하고 있지만, 패션 산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다시 변화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가까운 미래의 언젠가는 SF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모두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어야 하는, 패션과 트렌드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력사항

  • (재) FITI시험연구원 Quality & Audit
  • ISO/TC 38 Textiles, convenor – WG27, WG31 SC24/WG5
  • ISO/PC 308 Chain of Custody, ISO/TC 323 Circular Economy delegate
  • 한중일 섬유산업연합회 협력회의 지속가능성분과 한국간사
  • 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 Fashion Charter Working Group member
  • 경희대학원 섬유공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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