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양치기 소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명광 비루트웍스 대표 (mkcho7@gmail.com) 작성일 2021년 08월 30일 URL 복사본문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도성 시장에 과일 장수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한 여름날 수박을 많이 들여왔는데 생각보다 장사가 되지 않았다. 돌림병으로 시장에 손님들도 많이 나오지 않았고 과일 말고도 빙수며 수정과며 경쟁 상품들도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수박 앞에 크게 전국에서 가장 달콤한 수박이라고 써 두고 10개 한정으로만 판매하겠다고 방을 붙였다. 손님들은 순식간에 줄을 섰고 10개가 다 팔렸는데 한정으로 안 팔고 하루 종일 팔았다. 다음 날은 최신 종자로 키운 국산 수박이라며 한정 5개를 일반 수박의 3배 가격에 장사를 시작했다. 어제보다는 덜 했지만 많은 사람이 모였고 금세 동이 났다. 그런데 시장에 소문이 돌았다. 수박 장수의 과일이 달지도 않고 최신 수박은 상표 갈이를 한 바다 건너 나라의 싼 수박이라고 말이다. 이런 소문이 돌다 결국 과일 가게에는 파리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진실의 순간
페이크 전래동화지만 가짜 같지만은 않은 내용이다. 아마도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시장엔 거짓과 진실 사이 어디엔가 발을 딛고 만들어지는 수많은 말과 글들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시도들이 어느 정도 먹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소비자들은 어떤가? 수많은 정보와 네트워크로 무장해 포진하고 있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공급자의 말과 글들이 시장에서 횡행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사전적 의미의 ‘진실의 순간(The Mo ment of Truth)’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MOT: 투우에서 유래한 말로 투우사의 칼이 소의 급소를 찌르는 순간이라는 말로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지금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원래도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이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그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이런 시장에서 소비자와 공급자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넥스트 시장을 맞이해야 할까? 많은 준비를 해야겠지만 다른 그 어떤 요소보다 시장은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1. 시장에서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진정성은 한자로 ‘眞情性’이다.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라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진정성이 있다고 할 때는 ‘임하는 태도에 거짓이 없고 열심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시장에서는 진정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공급자 입장의 진정성: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조하는데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다른 사업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과도한 마진을 요구하지 않고, 이해관계자들에게 정상적인 방법의 계약을 통해 일을 하고, 시장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의 진정성: 시장 질서를 해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지 않고, 시장 교란 행위에 가담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기업을 응원하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을 배척한다.
이렇게 진정성을 정의하고 나면 과연 진정성을 가진 기업과 소비자가 얼마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급변하는 시장에서 이런 진정성 없이는 생존하기 힘들다. 그만큼 진정성을 추구하는 기업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 진정성이 중요해진 이유
시장에서 진정성이란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정성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에 불과하다. 그전까지는 진정성보다는 이익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라마다 경제적 여유와 정치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1) 공급과잉의 돌파구
문 앞에만 나가면 핸드폰만 열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공급과잉의 시대가 됐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기업은 긍정적인 차별화도 필요했고 부정적 이슈가 나오지 않도록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선도적 대응을 하고 시장의 파트너를 자임하고 나서는 등 긍정적인 차별화를 통해 기업의 호감도를 높였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 bility)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기업은 사회 및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해야 지속가능하다는 윤리적 책임 의식과 함께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경영하기를 요구받게 된다.
ESG 경영도 이런 흐름에서 나오는 시대적 요구일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에 기업은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 vernance)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에도 관심을 가져야 투자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또한 이런 시장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네거티브 영향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정성적이라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정량적으로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역할이 단순히 ‘제품 생산과 판매’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기업’으로 바뀌면서 기업들도 이런 진정성을 정의 내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고 있고 이에 부응하고 있다. 이것이 다양한 경영 패러다임 등장한 이유다.
(2) 공정이 중요해진 시장 논리
시장 논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과거 시장 논리는 개입의 여지가 많았다. 소위 말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뇌물이나 네트워크에 의해 돌아가는 시장이 존재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지금이 완전한 시장경쟁이 이뤄지는 시대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 부각됐을 때 시장에서 퇴출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 타격을 입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이슈가 생기고 사라지길 기다리면 해결되는 때가 아니다. 디지털 박제가 된 이슈들은 끊임없이 시장 참여자들을 따라다닌다.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과거처럼 체리피커가 되거나 블랙리스트가 된다면 기업은 소비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생산자나 소비자나 공정해야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토대가 점점 마련되고 있다. 약육강식에서 적자생존의 논리로 변화하고 있다.
(3) MZ에게 중요한 진정성
MZ세대를 논할 때 빼놓지 않아야 할 단어 중의 하나가 진정성이다. 개인화 시대가 열리면서 소비는 단순히 생존 이상의 문화가 되었고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소비하는 세대가 바로 MZ세대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시대를 연 것은 X세대이지만 시장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후 MZ세대에 와서야 민주화보다는 시장의 공정이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변화를 겪으면서 더욱 경쟁이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공정한 경쟁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고 이는 소비 선택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MZ세대가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선택받기 힘든 시대가 되었단 뜻이다.
3. 진정성이 시장 논리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
ESG 경영 혹은 진정성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거론되는 기업이 있다. 바로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가 이런 시장의 흐름과 논리를 잘 읽고 이에 부응하는 기업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아직은 이런 흐름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파타고니아가 ESG 경영의 대명사가 된 이유를 알면 시장 구성원들이 시장 요구에 대응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1) 우리의 철학은 진짜인가?
기업들의 홈페이지엔 좋은 말들이 있다. 하지만 그 철학을 지키기 위한 기업 활동을 실제로 영위하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파타고니아의 철학이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것은 기업 활동이 그 이념의 실현과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사가 수행해야 할 미션에 대해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이라 정의하고 있다. 지구를 살리는 비즈니스를 한다는 말이 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활동 리스트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불필요한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매출의 1%를 환경기금으로 조성하여 환경단체를 지원하고, 사내벤처를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그들의 활동과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파타고니아의 이익은 지구의 지속가능을 위해 쓰이고 있다.
(2) 철학을 지속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는가?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서 많은 장치가 필요하지만 진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란 쉽지 않다. 특히 대표자가 바뀌거나 기업 환경이 좋지 않을 때에는 진정성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하겠다는 의지는 쉽게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
파타고니아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준비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발전이 발전을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ESG 경영을 위해 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우선 우리의 생존 자체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명감을 뼈에 새기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파타고니아는 적자를 감수하고서도 환경기금을 마련한다. 해마다 성장을 해야 하는 논리로 무장한 기업들에는 남의 나라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한 장치를 스스로 개발하지 못한다면 남을 통해서라도 만들어야 그 장치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않을까?
(3) 진정성을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사업을 추진하고 지속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알지 못한다. 좋은 내용이건 나쁜 내용이건 간에 기업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패턴이 지속되어야만 소비자들은 기업의 진심을 믿기 시작할 것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다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해도 위기 대응이 충분할 것이다.
완벽한 피조물은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정성을 계속 드러내고 검증받는 것이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 원칙이다.
세계 3대 거짓말이란 것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밑지고 판다는 말이다. 기업 목표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니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이익을 내고 생존하자는 말의 와전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저 말이 시장에서 끊임없이 회자된다는 것은 기업이 양치기 소년을 닮아서이지 않을까.
기업이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진정성을 완성하는 단어는 다름아닌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경력사항
- 현 (주)디트리스, (주)코네이스 CEO/
씨엘앤코 대표컨설턴트/ 한양대사이버대학원 마케팅MBA 겸임교수 - 전 신세계 백화점 CRM팀 과장
- 현대캐피탈 고객전략팀 과장
- 타이드스퀘어 상품팀 부장
- 삼성카드 브랜드팀 차장
- 인스테리어 CMO
- 저서 : <마케팅무작정따라하기>, <호모마케터스>,<21일마케팅>
- 이전글선점과 독점 그리고 데이터의 산출물 ‘플랫폼’ 21.10.11
- LIST
- 다음글시장의 다른 말은 온라인이다 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