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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부의 提言 / 서인각

오너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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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인각 전 삼성물산패션부문 … (fpost@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2월 24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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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좌)과 CJ이미경 부회장(우)>

 

아주 먼 옛날, 스포츠와 국내 연예계에 꿈처럼 여겨지던 것이 몇 개 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대회 결승에 한국 선수가 외국 선수들과 자웅을 겨루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하고(종목과 상관없이),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순간 혹은 국내 가수가 그래미 무대에 오르는 꿈, 그리고 토종 영화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후보가 되는 것 등 이었습니다.

꿈은 이루어 진다

지난 2002년 붉은 악마 응원단이 16강을 염원하며 만들었던 카드섹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월드컵은 4강 신화, 김연아는 2010 벤쿠버올림픽에서 피겨 금메달리스트가 됐고 박태환은 수영이라는 취약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또 BTS라는 보이그룹이 최근 몇 년 간 그래미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국내 영화산업 101년 만에 ‘기생충’이 그토록 기다리던 국제 장편영화상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의 상을 받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본상을 필두로 국제 장편영화상, 특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받을 거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이후로 한참은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에 대한 특집 프로들이 방영되며 우리에게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상식 관련 동영상은 지금도 유튜브에 수없이 등장하며 높은 조회 수를 보이고 있는데, 봉준호 감독이 하는 수상 소감도 많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쟁자였던 감독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던 감독상 수상소감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수상 소감이라고 이야기 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물론 필자도 시상식을 직접 보다가 작품상을 발표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감독상을 받았을 때 그 멋진 수상소감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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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손 곽신애 대표(가운데>가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숨은 손

하지만 작품상 수상소감은 제작사인 바른손의 곽신애 대표와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이미경 부회장이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감독상을 받고 기대하지 않았던 수상에 놀라는 모습이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멋진 소감을 이야기하긴 했으나 봉준호 감독의 소감 소재는 떨어지기도 했고, 작품상은 제작사에게 주는 것이므로 제작사 대표가 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시상식후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미경 부회장의 소감발표에 조금의 논쟁이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누군데 거기 올라가느냐’ 라는 것부터 ‘도와준 동생(CJ의 회장인 이재현 회장)에게 감사를 표한 것이 과연 그 자리에 맞았는가’ 하는 것들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이미경 부회장이 어떻게 봉준호 감독을 도왔는지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나오면서 불평의 글들은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이나 송강호 배우가 그 어두운 시절을 이겨내고 마침내 세계에 우뚝 선 모습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을 받은 이미경 부회장이 끈질기게 문화예술에 투자를 계속하면서, 그 결과를 얻어낸 오늘이야말로 어둠속에서 밝은 곳으로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된 첫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오늘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며, 수많은 사람들이 봉 감독을 믿지 못할 때 흔들림 없이 곁을 지켜준 이 부회장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결과는 얻지 못했을텐데 말입니다. 

 

모두 포기한 문화 사업

IMF가 오기 얼마 전 삼성과 현대가 문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현대는 영화사업부가 있었고, 삼성은 영상사업단을 시작했지요. CJ도 제일제당 시절, 영화사업부라는 이름으로 영화계에 들어왔습니다. 

 

1995년 드림웍스에 3억 달러 라는 막대한 돈을 투자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CJ는 IMF를 거치면서 다른 그룹들이 돈이 되지 않아 하나둘씩 영화판에서 철수할 때 그 험난한 세월을 견뎌냈고, 위기가 지난 후 2006년 사업부를 독립시켜 독자법인인 CJ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한국 영화판을 통째로 바꾼 것이지요.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삼성영상사업단이 IMF의 어려운 시절 힘들게 제작했던 1990년대 말 부터 2000년 대 초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적인 영화라 불리는 쉬리가 개봉하기 불과 한달 전 해체를 결정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죠.

 

사실 당시는 정상적인 시기가 아니었기에 기업을 운영하기 너무나도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돈이 안 되고 비전도 별로 보이지 않는 영화를 비롯한 문화사업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돈을 그냥 버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CJ는 끝까지 그곳에 남아서 우리나라 영화산업을 지켜냈지요. 이는 영화와 문화를 사랑하는 이미경 부회장의 집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가 촬영 중 예산이 부족했을 때 묻지도 않고 추가 투자를 집행해준 유명한 이야기나 데뷔작을 실패한 봉준호 감독이 차기작 ‘살인의 추억’을 제작할 수 있도록 투자를 망설이지 않았죠.

 

그 후 봉 감독의 작품마다 투자를 집행해서 마침내 아카데미 작품상을 일구어 낸 이 부회장의 업적은 그리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CJ가 만들어낸 오스카

이번 수상도 마찬가지로 칸 영화제가 끝난 후 마치 선거운동처럼 각 도시에서 열린 영화제에 참석하며, 아카데미를 위한 캠페인에 드는 비용도 모두 CJ가 부담한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과연 그러한 결정들이 이 부회장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요? 

 

삼성의 반도체가 시장에 진입했던 과정이나 그 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가 된 데에는 이건희 회장의 시의적절한 결단이 가장 큰 이유였음은 각종 매체에서 숱하게 얘기해왔죠.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일반 대중들에게 호불호가 갈리고 심지어는 정권의 눈 밖에 난 영화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는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결정권을 가진 오너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런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1995년부터 생각해보면 벌써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오랜 세월, 끝이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이 과연 오너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 경제적으로 큰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역동적인 나라라면, 그런 나라에서 기업을 하면서 기업체의 경제적인 문제만을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그 영화판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은 오너가 아니라면 불가능하겠죠. 물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오너리스크라는 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너의 집념

특유의 동양적 문화 때문에 전문성이 없는 오너 집안이 기업을 운영하면서 저지른 많은 행동들이 국민들에게 反 기업정서를 불러일으키고 경영에도 악 영향을 미치는 사례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CJ의 국내영화지원들은 오너의 결단이 아니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들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전문경영인과 오너의 행위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부의 그릇된 결정으로 오너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 옳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동안의 온갖 고생들이 보상받은 것 같은 그 밤 그 자리에 올라서 단순히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을 정형화되고 삐뚤어진 시각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 꿈에서나 생각해보던 일을 현실로 만든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오너의 끈질긴 집념이 만든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경력사항

  • 前)삼성물산 남성복 사업부 사업부장
  • (前)삼성물산 갤럭시/란스미어 BM
  • (前)삼성물산 엠비오/빨질레리 BM
(주)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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